8년 전의 선서 거부와 2년 전의 거짓말


무려 8년 전 오늘 썼던 글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현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국정조사에서 증인 선서를 거부한 일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8년이 지난 오늘 돌아보니, 글의 전체적인 취지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표현이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거짓말을 할 권리 역시 형사법정에서 피고인의 ‘방어권’의 일부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글에서 비판하고 있는 원세훈-김용판 두 사람의 행동은 형사피고인으로서의 권리를 최대한으로 확보하기 ㅟ해 전직 고위공직자로서 국회에서 진실을 증언할 의무를 무시한 것이이다. 따라서 여전히 비판받아 마땅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위증죄가 적용되지 않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당당하게 허위 발언을 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역시 원세훈-김용판과 마찬가지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조국 전 장관은 (기관증인 선서를 할 경우 위증죄가 적용될 수 있든)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이전에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앞으로 8년 뒤에도 내가 같은 기준을 가지고 사안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보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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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종
2013년 8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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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서 거부’와 ‘발언 거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국회 국정조사에 출석은 하되, 증인 선서를 거부했다.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법률을 근거로 제시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장과 수도 서울의 치안을 책임졌던 고위공직자 출신으로서 입법부의 국정조사를 거부하는 것은 마땅히 비난받을 일이다. 그러나 원세훈-김용판 두 사람이 출석 자체를 거부했거나 국정조사에서 발언 자체를 거부(묵비권 행사 등)했다면 최소한 논리적으로는 말이 된다. 공정하게 재판 받을 권리를 보호해달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선서 거부’는 앞뒤도 맞지 않는 행동이다.
‘발언 거부’가 아니라 ‘선서 거부’는 재판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도록 보장한 이유는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때문이다. 본격적인 공판 절차에 앞서 국정 조사에서 발언을 하면, 검찰 측에 증언 내용에 대한 검토와 반박 준비의 시간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피고인(원세훈-김용판)의 방어권이 제약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서를 하지 않고 국정조사에서 ‘발언’을 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증언을 했던 안 했던, 재판부는 검찰이 증거 채택을 요청한다면, 거의 100% 확률로 원세훈과 김용판의 국회 ‘발언’을 증거 채택할 것이다. 무슨 소리냐면, 선서를 했든 안 했든, 그 ‘발언’의 효력 차이는 국회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일 뿐, 재판정에서는 마찬가지다라는 뜻이다. 즉, 아예 발언을 거부하면 몰라도, 국회에서 할 말 다 하는 지금 같은 상황은 재판에서 피고인의 방어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지금 두 사람이 국정조사에서 하는 말이 ‘진실’이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왜 원세훈과 김용판은 ‘선서’는 거부하면서 국정조사에서 나름 할 말은 다하는(발언은 거부하지 않는) 전략을 택했을까? 내가 두 사람 머리 속에 들어가 본 것이 아니어서 속 사정을 낱낱이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위증죄를 피하려는 전술이 아닌가 싶다. 여론과 정치적 상황을 보니 출석을 안 할 경우 압박이 심할 것 같은데, 막상 출석해서 말을 안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여기서 선서하고 증언을 했다가는 나중에 법정에서 검찰이 다른 증거를 들이밀어 말을 바꿀 경우 위증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 바꿔도 나중에 탈 날일이 없도록 선서를 거부한 것이라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인 추론이다.
결론을 내리자. ‘출석 거부’ 또는 ‘발언 거부’는 나름 논리적인 행동이다. ‘선서 거부’는 방어권 보장과는 관계 없는 행동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선서 거부’는 나중에 말을 바꿀 수 있는 자유, 더 거칠게 말해 ‘거짓말’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받기 위한 전술로 보인다. 그것 또한 피고인의 방어권에 속한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100번을 양보해도 전직 국정원장과 전직 서울경찰청장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출석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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