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사법농단 비판’을 오염시킨 사람은 누구인가


민주당에 입당한 이탄희 전 판사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 참여했던 일을 내세우며 민주당에 입당한 전직 판사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여기저기에서 이들을 옹호하는 분들이 보입니다. 이분들의 옹호 논리는 한 마디로 ‘왜 우리 편만 가지고 그래?’라는 것입니다. 좀 더 상세하게 풀어보자면 ‘이전에도 판사를 하다가 출마를 한 사람이 적지 않다. 이번에도 사법농단 비판과 관련 없던 판사 중에 출마를 선언한 사람이 있다. 왜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 참여했던 판사들에게만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는가? 내부고발자에게 도덕적 순결성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 아닌가’정도가 될 것입니다.

우선 사법농단 고발에 참여했던 판사 못지않게, 전두환 씨에 대한 1심 재판을 맡았던 판사가 출마하는 현상을 많은 언론이 강도 높게 비판했다는 사실을 지적해두겠습니다. 예컨대 2020년 1월 15일에 방송된 SBS 8뉴스에서도 [법복 벗고 선거판으로…’전두환 재판’ 판사도 사직 대열]라는 제목으로 총선 출마를 위해 사직하는 판사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하면서,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던 판사들보다 ‘전두환 재판’을 맡았던 장동혁 전 판사의 사례를 우선적으로 다뤘습니다. ‘심판’으로서 재판을 주관하던 판사가 상당한 휴지 기간도 없이 곧바로 ‘선수’인 정치인이 되는 것은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든 참여하지 않았든 부적절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사법농단 비판’ 판사들은 왜 모두 집권여당에 입당하나?

하지만,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 참여했던 판사들에 대한 비판을 내부고발자에게 도덕적으로 더욱 엄격한 순결성을 요구하는 이중잣대 적용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던 판사들의 출마 문제는 단순히 ‘판사가 법원을 떠난 뒤 충분한 휴지 기간 없이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이들의 출마가 ‘사법농단’이라는 비정파적이고 비정치적이어야 하는 현안을 정파화-정치화시켰다는 점입니다.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기 전에, ‘사법농단’ 또는 ‘양승태 사법부’ 비판에 참여했던 판사들이 정치권에 투신하는 일이 왜 ‘사법농단’ 문제를 정파화 또는 정치화하는 것인지 쉽게 보여주는 구체적 사실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왜 ‘사법농단’ 또는 ‘양승태 사법부’ 비판에 적극 참여했던 사실을 내세우며 출마하는 판사들은 모두 집권여당인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인가요? 자유한국당은 물론 새로운보수당이나 바른미래당 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판사는 한 명도 없는 것일까요? 심지어 대안신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판사조차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문제점을 고발한 많은 판사들이 주장했고, ‘사법농단’을 비판했던 많은 언론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사법농단’은 결코 특정 정파나 정당의 ‘이슈’가 아닙니다. 제왕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권한 남용으로 재판과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이 여러 판사의 고발과 언론인들의 지적, 그리고 검찰 수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난 사안입니다. ‘사법농단’이 특정 정치세력이 법원을 장악하기 위해 설계한 ‘이슈’라는 관점이야말로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이 가장 경계해왔던 바입니다.

● ‘사법농단 비판’의 정파화-정치화가 본질적 문제

그런데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현실 정치에 투신한 분들은 모두 예외 없이 특정 정당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야당이 아니라 집권여당인 민주당에 입당하고 있습니다. 법원행정처에 비판적인 성향의 판사들 동향을 보고하라는 업무를 거부해 ‘사법농단’ 사태의 도화선이 된 이탄희 전 판사나,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해 대법원 내부의 이례적 사건을 폭로했던 이수진 전 판사는 모두 공식적 행사까지 거행하며 민주당에 입당했습니다. 입당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자신이 ‘사법농단 비판’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발언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봅시다. 법원에 있을 때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정치에 투신한 전직 판사들이 예외 없이 집권여당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사법농단’이 애초부터 특정 정치세력이 법원을 장악하기 위해 설계한 ‘이슈’라는 관점의 설득력을 강하게 만들겠습니까, 아니면 약하게 만들겠습니까?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씀드리지만, 이 글을 쓰는 저는 지금도 ‘사법농단은 특정 정치세력이 설계한 이슈’라는 관점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직 판사들이 ‘사법농단’을 법원 내부에서 비판했었다는 사실을 거의 유일한 업적으로 내세우며 특정 정당에 잇달아 입당한 것이 ‘사법농단 비판’이 정파적-정치적 이슈였다는 관점을 강화시키고 있는 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더구나, 이탄희-이수진 앞에 또 다른 전직 판사 김형연-김영식이 있었다는 사실 역시 큰 문제입니다. 현직 법제처장인 김형연 씨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꾸준히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문제를 지적했고, 2017년 3월 ‘사법농단’ 의혹이 언론에 처음으로 보도되자 법원 내부 통신망에 진상조사를 요청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력을 가진 김형연 씨가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5월 판사를 그만두고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직행했을 때도 적지 않은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하지만, 김형연 씨는 2019년 5월에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에서 곧바로 행정부의 차관급 관료인 법제처장으로 자리를 옮겨 ‘판사의 코드 출세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라는 평가까지 받았습니다.

● 이탄희-이수진 앞에 김형연-김영식이 있었다.

김형연 법제처장의 후임자인 김영식 청와대 법무비서관 역시 판사를 그만두고 3달 만인 2019년 5월에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김형연 법제처장과 마찬가지로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 출신인 김영식 비서관은 사직서를 제출한 직후인 2019년 2월에 일부 언론이 청와대 법무비서관 내정설을 보도하자 “그야말로 오보” “인권법 모임을 폄훼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3달 만에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임명됐습니다. 당시 보도를 했던 언론은 김영식 비서관이 거짓말했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의 민주당 입당은 김형연-김영식 전 판사의 청와대행과 연결시켜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분들은 모두 사법농단 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비판적 성향의 판사라고 인식되어왔으며, 바로 이와 같은 점 때문에 집권세력의 일원으로 영입됐기 때문입니다. 사법개혁 또는 법원개혁이라는 대의를 위해 ‘비판받을 것을 알면서도’ 민주당 입당이나 청와대 행을 택했다고 말하는 점도 이들의 공통점입니다.

어떤 일이 한 번 일어나면 우연으로 여길 수 있지만, 비슷한 일이 네 번 벌어지면 우연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사법농단이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비판적인 성향으로 알려진 판사들이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연속해서 청와대나 집권여당으로 향했다면, 그리고 이 가운데 일부는 자신이 ‘사법농단 비판’에 앞장섰다는 사실을 업적으로 내세웠다면, 사법농단 비판이 정파적-정치적 이슈라는 비난을 반박하던 사람들의 입장이 곤란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 ‘사법농단 비판’ 판사들의 “법복 정치인” 비판

이렇게 되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실제로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여전히 법원 내부에서 개혁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판사들입니다. 때문에 그 누구도 ‘적폐’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이런 법관들이 오히려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준비모임에 참여했고, 2017년 6월 전국법관대표회의 인천지방법원 대표로 참석했던 이연진 판사는 지난 22일 법원 내부 통신망 ‘코트넷’에 글을 올려 민주당에 입당한 이탄희 전 판사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법원 내부 게시판 등에 자신을 비판하는 글보다 지지하는 글이 많다.’라고 밝힌 것 등이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판사 시절 무엇을 했음을 정치 입문 후에도 주요 자산으로 삼는” 모습은 “법복을 벗은 후에도 여전히 법복을 들고 다니는 정치인으로 보인다.”라고 이탄희 전 판사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연진 판사는 “이렇게 법복을 들고 다니는 정치인의 모습, 법복을 들고 다니며 정치를 하려는 모습은, 법원과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송두리째 흔듭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전국법관대표회의에 관계하거나 참여한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누군가의 법관 재직 시 주요 이력으로 표방되는 것을 지켜보기가 힘듭니다. 사법개혁 임무를 맡을 만한 적임자라고 정치 입문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양 부풀려진 외관이 참담합니다.”라며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던 사실을 정치 입문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판사들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역시 ‘사법농단’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정욱도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판사도 지난 17일 법원 내부 통신망 코트넷에 [법복 정치인 비판]이라는 글을 올려 “아마 (정치인으로 변신하시는) 그분들은 자신이 법복을 벗고 나서야 비로소 정치인이 되었다고 말씀하시겠지요. 그러나 법복을 벗자 드러난 몸이 정치인인 이상 그 직전까지는 정치인이 아니었다고 아무리 주장하신들 믿어줄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만 혐의를 감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남은 법관들, 특히 같은 대의를 따르던 다른 법관들에게까지 법복 정치인의 혐의를 씌우는 일입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정욱도 판사는 “법복 정치인들이 허문 사법신뢰의 회복에도 도움이 되기 힘든 일입니다. 사법개혁을 바라는 입장이지만 법복 정치인의 손을 빌려 이루어질 개혁은 달갑지 않습니다. 차라리 법복 정치인의 기억이 흐려질 훗날을 기다리고 싶습니다.”라며 사법개혁을 위해 정치에 투신한 것이라는 전직 판사들의 주장과 달리 이들의 행동이 사법개혁이나 사법신뢰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습니다.

● 신뢰할 수 있는 법관 가질 권리가 있는 ‘국민’이 피해자

그러나 이연진-정욱도 판사처럼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법원 내부에서 개혁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법관들보다 더 큰 피해자가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법관에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는 모든 국민입니다. 재판과 법관의 독립을 확립해 공정하고 올바른 재판을 하겠다는 움직임이 특정 정치세력의 이슈나 음모라는 식으로 정파화 되거나 정치화될 경우, 재판과 법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더욱 지체될 것이고, 그 피해는 궁극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의 처신과 관계없이 ‘사법농단’이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흔드는 반헌법적인 행태였다는 진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또, 이탄희 전 판사 등이 법원에 있을 때 ‘사법농단’ 비판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는 사실 역시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이 민주당에 입당했다는 사실이 곧바로 ‘사법농단 비판’이 특정 정치세력의 음모였다는 결론의 충분한 근거가 될 수도 없습니다. 앞서 소개했듯이 법원 내부에는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의 처신을 비판하면서도 사법농단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는 판사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반면, ‘사법농단 비판’이 정치적 음모라고 비난하는 일부 언론의 잘못된 비난에 기대서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의 행동을 옹호하려는 시도 역시 잘못입니다.)

하지만,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 등이 예외 없이 집권여당에 입당하면서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던 이력을 내세운 것은, 법복을 벗자마자 청와대로 뛰어든 김형연-김영식 전 판사의 사례 함께 ‘사법농단 비판’을 정파적-정치적 이슈로 격하시키거나 오염시키는 효과를 낳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는 사법개혁 추진을 정치에 뛰어드는 명분으로 제시했지만, 정욱도 판사가 지적했듯이 “법복 정치인”들이 추진할 사법개혁조차도 법원에 대한 신뢰 회복에 도움을 주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오히려 “법복 정치인의 기억이 흐릿해질” 상당히 먼 미래까지 법원에 대한 대한 신뢰 회복을 지체시킬 뿐입니다.

● ‘사법농단 비판’은 사유물이 아니다.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가 ‘사법농단 비판’에 기여한 바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사법농단 비판’을 개인의 정치 입문을 위한 발판으로 삼을 정당한 권리는 없습니다. 특히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하거나 참여했다고 스스로 표방하는 판사들이 예외 없이 집권세력에 가담해 왔다는 점, 그리고 자신들의 행동이 ‘사법농단 비판’을 정치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이들이 충분히 인식했을 것이란 점에서, 이들의 행동은 정당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사법농단 비판’은 개인의 업적이나 사유물이 아닙니다. ‘사법농단 비판’의 정당성을 오염시킬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 윗 글은 SBS [취재파일]로도 출고됐습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621083&plink=NEWLIST&cooper=SBSNEWSSPECIAL

Image

[취재파일] 이영렬을 생각한다: ‘조국 사태’와 기준의 일관성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우)

<보편적 기준>

윤리적 기준은 문화권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기준은 일관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받아들여 지는 보편적 기준입니다. 보편적 기준에 입각해 ‘이영렬 사건’과 ‘조국 사건’을 비교해봤습니다.

어제(2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조금 다듬고 보완해 출고한 [취재파일]입니다. 페이스북 외부 공유용 링크가 필요한 분은 아래 링크를 활용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7년 5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습니다. 동시에 법률 위반이 있는지도 확인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안태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 등과 한 식당에서 만난 자리에서 법무부에서 근무하는 검사들에게 50만 원에서 100만 원이 든 돈봉투를 건넨 이른바 ‘돈봉투 만찬’ 사건을 [한겨레신문]이 단독보도한 지 이틀 만이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감찰-위법 확인 지시”

윤영찬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법무부 감찰위원회와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엄정히 조사하여 공직기강을 세우고 청탁금지법 등 법률 위반이 있었는지 여부도 확인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 하루 뒤인 2017년 5월 18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규정상 감찰 중에는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돈봉투 만찬’과 관련해 감찰하고 수사했습니다. 1달쯤 뒤인 6월 16일, 대검 감찰본부는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같은 날, 법무부는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면직(공직으로부터 배제) 처분했습니다.

‘돈봉투 만찬’에 대한 여기까지의 스토리는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결론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이보다 훨씬 적습니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 ‘돈봉투 만찬’ 사건의 결론은 무엇이었나?

기소된 지 6달 뒤인 2017년 12월 8일,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2심 역시 무죄였습니다. 2018년 10월 25일, 대법원은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무죄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징계 처분은 어떻게 됐을까요? 2018년 12월 6일,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정부를 상대로 한 면직 처분 취소 소송에서도 승소했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는 “이 사건의 면직 처분은 공익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과중해 재량권 일탈 남용에 해당한다.”라며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법무부는 2018년 12월 31일에 항소를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면직 처분은 취소됐고, 이영렬 전 중앙지검장은 검찰로 복귀한 뒤 곧바로 퇴직했습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로 이뤄진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돈봉투 만찬’ 사건에 대한 검찰의 기소와 법무부의 징계 모두 법원에서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이영렬 전 중앙지검장이 검찰과 법무부를 100 대 0으로 완벽하게 이긴 사건입니다.

● 이영렬을 생각한다: 조국 전 장관 사건과의 비교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경우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사건과 비교해봅시다. 조국 전 장관을 지지하는 분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검찰의 기소권 남용’입니다. 이는 조국 전 장관 관련 사건을 담당했던 검찰 간부들과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 간부들을 교체한 이번 검찰 인사를 정당화하는 주장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청와대 역시 지난 1월 23일 조국 전 장관 일가 관련 검찰 수사에 대한 시민 질문에 대해 “최근 검찰 수사의 불공정 논란,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인권침해 우려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흔들리게 되었다.”라고 답변하기도 했습니다.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용했기 때문에 검찰 간부를 교체한 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법원에서 기소는 물론 징계까지도 부당했다는 점이 “확인”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건과 관련된 검찰 간부와 검사들은 조국 전 장관 관련 사건을 지휘했던 간부들처럼 불이익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나아가, 이례적으로 검찰 수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업무지시”한 대통령은 사과를 하고,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에게 응분의 처분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요?

● ‘조국 사건’과 ‘이영렬 사건’의 평가 기준은 동일한가?

현실에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은 무죄 판결 확정 이후에도 요직에 기용됐습니다. 인사권 행사자는 청와대가 최근 여러 차례 강조한 것과 같이 대통령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 지시” 당시 관련 업무를 총괄했던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오히려 정권 실세의 자리를 확고하게 굳혔고, 김태우 전 수사관의 폭로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법무부 장관으로까지 임명됐습니다. 물론 그 이후의 난장판에 대해선 모두가 아는 바와 같습니다.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해 적용된 혐의는 “그깟 표창장 위조”일 뿐인데 ‘돈봉투 만찬’ 사건과 비교할 수 있냐고요? 일단 조 전 장관 또는 그 가족이 연루된 혐의는 “그깟 표창장 위조” 뿐만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둬야겠습니다. 표창장 위조 외에도 다양한 증명서 위조 혐의가 적용됐고. 여러 대학과 관련된 입시 비리 혐의, 사모펀드 관련 혐의, 뇌물 혐의에, 동생과 관련해선 전형적인 사학비리 혐의도 적용됐습니다. 게다가. 조국 전 장관 본인과 관련해선 서울동부지방법원 영장 판사가 “직권을 남용”했고 “법치주의를 후퇴”시켰다고 밝힌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 혐의도 적용됐습니다.

그럼에도 조국 전 장관과 관련돼 적용된 혐의는 “다들 하는 관행”일 뿐이고 “별 것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께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같은 기준이라면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법무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후배 검사들에게 식사 자리에서 ‘금일봉’을 준 행위 역시 “다들 하는 관행”이고 “별 것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돈봉투 만찬’ 사건에 대한 이런 평가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라, 조국 전 장관 관련 사건이 “별 것 아니”라고 말하는 분들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이렇게 평가할 수 있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 기준은 일관되어야 한다.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해 검찰이 기소한 혐의가 인정이 될지 안 될지는 앞으로 법원의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입니다. 그러나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조국 전 장관과 관련자들이 너무나 억울하게 인권을 침해당했고, 검찰이 이들에 대해 기소권을 남용했다고 생각하신다면, 이미 법원에서 무죄와 징계 취소가 확정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경우를 한 번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조국 사태’와 관련된 검사를 좌천하는 것이 정당한 인사 조치라고 생각한다면,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건에 관여했던 검찰과 청와대 관계자들의 승승장구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기준은 일관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공정함’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의(定義)입니다.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해 어떻게든 옹호할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뿐만 아니라, 일관된 기준을 적용해서 평가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해 애쓰는 분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어디까지 망가져 있는지 거울 앞에서 한번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한 가지 오해가 있을 수 있어서 덧붙입니다. 저는 ‘돈봉투 만찬’ 사건에 대해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국 전 장관이 앞으로 재판에서 무죄를 받더라도, 조 전 장관이 인사청문회 과정 등에서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을 비판하거나, 검찰의 수집한 증거들의 형사 재판에서의 증거능력과 관계없이 표창장 위조 등의 사실관계를 지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저는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건과 관련한 검찰권과 징계권 행사, 그리고 이를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의 조치에 대해서도 조국 전 장관 사건을 평가할 때 적용하는 기준과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뜻으로 글을 썼습니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619086&plink=NEWLIST&cooper=SBSNEWSSPECIAL&fbclid=IwAR2rULCfNP7IGCSLlgmv2QBn-tHKkGAdN65GzQlTPSNdOUSR971bD4oJq5U&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취재파일] 이영렬을 생각한다: ‘조국 사태’와 기준의 일관성

[취재파일] 판사·연예인·김학의의 인권과 일관된 이중성

“잠을 재우지 않고 밤새워 묻고 또 묻는 것은 근대 이전의 ‘네가 네 죄를 알렷다’고 고문하는 것과 같다.” “밤샘수사는 피의자·변호인이 동의해도 위법” “(밤샘수사로 작성된) 이런 조서의 증거 가치를 배척하면 단박에 고칠 수 있다.” “형사재판 법관 한 명의 결단만 남았다.”

● ‘밤샘수사’에 대한 결기 있는 비판…지금은?

음주운전 수사 축소 의혹 등과 관련해 가수 최종훈 씨(前 FT아일랜드)가 경찰에서 21시간 연속 조사를 받고 나온 날, 나는 지난해 한 판사가 결기 있게 써 내려갔던 글 한 편을 떠올렸다. 밤샘수사는 설사 피의자와 변호인이 동의했더라도 위법이며, 밤샘수사로 작성된 조서의 증거 가치를 배척하는 형사재판 법관 한 명의 결단이 있다면 이 같은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소리 높여 외쳤던 글이었다.

작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던 이 글은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지난해 10월 16일 법원 내부통신망 등에 올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 글은 최종훈 씨 같은 사람을 위해 쓰인 것이 아니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검찰에 출석해 밤샘조사를 받고 귀가한 날 평소 소신을 밝히겠다며 강 판사가 공개한 글이었다. 강 판사의 발언에 보통 동의하지 않던 여러 판사들도 이 글에 대해선 대체로 긍정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연예인이 경찰에서 21시간 조사를 받은 사건에 대해 이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단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 판사 수사와 연예인 수사: 똑같은 관행-달라진 반응

밤샘수사뿐만이 아니다. 판사들이, 특히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검찰에 출석하면서부터 이른바 ‘포토라인’ 관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법관들은 신문 기고문 등을 통해 주요 피의자의 출석 시각을 수사기관이 사전에 알려 집중 취재 대상이 되도록 만드는 관행을 소리 높여 비판했다. 그러나 가수 승리와 정준영 씨가 서울지방경찰청 앞 포토라인에 서서 전직 대법관들보다 훨씬 많은 기자들로부터 집중 취재를 받는 장면에 대해 동료뿐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를 자임하는 판사들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단 소식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사법농단 수사 내내 판사들이 소리 높여 비판했던 피의사실 공표는 어떨까? 이른바 버닝썬 사건을 비롯해 연예인-공권력 유착 의혹 수사 과정에서 연예인들의 피의사실 역시 거의 실시간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심지어 수사 대상이 아닌 연예인들이 내기골프와 관련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나눈 대화까지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동료 법관들이 수사받을 때 피의사실 공표를 문제 삼았던 판사들이 이번 보도와 관련해 경찰과 언론을 공개 비판한 사례는 아직 보지 못했다. 법원행정처가 수사를 받던 지난해 한창 논란이 됐던 압수수색 영장 발부 논란 역시 비슷한 경우다

.
● 수사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일관된 이중성’

밤샘수사가 좋은 관행이란 뜻이 아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 출석 시각을 미리 알려주는 게 꼭 필요한 일이란 뜻도 아니다. 피의사실 공표를 무조건 긍정하자는 취지도 아니다. 압수수색 영장이나 구속영장을 쉽게 내줘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판사들만이 이런 이중성을 보이는 집단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때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일관된 이중성이다.

밤샘수사, 포토라인 관행, 피의사실 공표, 영장 발부 문제. 이런 문제들은 최근 10여 년간 주요 사건에 대한 수사가 있을 때마다 어느 한 편에서는 반드시 문제 삼아왔던 쟁점들이다. 그러나 어느 편이든 일관성을 유지한 적은 거의 없었다. 우리 편이 수사를 받을 때는 밤샘수사, 출석 시각 공개, 피의사실 공표 등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악습이고 수사기관이 개혁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상대 편이 수사를 받을 때는 문제를 제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거나, 심지어 칭찬받아야 할 일이 된다. 예를 들어, 우리 편이 수사받을 때 혐의 사실을 보도한 언론은 피의사실을 공표한 나쁜 언론이 되지만, 상대 편이 수사를 받을 때 혐의 사실을 보도한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용기 있게 할 일을 한 참언론이 된다.

이 같은 일관된 이중성은 수사를 둘러싼 관행과 절차가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아온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밤샘수사를 문제 삼았던 정치인이나 학자가 ‘상대 편’이 밤샘수사를 받고 나오는 초췌한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놓고 조롱하는 장면을 보면서, 밤샘수사에 대한 이 사람의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 편’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를 문제 삼았던 어떤 사람이 ‘상대 편’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보도한 기사를 흔들며 “진실이 마침내 드러났다.”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이 사람의 문제제기를 의미 있게 검토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러는 사이 진지하게 논의되고 냉정하게 검토돼 현실적이면서도 합리적인 개선 방향을 찾아야 할 진짜 문제들은 정파적 논란의 소재로 소비되다가 매번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 “출국금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더니…

욕먹을 수도 있겠지만 가장 최근에 벌어진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보겠다. 여러 해에 걸친 법무부/검찰 취재 기간 동안 공보관으로부터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아시잖아요. 출국금지 사실은 확인해드릴 수 없습니다.”였다. 주요 피의자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 수사기관이 가장 먼저 취하는 조치 중 하나가 출국금지이기 때문에, 중요 범죄 수사에 대한 첫 보도는 출국금지 기사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법무부나 검찰이 출국금지를 보도한 기사의 사실 여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적은 내 경험으로는 한 번도 없었다. 공보준칙에 어긋나고, 수사에 방해가 되며,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긴급출국금지 사실은 2019년 3월 22일 밤 한 언론에 단독으로 보도됐다. 몇 시간 지나지 않은 2019년 3월 23일 0시 3분 법무부는 공식적으로 김 전 차관을 출국금지한 사실을 발표했다. 언론이 나름의 취재 방법을 동원해 출국금지 사실을 단독보도하는 것이야 종종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대낮에도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적이 없는 출국금지를 법무부가 한밤 중에 긴급하게 공식 발표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김학의 전 차관이 받고 있는 의혹이 부당하다는 것도 아니고, 김 전 차관에 대한 수사 개시가 잘못됐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판사든 연예인이든, 우리 편이든 상대 편이든, 인권은 공정한 기준에 근거해 보호돼야 하며 수사기관의 행태는 일관된 기준에 입각해 평가돼야 한다는 뜻이다.

● 성폭행범에게도 적용된 일관성, 그로 인해 얻은 건…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로 시작하는 ‘미란다 원칙’으로 형사법 교과서에 이름을 남긴 미란다는 성폭행범이었다. 18세 소녀를 강간한 사실이 명백했지만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수사기관이 미란다에게 진술거부권 등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란다의 자백이 적힌 진술서가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성폭행범의 인권까지도 일관적 기준으로 보호한 덕분에 미국 사회의 ‘미란다 원칙’은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대표적 방패가 되었다.

우리 편에 대한 수사와 상대 편에 대한 수사를 철저히 갈라서 때로는 비난하고 때로는 환호하는 이중적 행태가 계속되는 한, 우리는 정의 실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강력한 방패를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 2019년 3월 25일 ‘취재파일’로 SBS 홈페이지에 출고한 글이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190425&plink=SEARCH&cooper=SBSNEWSSEARCH&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취재파일] 판사·연예인·김학의의 인권과 일관된 이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