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터무니 없는 소리에 대해 몇 차례 해명의 글을 올렸더니 걱정해주시는 분이 많네요. 마음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괜찮습니다.

이런 저런 비난에 시달리는 것, 써야할 기사 꼭 써야한다고 주장하다 부딪치는 것, 좋은 사람인 척 하다 결정적 이익이 걸린 일이 터지면 가면을 벗는 사람과 상대하는 것,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 지난 정부 때도 경험했던 일입니다. 인간 관계? 써야할 기사가 있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반드시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아서 이 모든 일을 기록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누가 맞았는지 알게 되겠죠.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9명의 어머니

기자로 일한 지 올해로 13년째다. 그중 사회부 기자로 9년쯤 일했다. 일하면서 만난 사람은 수천 명이 넘는다. 좋은 일로 만난 사람은 별로 없다. 누군가에게는 아픈 일을 취재하기 위해, 아픈 일을 겪었거나, 아픈 일을 다루는 사람들을 만났다. 험한 직업이다.

아픈 일도 겪다 보면 익숙해진다. 아픈 일을 겪은 사람을 만나는 것에도 무던해진다. 일이니까. 매번 슬퍼하고, 매번 격렬해져선 일을 할 수 없다. 일을 하다보면, 일을 하기위해선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런데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있다.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님들을 만나는 일이다. 내가 부모가 된 뒤엔 더 어려워졌다. 내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 어디가 왜 아픈지 묻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전에 어떤 선배가 말한 것처럼 명치나 목젖을 아무리 단련해도 강해지지 않듯이 그냥 계속 힘들고 아픈 일이다.

설날에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어머니 때문이다. 당직 근무를 하느라 부모님 댁에 가지 못해 안부 인사를 드리려고 핸드폰에서 ‘어머니’를 검색하자 9개의 번호가 나왔다. 취재했던 사람들 번호를 정기적으로 지우는 편인데도 이 번호들은 남겨뒀던 모양이다.

‘ㅇㅇㅇ일병 어머니’, ‘xxx 어린이 어머니’, ‘ㅁㅁㅁ 어머니 의문사’…번호들을 살펴보니 이분들을 만났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내 기사가 이분들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적도 많았는데… 가끔은 이분들 바라는대로 이뤄진 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분들의 아픔이 줄어들었을 것 같지 않다.

핸드폰에 남아있는 어머니들께 새해 인사를 드리지는 못했다. 카톡이라도 드릴까 잠깐 생각했지만 내가 보내는 메시지가 오히려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 아닌가 싶어 보내지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들이 더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아픔이 많이 사라졌길 바란다. 행복하시면 좋겠다.

9명의 어머니

[웨스트윙] 동성애와 성경


한때 좋아했던 미드 ‘웨스트윙’, 뒤로 갈수록 미국 정치를 지나치게 미화해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관심이 시들해졌다. 그러나 소수민족 출신 대통령(시즌6와 7의 주제)이라는 그저 민주당 판타지처럼 보였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버렸다.

‘웨스트윙’ 작가인 아론 소킨에게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은 정치 컨설턴트 데이비드 엑슬로드다. 엑슬로드는 이후 오바마 진영에 합류해 사상 최초의 아프리카계 대통령을 만들었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일을 현실로 만든 사나이….

‘웨스트윙’의 작가 아론 소킨의 장기는 장광설이다. ’뉴스룸’의 앵커 매커보이나 ‘웨스트윙’의 바틀렛 대통령 같은 캐릭터를 통해 소킨은 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전한다. 소킨의 기량이 가장 화려하게 펼쳐지는 대목이다. (‘뉴스룸’은 내가 몸담고 있는 업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손발이 오그라들 때가 많지만…) 지금부터 소개할 부분도 공들여 쓴 티가 역력한 명장면이다

장소는 백악관. 방에 들어서자마자 앉지도 않고 연설을 시작한 바틀렛 대통령은 (아마도 일부러) 앉아서 지켜보고 있는 제이콥스 박사를 발견한다. 영문학 박사인 제이콥스는 동성애에 반대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이자 토크쇼 출연자다. 바틀렛 대통령은 성경을 조목조목 인용하며 제이콥스 박사를 박살낸다. 구약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일인지 밝힌다. 내용은 이렇다.

노벨경제학 수상, 빼어난 연설 실력, 유머 감각…미국 민주당을 지지하는 백인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갖춘 대통령 캐릭터
노벨경제학 수상, 빼어난 연설 실력, 유머 감각…미국 민주당을 지지하는 백인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갖춘 대통령

[바틀렛 대통령]
죄송합니다만, 당신이 제나 제이콥스 박사 맞지요?

[제이콥스 박사]
네. 대통령님.

[바틀렛 대통령]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이콥스 박사]
감사합니다.

[바틀렛 대통령]
(연설을 이어가다 제이콥스 박사를 보고 한숨을 쉬며) 죄송합니다 박사님. 혹시 의학박사(MD)인가요?

[제이콥스 박사]
아니요. PhD 입니다.

[바틀렛 대통령]
심리학 박사인가요?

[제이콥스 박사]
아닙니다 대통령님.

[바틀렛 대통령]
신학인가요?

[제이콥스 박사]
아니요.

[바틀렛 대통령]
사회복지인가요?

[제이콥 박사]
영문학 박사입니다.

[바틀렛 대통령]
제가 물어보는 이유는 이겁니다. 당신 쇼를 보니까 사람들이 조언을 구하려고 전화를 걸고 거기서 당신은 제이콥 박사라고 불리더군요. 어쩌면 시청자들이 그 호칭 때문에 헷갈려서 당신이 심리학, 신학, 그리고 보건학과 관련해 고도의 훈련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제이콥스 박사]
제 생각엔 시청자들이 헷갈리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통령님.

[바틀렛 대통령]
다행이네요. 전 당신의 쇼를 좋아합니다. 나는 당신이 동성애를 역겨운 것(abomination)이라고 부르는 점이 좋아요.

[제이콥스 박사]
동성애를 역겨운 것이라고 부른 것은 제가 아닙니다 대통령님. 성경이 그렇게 부르고 있죠.

[바틀렛 대통령]
네 그렇죠. 레위기에 써있죠.

[제이콥스 박사]
18에 22죠.

[바틀렛 대통령]
장과 절이지요.

당신이 여기 있는 동안 전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싶어요.

저는 출애굽기 21장 7절이 허용하고 있는 것처럼 막내딸을 노예로 팔려고 합니다. 제 딸은 조지타운 대학 2학년이고, 이탈리어를 유창하게 하고,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언제가 식탁을 깨끗하게 정리하죠. 제 딸의 가격은 얼마가 적당할까요?

이 문제를 생각하는 동안, 한 가지 더 물어봐도 될까요? 제 비서실장인 리오 맥게리는 안식일에 일하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출애굽기 35장 2절은 분명히 비서실장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제 손으로 비서실장을 죽여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경찰을 불러서 맡겨도 되는 것인가요?

이 도시에 스포츠팬이 많기 때문에 정말로 중요한 질문이 또 있습니다. 레위기 11장 7절에는 죽은 돼지의 가죽을 만지는 것은 사람을 불결하게 만든다고 써있습니다. 장갑을 끼겠다고 약속하면 워싱턴 레드스킨스가 미식축구를 계속 해도 될지요? 노트르담 대학은 어떤가요?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는요?

제 동생 존이 다른 종류의 곡식을 나란히 심었다는 이유로 정말 이 도시 사람 전체가 존을 돌로 치기 위해 모여야 할까요? 제 어머니가 두 개의 다른 실로 만든 복장을 입었다면 가족 모임에서 어머니를 불태워도 될까요? 이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보시겠습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하죠. 이 모임을 당신이 매월 참석하는 무지하고 융통성 없는 클럽 모임으로 착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건물에선 대통령이 서 있을 때 앉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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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는 김용철이 될 수 있을까? – 윌 스미스의 ‘뇌진탕’


 

영화 ‘뇌진탕(Concussion)’ 트레일러가 공개됐다. 12월 개봉 예정이다.(미국 기준) 주연 배우인 윌 스미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벌써 나온다.

영화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윌 스미스가 연기한 법의학자 베넷 오말루 박사는 2002년 전직 미식 축구 선수의 뇌를 부검한 결과 CTE(Chronic traumatic encephalopathy) 증상을 발견했다. CTE는 지속적으로 충격을 받아 뇌가 크게 손상되는 병이다. CTE 환자는 우울증이나 치매에 시달린다. 비슷한 증상인 복싱 선수들의 펀치 드렁크는 오래 전에 발견됐다. 그리나 미식축구가 심각한 뇌손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오말루 박사가 처음 세상에 알렸다.

오말루 박사는 어떻게 됐을까?

미국이라고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NFL(미국 미식축구 리그)는 미식축구와 뇌손상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NFL은 자체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조사위원회의 결론은 오말루 박사를 비롯한 다른 뇌신경학자들의 연구결과와 달랐다. NFL 직원들은 언론에 나가 오말루 박사가 사기를 치고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언론에 나가서 나를 모욕했습니다. 내가 의술을 행하지 않고 부두교 의식을 행한다고 말했죠.

– 베넷 오말루 박사

willsmith-concussion

2009년,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 의회가 NFL 임원들을 청문회에 불러내 뜨겁게 달궈줬다(grill). NFL은 태도를 바꿔 오말루의 연구 결과를 인정했다. 선수 보호를 위해 규칙을 바꾸고 뇌진탕과 CTE 연구를 위해 돈을 내놨다. 윌 스미스가 출연하는 영화도 제작됐다. 해피엔딩이다.

용감한 고발은 어렵다. 힘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불편한 진실을 덮으려고 시도한다. 2002년 미국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이 문제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의회는 사기업인 NFL 임원들을 불러서 뜨거운 맛을 보여줬다. (기업인들을 국감에 불러내는 것이 후진적 정치문화라고 비판하는 어떤 사람들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결국 미국에서 가장 큰 프로스포츠 리그인 NFL이 무릎을 꿇었다. 시스템이 작동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용감한 고발자는 결국 영웅이 됐다.

우리 사회에도 용감한 고발자가 부족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 용감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불행해졌다. 해피엔딩은 없었다. 이들을 소재로 대중 영화를 만들기는 어렵다. 대중은 슬픈 결말을 사랑하지 않는다. 삼성 비자금을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를 김윤석 씨나 송강호 싸가 연기할 수 있을까? 적어도 아직까지는 불가능하다. (이런 영화가 나온다 한들 CGV에서 볼 순 없겠지…)

12월에 나올 ‘뇌진탕(Concussion)’은 꼭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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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루이스 “행운의 쿠키를 먹지 마세요.”

‘머니볼’ 작가로 유명한 마이클 루이스의 2012년 프린스턴 대학 졸업식 축하 연설이다.

삶에서 운의 역할을 강조하는 메시지도 좋지만 간명한 문장과 냉소적 유머가 일품이다.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역시 유익하게 읽었다. 지적 열정이나 문학적 야심 같은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번역은 내가 했다. 오역과 의역이 산더미다. 정확한 뜻을 알고 싶다면 영어 원문 링크를 참조하길 바란다.

마이클 루이스 “행운의 쿠키를 먹지 마세요”(“Don’t Eat Fortune’s Cookie”) 원문 링크

감사합니다. 틸만 학장님. 이사회 여러분 그리고 친구 여러분. 2012년 졸업생 부모님 여러분. 무엇보다 2012년 프린스턴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위해 박수 한번 칩시다. 교회 안을 둘러봤는데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일이 또 생긴다면 그 때는 환호하는 것이 어색할테니까요. 이 순간을 즐기세요.

30년 전 나는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어떤 나이 많은 사람이 삶의 교훈을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한 마디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누가 그 연설을 했는지조차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졸업 그 자체입니다.여러분은 흥분해있고, 심지어 안도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여러분 모두 그렇겠지요. 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는 완전히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내 인생 최고의 4년을 보냈고 또 바쳤는데 이게 그들이 내게 감사를 표하는 방식이었죠. 나를 쫓아내는 것 말입니다.

당시 한 가지 점에 대해서는 확신했습니다. 내가 대학 밖에서 통하는 경제적 가치를 전혀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는 점 말입니다. 나는 예술사를 전공했습니다. 당시에도 그건 미친 짓으로 생각됐습니다. 여러분 대부분보다 그때의 제가 시장에 나갈 준비가 안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다보니 부유하고 유명해졌습니다. 뭐, 그런 셈입니다. 이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나가 경력을 쌓기 전에 경력이란 것이 얼마나 신비롭게 풀릴 수도 있는지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프린스턴을 졸업할 때까지 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또 어떤 장소에 대해서도 단 한 단어도 출판한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the Prince를 위해 글을 쓰지 않았고,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글을 쓴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프린스턴에서 예술사를 연구하면서 나는 문학적 야심에 대한 첫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 일은 졸업논문을 쓸 때 벌어졌습니다. 내 조언자는 정말로 재능있는 교수이자, 고고학자인 윌리엄 차일즈라는 분이었습니다. 내 논문은 이탈리아 조각가 도나텔로가 그리스와 로마 조각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 요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지만 내가 언제나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었죠. 차일즈 교수님이 실제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신만이 아시겠지만, 교수님은 내가 논문에 몰두하도록 도우셨습니다. 몰두 이상이었죠. 집착했습니다. 논문을 제출할 때 나는 남은 인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디. 졸업 논문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책을 쓰는 것이었죠.

그리고 논문 디펜스에 나섰습니다. 여기서 겨우 몇 야드 떨어진 맥코믹 홀에서였습니다. 나는 귀를 열고 내 논문이 얼마나 잘 쓰여졌는지 차일즈 교수님이 말씀하길 기다렸습니다. 교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죠. 그리고 45분 쯤 지난 후 결국 내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문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렇게 표현하겠네.” 교수님이 말했습니다 “절대로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지 말게나.”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 실제로는 말이죠. 나는 무엇을 할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을 했습니다. 대학원에 갔죠. 밤에 글을 썼습니다.별로 효과는 없었습니다. 무엇에 대해 써야할지 단서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어느날 밤 저녁식사에 초대됐는데, 살로몬 브라더스라는 대형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에서 일하는거물급 인사의 아내 옆에 앉았습니다.

그녀는 내게 일자리를 주라고 남편에게 압력을 넣었죠. 나는 살로몬 브라더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살로몬 브라더스는 우연히도 새롭게 창조되고 있던 월스트리트 한복판에 있었죠 – 우리가 모두 알게 되었고 사랑하게 된 그런 장소로 말입니다. 그곳에 갔을 때 나는 우연히도 커져가는 광기를 관찰하기에 최적의 장소에 배치됐습니다. 그들은 나를 파생상품에 대한 내부 전문가로 만들었습니다. 1년 반 뒤 살로몬 브라더스는 내게 전업 투자가들에게 파생상품에 대해 조언하라며 수십만 달러짜리 수표를 줬습니다.

이제 쓸 주제가 생겼습니다. 살로만 브라더스였죠. 월스트리트는 너무 정신이 나가서 갓 프린스턴을 졸업했고 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돈에 대한 전문가인 척 하라며 적지 않은 돈을 줬습니다. 나는 두 번째 졸업논문에 발을 들여놓은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선인세로 4만 달러를 주는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수백만 달러가 약속된 직장을 그만둘 예정이라고 말씀드렸죠. 전화기 반대편에서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왜요?”

“살로몬 브라더스에 10년만 더 다녀라. 재산을 모으고, 그 다음 에 책을 쓰거라.”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나는 지적 열정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 왜냐하면 나는 이곳, 프린스턴에서 그것을 느꼈으니까요 –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그 열정을 느끼길 원했습니다. 나는 26살이었습니다. 만약 36살까지 기다렸다면 아마 절대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느낌을 잊어버렸겠죠.

내가 쓴 책은 ‘라이어스 포커’입니다. 100만부가 팔렸죠. 나는 28살이었습니다. 나는 경력이 있었고, 작은 명성이 있었고, 작지 않은 재산이 있었고, 내 인생을 설명하는 이야기 방식(narrative)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갑자기 나를 타고난 작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나조차도 진실에 더 가까운 다른 설명 방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운(運)이 었죠. 살로몬 브라더스 사모님 옆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할 확률이 얼마나 될가요? 한ㅅ 시대의 이야기를 쓰기에 가장 적합한 월스트리트 회사 내부에 안착할 확률은요? 업계를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에 배치될 확률은요? 상속권을 박탈하는 대신 한숨 한 번 쉬고 “꼭 해야한다면 하거라.”라고 말하는 부모를 가질 확률은요? 프린스턴 예술사 교수가 꼭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부채질 할 확률은요? 애초에 프린스턴에 들어갈 확률은요?

이건 그냥 가식적 겸손이 아닙니다. 내용이 있는 가식적 겸손입니다. 내 사례는 성공이 어떻게 늘 합리화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성공이 행운 덕분이라고 설명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 특히 성공한 사람들은요. 나이를 먹어가고, 성공하면서, 사람들은 성공에 어딘가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삶에 있어서 우연한 일의 역할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도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거든요.

나는 이것에 대한 책을 썼습니다. ‘머니볼’입니다. 겉보기에는 야구에 대한 것 같지만 사실 다른 것에 대한 책입니다. 프로야구에는 가난한 팀과 부유한 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돈을 선수들에게 씁니다. 내가 책을 쓸 때 프로야구에서 제일 부유한 구단은 뉴욕양키스였습니다. 선수 25명에게 1억 2천만 달러를 썼죠. 제일 가난한 팀은 오클랜드 에이스였습니다. 3천만 달러를 썻습니다. 그러나 오클랜드 팀은 양키스만큼 많은 경기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오클랜드보다 부유한 다른 팀들보다 더 많은 경기에서 이겼습니다.

이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부유한 팀들이 최고의 선수들을 사들여서 항상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클랜드 팀은 뭔가를 깨달았습니다: 부유한 팀들이 누가 최고의 야구 선수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죠. 선수들의 가치가 잘못 평가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장 큰 하나의 이유는 전문가들이 야구에서 성공하는데 있어 운(運)의 역할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수들은 다른 선수의 행동에 의해 좌우되는 것들을 해냈다는 이유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투수들은 승수를 근거로 돈을 받았고, 타자들은 득점권에서 안타를 쳤다는 이유로 돈을 받았습니다. 선수들은 자신들의 통제범위 밖에 있는 일들 때문에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컨대, 때려낸 공이 우연히 필드 안에 떨어지는 일 같은 것으로 말입니다.

야구나, 스포츠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1년에 수백만 달러를 받는 기업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업계에 있던 사람들이 언제나 그랬던 것과 정확히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움직임을 평가하는 몇 백만명의 사람들 앞에서요.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모든 것에 통계를 앞세웁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잘못 평가됐습니다 – 왜냐하면 더 넓은 세상이 그들의 운(運)에 눈을 감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한 세기 동안 계속돼 왔습니다. 우리 모두의 코 앞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 이것이 어떤 가난한 팀에게 너무나 관찰하기 좋게 작용해서 도저히 눈치채지 않을 수 없게 되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묻게됐습니다. 만약 수백만 달러를 받는 프로 운동 선수 한 명이 잘못 평가될 수 있다면 누구인들 안 그럴까? 순수하게 성과로 평가받는 체계여야 하는 프로 스포츠가 운과 실력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머니볼’ 이야기에는 실용적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더 나은 데이터를 이용한다면, 더 나은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 이용 가능한 시장의 비효율성이 언제나 있다는 것. 그리고 기타 등등 입니다. 그러나 ‘머니볼’에는 더 포괄적이지만 덜 실용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인생의 결과를 보고 속지말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결과는 완전히 우연은 아니더라도 그 안에 엄청난 분량의 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만약 누군가 성공했다면, 일단 운이 좋았던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운에는 의무가 따릅니다. 여러분은 빚을 진 것입니다. 단지 신에게만 빚을 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운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이런 얘기를 이런 연설에서 하는 것은 이것을 여러분이 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내 집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주립대학 심리학과 연구자 한 쌍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을 실험용 쥐로 선택했습니다. 그런 뒤 그들은 학생들을 팀으로 나누고, 성별에 따라 분리했습니다. 남자 3명 또는 여자 3명이 한 팀이 됐습니다. 그런 뒤 이 3명으로 구성된 팀들을 한 방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팀원 3명 중 한 명을 임의로 리더로 지정했습니다. 그런 뒤 그들에게 해결하기 복잡한 도덕적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학술연구에서 속임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또는 캠퍼스 음주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였다고 칩시다.

문제를 풀기 시작한지 정확히 30분 후 연구자들은 각 그룹에 끼어 들었습니다. 연구자들은 방에 쿠키 한 접시를 들고 들어갔습니다. 쿠키 4개였습니다. 팀은 3명의 사람으로 구성됐지만 쿠키는 4개였습니다. 모든 팀 구성원들은 분명히 쿠키 하나를 갖게 되지만, 그래도 4번째 쿠키가 그대로 남습니다. 어색해지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믿을 수 없을정도로 일관되게 그룹 리더로 임의로 임명된 사람이 네 번째 쿠키를 집어 들었니다. 그리고 그걸 먹었습니다. 그냥 먹은 정도가 아니라 입맛을 다시며 먹었습니다. 입술을 쩝쩝 거리고, 입을 벌리고, 입 주변에 침을 묻혔습니다. 마지막에는 네 번째 쿠키의 잔여물이 그리더의 셔츠에 부스러기로 남았습니다.

이 리더는 어떤 특별한 과업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특별한 가치도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냥 우연히 선택됐습니다. 30분 전에 말입니다. 그의 지위는 그저 운이 좋아서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위는 이 쿠키가 당연히 자기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이 실험은 월스트리트의 보너스와 CEO 연봉을 설명하는 걸 도와줍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인간 행동을 설명하는 걸 돕는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새로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여러분은 그룹의 리더로 임명된 셈입니다. 여러분의 임명은 아마 완전히 임의적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반드시 이 임명의 임의적 측면을 의식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운이 좋은 소수입니다. 부모 운이 좋았고, 나라 운이 좋았고, 운 좋은 사람들을 입학시켜 운 좋은 사람들끼리 소개시켜주고 그럼으로써 더 운이 좋아질 기회를 늘려주는 프린스턴 같은 곳이 존재해서 운이 좋았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누구도 여러분이 자신의 이익을 뭔가를 위해 희생할 것이라고 실제로는 믿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운이 좋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여분의 쿠키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더 많은 쿠키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여분의 쿠키를 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여러분은 아마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척이라도 한다면 여러분은 더 행복해질 것이고, 세계는 더 나은 곳이 될 것입니다.

절대 잊지 마세요: 조국을 위한 헌신. 모든 나라를 위한 헌신. [프린스턴 대학의 비공식 모토]

감사합니다.

그리고 운이 좋기를 바랍니다.

마이클 루이스 “행운의 쿠키를 먹지 마세요.”

올리버 색스 ‘내 자신의 삶’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 올리버 색스 박사가 8월 30일(미국 동부 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2세. 연합뉴스는 저명한 신경학자이자 뛰어난 작가였던 색스 박사를 이렇게 묘사했다.

뇌의 신비 탐험한 ‘의학계의 시인’ 올리버 색스 별세(종합2보)

나는 의학과 관련된 색스 박사의 글을 읽은 적이 없다. 그러나 색스 박사가 암 전이를 진단받은 직후 2015년 2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에세이는 감명 깊게 읽었다. 나 역시 (먼 훗날) 죽음 앞에서 이렇게 간명하고 담담한 글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사는 게 힘들 때 읽으면 좋은 글이다.  필요할 때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번역해 블로그에 남긴다. 늘 그렇듯 오역과 의역이 태반이니 정확한 의미가 궁금하면 원문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내 자신의 삶(My Own Life)” 올리버 색스 [영어 원문 링크]

1달 전까지 나는 건강상태가 훌륭하다고, 심지어 탄탄하다고 생각했다. 81살이었지만 나는 하루에 1마일씩 수영했다. 그러나 내 운은 거기까지였다. – 몇 주 전 간에 다발성 전이가 있음을 알게됐다. 9년 전 눈에서 안구흑생종이라는 희귀한 종양이 발견됐다.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방사선 치료와 레이저 시술을 받고나니 그쪽 눈은 결국 안 보이게 됐다. 안구흑생종의 전이 확률이 50% 정도지만, 내 경우는 특성상 (전이될) 가능성이 더욱 낮았다. 나는 운이 없었다.

첫 진단 이후 9년 동안 좋은 건강과  높은 생산성을 누린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죽어가는 것과 대면하고 있다. 암덩어리는 간의 1/3을 차지하고 있고 진행이 느리긴 하지만 이런 암의 진행 과정은 막을 수 없다.

남은 몇 달을 어떻게 살지 선택하는 것은  내 몫이다. 나는 가능한 가장 풍성하고, 깊이 있고, 생산적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이점에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의 말이 도움이 된다. 65살에 죽을 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된 데이비드 흄은 1776년 8월, 단 하루만에 짧은 자서전을 썼다. 그는 이것에 “내 자신의 삶 (My Own Life)”라는 제목을 붙였다.

“나는 이제 신속한 사라짐에 대해 고찰한다.” 그는 썼다. “질병 때문에 느끼는 고통은 거의 없다. 더 이상한 점은 육신의 커다란 쇠퇴에도 불구하고, 내 영혼은 찰나의 감퇴도 겪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연구에 대한 열정과 동료들 사이에서의 유쾌함을 전과 같은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

나는 80살 넘게 살 정도로 충분히 운이 좋았고, 그리고 흄이 숨진 나이인 65살 이후의 15년도 (그전과) 똑같이 일과 사랑을 모두 풍부하게 즐겼다. 이 기간 책을 5권 출판했고 올봄에 출판 예정인 자서전을 한 권 완성했다.(흄의 자서전보다 몇 페이지 더 길다.) 거의 끝마쳐가는 다른 책도 몇 권 더 있다.

흄은 덧붙였다. “나는 온화한 기질이고, 화를 잘 참고, 개방적이고, 사교적이고, 흥겨운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이 애착을 가질지만 적대감을 갖기는 어렵고, 내 안의 모든 열정을 잘 조화시키는 사람이다.”

이점에서 나는 흄과 다르다. 사랑하는 부부관계와 친구관계를 향유했고, 누구와도 심각한 원한을 지지 않았지만 온화한 기질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나를 아는 사람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폭력적인 열광을 동반한 격정적 기질의 인간이고, 내 안의 열정을 극단적으로 조율하지 못했다.

그리고 흄의 에세이 중 이 문장은 진실이기 때문에 특히 더 큰 충격을 줬다. 그는 썼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에서 더 이상 분리되기는 어렵다.”

지난 며칠동안, 나는 아주 높은 고도에서 내 인생을 일종의 풍경처럼 살펴볼 수 있었고, 인생 모든 부분의 연결을 깊숙이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인생과 끝을 봤다는 뜻이 아니다.

반대로 나는 아주 강렬하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남아있는 시간 우정이 깊어지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기를, 글을 더 쓸 수 있기를, 그리고 체력이 허락할 경우 여행을 할 수 있기를, 새로운 경지의 인식과 통찰력을 갖게 되길 희구하고 희망한다.

이 세상에 남길 기록을 바로잡는데는 대담함과 명증함 그리고 평이한 말하기가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즐거움을 위한 시간도 약간 있을 것이다.(심지어 어리석음을 위한 시간 역시 약간 있을 것이다.)

나에게 갑자기 명확한 초점과 관점이 생겼다. 본질적이지 않은 어떤 것에 소비할 시간이 내겐 없다. 나 자신과 나의 일 그리고 내 친구들에게 집중해야만 한다. “뉴스아워”를 매일 밤 시청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정치나 지구온난화 논쟁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분리다. – 나는 여전히 중동과 지구온난화, 그리고 늘어나는 불평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다. 미래에 속한 것이다. 나는 재능있는 젊은 사람을 만나면 기쁘다 – 내 암 전이를 검사하고 진단한 사람을 만날 때조차 말이다. 나는 미래가 좋은 이들에게 맡겨져 있다고 느낀다.

지난 10년 가량 나는 동시대인들의 죽음을 점점 의식해왔다. 우리 세대는 떠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 각각의 죽음을 나의 일부가 찢겨 나가는 것 같은 갑작스런 중단으로 느껴왔다.

우리가 떠나고나면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와 똑같은 사람이 존재했던 적은 원래 없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들은 채울 수 없는 구멍을 남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 존재는 남과 다른 개인이 되고, 스스로의 길을 찾고, 스스로의 인생을 살고, 스스로의 죽음을 찾는 운명이기 – 유전적이자 신경계통적인 운명 – 때문이다.

전혀 겁을 먹지 않은 체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배적 감정은 감사함이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나는 많은 것을 받았고 일부를 돌려줬다. 나는 읽었고, 여행했고, 생각했고, 썼다. 나는 세상과 교류했고, 작가 그리고 독자들과 특별한 교류를 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있는 존재,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리고 그 자체가 어마어마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올리버 색스 ‘내 자신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