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을 생각한다.

2014년 6월 11일 KBS 뉴스9 방송 호

변창흠과 이용구 같은 사람들의 처신을 보면서 차라리 안대희, 문창극이 나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감한다. 특히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와 관련해 나에게는 잊기 힘든 기억이 있다.

6년 전, 나는 정치부 국회 출입 기자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문창극 중앙일보 주필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직후 나는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주요 보직에 대한 인사 청문회가 예정돼 있을 때 후보자를 검증해보는 것은 기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었다. 조국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스스로 자료를 찾아본 것과 마찬가지였다. 문창극 때도 조국 때도 검찰이 자료를 제공해주지 않았다.

자료를 찾다가 흥미로운 동영상을 발견했다. 나중에 ‘문창극 교회 동영상’으로 알려진 영상이었다. 동영상 내용은 모두 아는 바와 같다. 나는 이 동영상이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나는 국무총리 후보자의 논쟁적인 역사관이었고, 다른 하나는 동영상 곳곳에서 드러나는 근본주의적 종교관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친일’에 방점을 찍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비록 동영상을 보여주면 ‘친일’ 논란이 불거질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하지만 이 동영상은 SBS 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당시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발제한 날 기사를 쓰지 못했다. 보도를 위해서는 보완 취재가 필요하다는 방침을 전달받고 밤을 새다시피 하며 문창극 후보자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을 추가 취재하고 자료를 정리했다. (요즘엔 이런 일을 사찰이라고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후보자의 역사관과 관련해 더욱 논란이 될만한 팩트를 취재했지만 다음날도 기사를 쓰지 못했다. 그날 밤 경쟁사인 KBS는 문창극 동영상을 톱뉴스로 보도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KBS 보도 이후 거의 모든 언론사가 문창극 동영상을 앞다퉈 보도하기 시작했고 우리 회사도 사전에 확보해놓은 동영상을 이용해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회사 내부적으로 내가 이 동영상을 KBS 보도 이전에 확보해 보고했고, 기사까지 써놨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기자협회 등이 해명을 요구했고 기자협회 총회가 열렸다. 한참동안 여러 가지 일이 이어졌다. 미디어오늘에 기사도 실렸다. 다행이랄까… 당시엔 내 이름이 공개되진 않고 ‘SBS의 한 정치부 기자’가 문창극 동영상을 KBS 보도 이전에 입수했는데 기사가 누락돼 사내에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는 식으로 소개됐다. 몇 달 뒤 나는 기사를 쓰지 않는 내근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보살펴야 하는 사람이 있던 터라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겼다.

6년 전 문창극 보도 누락 과정과 관련이 있는 분들께 지금은 유감이 없다. 이 일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지만 나를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 면에서 배려해준 선배들도 많다. 문창극 동영상 보도 과정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내가 그 입장이 됐을 때 그 선배들처럼 나를 대할 수 있었을까 자문하기도 했다. 지난해 조국 전 장관 청문 과정과 이후 보도 과정에서 온갖 야비한 공격을 받으면서 그때 그 선배들은 그래도 괜찮은 사람들이었다고 다시 생각한 적도 있다.

요즘은 문창극 후보자 생각이 자꾸 난다. 문 후보자는 동영상에 나오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고 송구하다는 뜻은 표명했다. 문창극 후보자의 뜻이었는지 청와대 뜻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논란이 확산되자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이후에도 몇 몇 언론 인터뷰를 통해 억울하다는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관련 보도를 했던 기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진 않은 것으로 안다. (KBS 상대로 소송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지만 실제로 소송을 걸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문창극 후보자가 발언한 장소는 공적인 업무를 보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다니는 교회였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공식적 회의록이 작성되는 SH공사 회의석상에서 발언했다. 문창극 후보자의 발언한 시점은 공직 후보자로 지명되기 몇 년 전이었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은 차관이 되기 한 달 전에 택시기사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했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가 이어지자 문창극은 물러났지만 변창흠과 이용구는 세 문장, 네 문장 짜리 사과문만 발표하고 물러날 뜻을 비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문창극을 생각한다. 6년 전 그때 어떻게든 문창극 동영상을 기사로 내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일을 생각한다. 그러다가 변창흠과 이용구를 보면 문창극 후보자에게 내가 조금은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만 할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악덕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중에서 후안무치함이 이만큼 만연한 시기는 처음 겪는 것 같다.

(추신) 내가 확보했지만 보도하지 못했던 ‘문창극 동영상’을 다음날 톱뉴스로 보도했던 KBS 기자는 조국 사태 당시 김경록 씨 인터뷰 논란에 휘말려 법조팀을 떠나야 했던 KBS 김 모 선배다. 2014년 당시에도 나와 김 선배 모두 문창극 보도의 파장을 각자의 방식으로 겪어내야 했다. 조국 사태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무슨 인연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