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서 거부’와 ‘발언 거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국회 국정조사에 출석은 하되, 증인 선서를 거부했다.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법률을 근거로 제시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장과 수도 서울의 치안을 책임졌던 고위공직자 출신으로서 입법부의 국정조사를 거부하는 것은 마땅히 비난받을 일이다. 그러나 원세훈-김용판 두 사람이 출석 자체를 거부했거나 국정조사에서 발언 자체를 거부(묵비권 행사 등)했다면 최소한 논리적으로는 말이 된다. 공정하게 재판 받을 권리를 보호해달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선서 거부’는 앞뒤도 맞지 않는 행동이다.

‘발언 거부’가 아니라 ‘선서 거부’는 재판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도록 보장한 이유는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때문이다. 본격적인 공판 절차에 앞서 국정 조사에서 발언을 하면, 검찰 측에 증언 내용에 대한 검토와 반박 준비의 시간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피고인(원세훈-김용판)의 방어권이 제약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서를 하지 않고 국정조사에서 ‘발언’을 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증언을 했던 안 했던, 재판부는 검찰이 증거 채택을 요청한다면, 거의 100% 확률로 원세훈과 김용판의 국회 ‘발언’을 증거 채택할 것이다. 무슨 소리냐면, 선서를 했든 안 했든, 그 ‘발언’의 효력 차이는 국회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일 뿐, 재판정에서는 마찬가지다라는 뜻이다. 즉, 아예 발언을 거부하면 몰라도, 국회에서 할 말 다 하는 지금 같은 상황은 재판에서 피고인의 방어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지금 두 사람이 국정조사에서 하는 말이 ‘진실’이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왜 원세훈과 김용판은 ‘선서’는 거부하면서 국정조사에서 나름 할 말은 다하는(발언은 거부하지 않는) 전략을 택했을까? 내가 두 사람 머리 속에 들어가 본 것이 아니어서 속 사정을 낱낱이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위증죄를 피하려는 전술이 아닌가 싶다. 여론과 정치적 상황을 보니 출석을 안 할 경우 압박이 심할 것 같은데, 막상 출석해서 말을 안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여기서 선서하고 증언을 했다가는 나중에 법정에서 검찰이 다른 증거를 들이밀어 말을 바꿀 경우 위증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 바꿔도 나중에 탈 날일이 없도록 선서를 거부한 것이라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인 추론이다.

결론을 내리자. ‘출석 거부’ 또는 ‘발언 거부’는 나름 논리적인 행동이다. ‘선서 거부’는 방어권 보장과는 관계 없는 행동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선서 거부’는 나중에 말을 바꿀 수 있는 자유, 더 거칠게 말해 ‘거짓말’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받기 위한 전술로 보인다. 그것 또한 피고인의 방어권에 속한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100번을 양보해도 전직 국정원장과 전직 서울경찰청장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출석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아니다.


(2021년 8월 16일에 덧붙인 글) 윗 글은 2016년 8월 16일에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윗 글의 전반적인 취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피고인이 거짓말할 권리’ 역시 ‘방어권’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윗글의 표현을 다듬자면, ‘선서 거부’는 방어권을 위한 행동이지만, 형사법정에서의 방어권을 최대한으로 확보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로서 국회에서 진실을 말해야하는 의무를 무시한 행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