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파성’과 ‘가치지향’의 차이, 그리고 내로남불의 문제

내로남불(naeronambul)이라는 단어를 소개한 2021년 4월 7일자 뉴욕타임스 기사 일부

언론이 ‘정파성’을 갖는 것과 ‘가치지향’을 갖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가치지향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월스트리트저널]이 저소득층 학생들도 사립학교에 갈 수 있도록 정부가 바우처를 지원하는 제도를 지지하는 반면, [뉴욕타임스]는 사립학교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고 공립학교와 교사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정책을 찬성하는 일을 말한다.

반면 정파성이라는 것은 [월스트리트저널]이 공화당 진영에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보도를 하고, [뉴욕타임스]는 민주당 진영에 대체적으로 호의적인 기사를 쓰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두 신문사가 최근에도 바우처 제도에 대해 이렇게 명확한 입장 차이를 보이는지는 세밀하게 따져보지 않지만, 두 신문사의 대략적인 논조를 예로 든 것이다.)

언론의 ‘가치지향’은 ‘정파성’과 종종 오버랩된다.언론이 특정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은 많은 경우 특정 가치를 내세우는 정치세력 또는 정치세력 정책에게 호의적 보도를 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를 뜻하는 ‘정파성’과 특정 가치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가치지향’이 동의어는 아니다. 가치를 지향하는 언론은 이전에 호의적으로 평가했던 정치세력이라고 할지라도 자신들이 지지하는 가치와 상반된 정책을 주장하면 가차없이 비판한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는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나 신재생에너지 지원 정책에 반대하는 민주당 정치인을 비판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정파성을 띄는 언론은 가치를 기준으로 정책이나 정치인의 행위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의 당선 가능성이나 유불리를 보도의 기준으로 삼는다.

한국 언론에 의견과 관점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허한 것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 언론의 편파성은 ‘가치지향’이 아니라 ‘정파성’이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을 예로 들어 보자. 만약 검찰개혁에 있어서 피의사실 공표 금지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치지향을 가진 언론사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를 할 때나,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할 때나 항상 일관된 기준으로 피의사실 공표 행위에 대해 비판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언론사들은 자사의 정파적 기준에 따라 박근혜-양승태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와 조국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를 다르게 취급했다. 다른 영역에 있어서도 한국 언론의 기준은 대부분의 경우 ‘정파성’이었지 ‘가치지향’이 아니었다.

‘내로남불’은 한국 언론이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정파성에 매달리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슬프게도 지난 몇 년 간 가치를 지향한다고 알려져 있던 한국의 여러 언론사들은 사실은 정파성에 중독된 상태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도 방향이 180도로 바뀌는 몇 몇 방송사들이야 가치를 지향하는 언론사가 아니라는 점이 처음부터 명백했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 성향 신문사조차 가치보다는 정파성을 지향한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은 한국 저널리즘 전체의 후퇴였다.

지금 우리 저널리즘과 관련해 개혁해야 할 것을 하나만 꼽자면 ‘정파성’을 버리고 ‘가치지향’을 분명히 하자는 것이 될 것이다. 정파성 때문에 비난을 받는 상황인데, 엉뚱하게 기계적 중립 대신 의견 저널리즘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서 몇 자 적어봤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친한 사람들’을 가치에 입각해 혹독하게 비판할 수 있을 때, 당신들이 말하는 의견 저널리즘은 정파적 애완견 저널리즘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