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사건, 무능하거나 틀렸거나

임은정 검사 (대검 감찰정책연구관)

참 신기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지 4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검찰에만 가면 정부여당 관계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일들은 번번이 좌절되니 말이다. 특히 강성 지지자들의 관심이 가장 집중됐던 사건들 – 채널A 강요미수 의혹 사건,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청구 사건, 한명숙 모해위증 의혹 사건에서는 실패만을 거듭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손 쉬운 설명은 검찰 조직이 구제불능일 정도로 적폐로 가득 차 있어서 정권이 바뀐 지 4년이 지나도록 개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한명숙 모해위증 의혹 사건에 대한 불기소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을 보면 이런 설명을 납득하기 어렵다. 불기소 결정이 내려진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검사들은 현 정부가 ‘우리 편’이라고 판단했거나, 적어도 반기를 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중용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불기소 처분을 결정한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은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행정관을 지낸 검사다. 현 정부도 조남관 대행을 신뢰해 정권 초기에 국정원 적폐청산TF 팀장과 국정원 감찰실장으로 기용했다. 검색을 해보면 불과 얼마 전까지도 조남관을 현 정부 인사로 분류했던 기사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다가 서거하자 현직 검사로서는 드물게 봉하마을을 방문해 조문하고, 조문 사실을 검찰 내부 통신망에 알리며 수뇌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던 사건도 이 정부 사람들이 조남관을 ‘우리 편’이라고 여겼던 이유였을 것이다.

이 사건의 주임검사이고 임은정 검사와 달리 한명숙 모해위증 의혹에 대해 불기소 의견을 냈던 허정수 대검 감찰3과장 역시 현 정부가 얼마 전까지 ‘확실한 우리 편’이라고 여겼던 인물이다. 법무부 등에 포진된 일부 검사들과 마찬가지로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진 허정수 과장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해 징계를 청구했을 때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과 함께 윤 전 총장의 ‘판사 사찰 의혹’을 수사했던 인물이다. 정부여당 입장에선 ‘우리 편’이라고 판단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존재했던 셈이다.

대검 부장회의에 참석한 대검 부장검사들과 고검장들은 어떤가? 어제 대검 부장회의에서 참석자 14명 가운데 10명은 불기소 의견, 2명은 기소 의견을 제시했고, 2명은 기권했다고 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정부여당 실력자들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가 명확한 가운데 기권을 선택한 것은 사실상 불기소 의견에 동조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14명 중 사실상 12명이 임은정 검사의 주장과 정반대로 불기소 의견에 가담한 셈이다. 기소 의견을 낸 2명 중 1명도 임은정 검사와 함께 기소 의견을 주장해왔던, 일종의 당사자에 해당하는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실질적으로는 단 한 명만 제대로 된 기소 의견을 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회의에 참석했던 대검 부장검사들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반대를 묵살하고 직접 골라서 임명한 사람들이다. 다른 보직과 달리 대검 부장검사에 대한 인사는 대검찰청의 기관장인 검찰총장의 의견을 법무부 장관이 수용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아시다시피 추미애 전 장관은 관례 같은 것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심지어 박범계 장관이 부임한 이후 윤석열 전 총장이 가장 강력하게 요청했던 것도 대검 부장검사들을 교체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범계 장관 역시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대검 부장검사들 상당수는 ‘윤석열 견제용’으로 법무부가 특별히 배치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보다 확실한 ‘우리 편’의 징표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박범계 장관이 한명숙 모해위증 의혹 사건을 대검 부장검사 회의를 통해 재심의하라고 수사지휘했던 것도 대검의 부장검사들을 ‘우리 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검장 6명은 대검 부장검사들보다는 ‘당성(黨性)’이 약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현 정부가 집권한 것이 벌써 4년 가까이 되어간다. 윤석열이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2019년 가을 이후에도 이번 정부는 이례적으로 짧은 주기로 여러 차례 검찰 인사를 단행해 주요 포스트에서 적폐들을 “솎아낼 만큼 솎아”낸 상태다. (영화 신세계에서 ‘정청’이 썼던 표현있다.) 그런 과정을 거친 이후에도 검찰 최고위직인 고검장 자리에 배치된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정부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인물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확실한 우리 편’에 가깝다고 봤던 대검 부장검사들, 그리고 적어도 반기를 들지는 않을 만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고검장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압도적 다수가 정부여당의 실력자들과 임은정 검사의 뜻과 어긋나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종합해보면 한명숙 모해위증 의혹 사건의 불기소 처분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 – 대검 부장검사들 – 고검장들 – 허정수 대검 감찰3과장(주임검사) – 임은정 검사 가운데 정부여당이 ‘우리 편’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임은정 검사와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이 반대 의견을 내서 정부여당 실력자들의 뜻을 꺾어버렸다. 솎아낼 만큼 솎아낸 다음 우리 편이라고 신뢰할 만한 사람들만 중요한 자리에 배치했는데도 도대체 왜 번번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아마도 청와대와 여당에서 이런 일을 기획하거나 지원하는 사람들은 정말 속상할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권력을 잡고 인사권을 행사하는 사람이 번번이 뒷통수를 치고 배신할 만한 사람만 주요 포스트에 임명하는 경우다. 그러나 윤석열 한 번이면 몰라도, 번번이 이런 일을 당한다는 것은 인사권자로서의 지독한 무능을 자인하는 꼴밖에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길 때마다 배신을 당하는 사람이라면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운영하기도 힘들 것이다. 하물며 한 나라나 정부를 운영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애초에 정권을 잡기도 어렸웠을 테니 첫 번째 시나리오의 가능성은 아주 작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일을 실무적으로 추진한 사람들이 지독하게 무능할 경우다. 정당한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막강한 권력의 지지를 받았는데도 번번이 실패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이례적일 정도로 무능한 사람이 실무를 맡으면 그런 드문 일이 실제로 벌어지기도 한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모해위증과 모해위증 교사가 있었던 것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문재인 정부 실력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으면서도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이나 임은정 검사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이유는 이것뿐이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이들이 추진한 일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을 경우다. 한명숙 사건과 관련된 재소자 증인들이 위증을 한 적이 없고, 당시 수사팀 검사들이 이들에게 위증을 지시했다는 주장이 거짓말이라면, 설사 한동수 감찰부장이 임은정 검사가 10년에 한 번 나올 정도의 빼어난 검사라고 하더라도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도 흑을 백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의 실력자들이 모종의 이유로 전방위적으로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채널A 관련 사건이나 윤석열 징계 청구, 한명숙 모해위증 의혹 등이 번번이 실패한 것은 실제로 이들의 생각이 틀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애초에 개연성이 낮거나, 사실관계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이런 사건들을 밀어붙인 것이라면 애초에 목적이 나쁜 것이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사실 기자로서 한명숙 모해위증 의혹 논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장 답답하게 느꼈던 것은 형사사건 공개 금지 규정 때문에 판단을 위한 기본적 정보조차 차단된 상황이었다. 한명숙 모해위증 의혹 사건은 지난해부터 거의 10년 만에 다시 논란이 됐지만 시비를 가릴 근거가 될 만한 정보, 사건의 본질인 위증 여부를 판단할 만한 정보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간혹 노골적으로 친정부 성향을 드러내는 언론사 등을 통해 대검 감찰부 자료 일부가 공개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위증 또는 위증 지시의 존재 여부라는 본질과는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이었다. 오히려 ‘누군가 언론에 선택적으로 자료를 유출했을 경우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자료를 흘렸을 텐데, 가지고 있는 근거 중 가장 유리한 것이 저 정도인 건가’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 누구도 한명숙에 대해 증인 2명이 위증을 했는지 안 했는지, 검사들이 위증을 지시했는지 안 했는지 판단을 내릴만한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합리적 의심을 제기할 정도의 팩트조차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공개된 근거가 극히 빈약한데도 누군가의 말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저널리즘이 아니라 신앙고백에 가깝다. 기자라고 자처하는 어떤 사람들과 달리, 나는 신앙인이 아니다.

하지만 정보가 차단된 탓에 사건의 본질적 내용을 알지 못한 상황에서도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은 이유는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믿고 일을 맡긴 사람들이 지독하게 무능하고 멍청했거나, 아니면 그들이 주장한 내용이 처음부터 틀린 것이었거나.”

무능한 사람들이 진실을 밝히지 못한 것이라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과 출세욕 때문에 누군가를 모해하려다 좌절된 것이라면 훗날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어느 경우든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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