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특별감찰관, 그리고 백순길 단장

청와대 정만호 국민소통수석은 어제(11일) 3기 신도시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고위직과 가족의 부동산 투기 의심거래가 아예 없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 수석의 발표는 이내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강제수사권도 없는 청와대가 비서관급 이상 고위직들의 자발적 협조에 근거해 ‘셀프조사’한 결과를 어떻게 믿냐는 것이었다.

청와대의 발표는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이 불거졌을 때 구단의 대처와 비교되기도 했다. 당시 LG 트윈스 백순길 단장이 투수 박현준의 “관계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그래 열심히 하자”라고 격려하는 장면이 KBS 뉴스에 보도되었는데, 나중에 박현준이 승부조작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장면은 두고 두고 인구에 회자되는 ‘짤’이 되었다. 청와대의 이번 ‘셀프조사’ 발표를 당시 프로야구단의 ‘셀프조사’와 다르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사실은 청와대의 ‘셀프조사’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마련해놓은 제도가 이미 존재한다. 특별감찰관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셀프조사’로는 청와대 소속 고위공무원들과 대통령 친인척들의 비위 의혹을 제대로 감찰하기 힘들고, 설사 감찰한다고 하더라도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기 힘들기 때문에, 청와대와 독립된 ‘특별감찰관’을 임명해 청와대 관련 의혹을 감찰하도록 규정해놓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우병우 전 수석 관련 의혹 역시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독립적인 감찰 활동을 거치면서 문제가 드러나기도 했다. 실효성이 어느정도 입증된 제도라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당시 특별감찰관의 역할을 높이 평가해 정권을 잡은 후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중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임기가 1년 가량 남은 오늘까지도 특별감찰관 자리는 비어있다. 법률로 규정된 제도이기 때문에 기본적 사무 공간과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 1년에 10억 원이 넘는 국민 세금을 쓰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은 특별감찰관을 임명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야당은 “공수처장을 임명하면서 특별감찰관 지명을 함께 하기로 여당이 약속했는데 지키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약속을 했다’라는 야당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180석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서 국회의 권능 대부분을 마음대로 행사하고 있는 정부와 집권 여당이 특별감찰관 자리를 4년 가까이 비워두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사례를 보면서 정권 붕괴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특별감찰관 제도의 위험성을 인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특별감찰관 자리를 계속해서 비워두는 것 역시 리스크를 점점 키우는 길이다. 3기 신도시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한 청와대 ‘셀프조사’가 웃음거리가 되었듯이, 정권 말 각종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특별감찰관 대신 청와대가 나서서 실시하는 ‘셀프조사’는 정부의 신뢰도를 깎아먹을 것이다. 그때마다 특별감찰관이 공석이라는 사실은 부각될 것이다. 그리고 역대 모든 정부가 그랬듯이 이번 정부의 어느 한 구석에서도 부패 범죄가 벌어지고 있다면, 특별감찰관을 도입해 초기에 싹을 자르지 않은 점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청와대가 2012년 LG 트윈스 백순길 단장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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