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이 된 검찰

검찰(檢察)은 특정한 인물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다. 행정부 소속의 국가 기관이자, 근대적 사법 시스템을 도입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작동되고 있는 제도를 뜻하는 명사다.


그런데 지난 몇 년 간 검찰개혁을 외치던 사람 중 상당수는 검찰을 기관이나 제도가 아니라 특정한 유기체나 인격체라고 간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이 보여주는 증오와 복수심, 그리고 공포 때문이다.


개인이 정상적인 기관이나 제도에 대해 맹렬한 복수심을 표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스로를 공공의 적으로 여기지 않는 이상 국가 기관이나 제도에 대해 공포를 느낄 이유도 없다. 하지만 어떤 이들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복수심과 공포는 이들이 검찰이라는 제도를 ‘의인화’해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한다.

특히 검찰개혁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온 진보적 성향의 법률가들조차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무리한 정책, 검찰이 나중에라도 자신들에게 보복하지 못하게 만드릭 위해 완전히 무력화시켜버리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주장들을 접할 때면 이들이 “의인화된 검찰”이라는 존재를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진다.


“의인화된 검찰”이라는 표현은 내가 사석에서 종종 써오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에 더욱 적확한 메타포를 발견했다. 에이해브 선장의 다리를 가져간 이후 맹렬한 증오의 대상이 된 생물, 에이해브가 선원들을 이끌고 지구를 한 바퀴 돈 끝에 마주한 거대한 흰 고래 모비딕이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검찰의 모습에 더욱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이 메타포에서 누가 에이해브 선장에 해당하고, 누가 선원들에 해당하는지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모비딕]을 실제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이 유명한 소설의 결말은 잘 알려져 있다. 집권 4년 차에도 여전히 국가의 최고 개혁 과제로 추진되고 있는 검찰개혁의 결말이 [모비딕]의 결말과는 다르기를 바란다.

‘모비딕’과 ‘에이해브’, 그리고 선원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을 옮긴다.


그렇다면 거의 죽을 뻔햇던 그 결투 이후 에이해브가 그 고래에 대해 격렬한 복수심을 품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복수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에이해브가 광적일 정도로 과민해져서 결국에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지적·정신적인 분노까지도 모두 흰 고래와 결부시켰다는 점이다. 흰 고래는 모든 사악한 존재의 편집광적 화신으로서 에이해브의 눈앞을 끊임없이 헤엄치게 되었다. 깊은 통찰력과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은 그 사악한 존재에게 자기 내부를 갉아 먹혀 급기야는 절반밖에 남지 않은 시장과 허파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악이야말로 태초부터 존재해왔고, 근대에 들어와서는 기독교도들조차 세상의 절반을 지배하는 존재로 인정햇으며, 고대 동방의 배사교 신자들은 악마 상을 만들어 숭배했다. 하지만 에이해브는 그들처럼 무릎을 끓고 그것을 숭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밉살스러운 흰 고래에게 모든 악의 근원을 돌려, 미친듯이 날뛰며 불구의 몸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것에 덤벼들었다. 사람을 가장 미치게 하고 괴롭히는 모든 것, 가라앉은 앙금을 휘젓는 모든 것, 악의를 내포하고 있는 모든 진실, 체력을 떨어뜨리고 뇌를 굳게 하는 모든 것, 생명과 사상에 작용하는 모든 악마성 – 이 모든 악이 미쳐버린 에이해브에게는 모비 딕이라는 형태로 가시화 되었고, 그리하여 실제로 공격할 수 있는 상대가 되었다. 에이해브는 아담 이후 지금까지 모든 인류가 느낀 분노와 증오의 총량을 그 고래의 하얀 혹 위에 쌓아 올려, 마치 자기의 가슴이 대포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 속에서 뜨거워진 포탄을 그곳에다 겨누고 폭발시켰던 것이다.

(중략)

이렇게 격렬한 비유가 허락된다면, 에이해브의 특별한 광기는 전반적으로 온전한 그의 정신을 공격하여 사로잡고, 중심에 모인 모든 대포를 자신의 무분별한 표적 쪽으로 돌려놓았다. 그래서 에이해브는 힘을 잃기는커녕, 그가 지금까지 제정신으로 합리적인 목표에 쏟아 부었던 것보다 수천 배나 더 많은 잠재력을 그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게 되었다.

(중략)

지금 에이해브는 마음 속으로 이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내 수단은 모두 건전하지만, 내 동기와 목적은 미쳤다는 것. 하지만 이 사실을 없애거나 바꾸거나 회피할 힘은 없다. 그는 또한 자기가 오랫동안 인류에게 시치미를 뗐고, 어느 정도는 아직도 인류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중략)

그들은 도대체 왜 노인의 분노에 그토록 열광적으로 응했던 것일까. 그들의 영혼은 도대체 어떤 사악한 마력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때로는 노인의 증오를 자신의 증오로 여기게 되었을까. 어떻게 흰 고래를 노인의 원수일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참을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도대체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났던 것일까. 흰 고래는 도대체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는가. 그들의 무의식적인 인식 속에서 흰 고래는 인생의 바다를 헤엄치는 거대한 악마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흰 고래를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 전혀 의문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하려면 이슈메일이 내려갈 수 있는 깊이보다 훨씬 더 깊은 곳까지 잠수해야 할 것이다.

  • 모비딕, 허먼 멜빌 지음·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2019년, 241-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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