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아재? 이해를 못하는 건가, 의도가 나쁜 건가

2020년 5월 31일 오전 1시 46분에 페이스북에 쓴 글


** 빨간 아재? 이해를 못하는 건가, 의도가 나쁜 건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빨간 아재’라고 소개하는 분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SBS 기자의 취재파일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언론인이 되기를 빌겠습니다. 그럴 용기가 없으면 닥치고 찌그러져있든가.”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앞서 해당 기자를 상대로 “윗선에 깨졌습니까?”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도 꺼냈죠. (저한테 한 얘기는 아닙니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이라면 저런 말을 공개적으로 떠드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재”가 될 때까지 저딴 짓이 본인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란 것도 배우지 못한 듯해서 한편으로는 측은한 생각도 듭니다.

이런 헛소리가 한 두 건은 아니지만, 이번 건은 논란이 될 만한 건도 아니어서 간단히 바로 잡으려고 합니다.

‘빨간 아재’라는 분은 5월 7일에 열린 정경심 교수에 대한 공판에서 재판부가 피고인 정경심 교수 측에 추가 석명을 요청할 때의 워딩을 SBS 기자가 왜곡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빨간 아재’는 ‘피고인 의견서 내용대로라면 피고인이 동양대 총장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아 딸 조민에게 직접 표창장을 발급한 것이 아니라 동양대 직원으로부터 표창장을 건네받은 것인데, 피고인이 쓰던 것으로 보이는 동양대 강사 휴게실 컴퓨터에서 동양대 총장 표창장 파일이 나왔는지 설명하라.’고 재판부가 말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SBS와 경향신문 등 몇몇 언론은 재판부가 ‘피고인이 썼던 것으로 보이는 강사 휴게실 컴퓨터에서 총장 직인 파일이 나온 경위’를 설명하라고 재판부가 요구한 것처럼 보도했으니 왜곡이라는 것입니다. 즉, 재판부는 ‘표창장 파일’이라고 말했는데 SBS 등은 ‘직인 파일’이라고 보도했으니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SBS 기자 취재파일에도 적혀 있듯이 공판에서 재판부가 말한 정확한 워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판정하기 어렵습니다. 재판부가 속기록을 공개하기 전까지는요. 정경심 교수 재판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여러 기자가 법정에 들어가 오가는 워딩을 받아적지만, 사람마다 구체적인 단어나 표현은 조금씩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빨간 아재’ 측이나 다른 기자들이 받아적은 판본에는 ‘표창장 파일’이라고 돼 있는 부분이, SBS나 다른 언론사가 받아적은 판본에는 ‘직인 파일’로 돼 있을 수도 있습니다. ‘빨간 아재’라는 분이나 다른 사람들이 규정을 위반해 법정에서 오간 말을 몰래 녹음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당시 재판부가 사용한 표현이 정확히 무엇인지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도 백 번을 양보해서 SBS 기자나 경향신문 기자가 잘못 들었고 ‘빨간 아재’가 정확하게 받아적었다고 칩시다. 그런데 ‘빨간 아재’란 분의 주장과 달리 5월 7일 공판에서 재판부가 쓴 표현이 ‘표창장 파일’이든, ‘직인 파일’이든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이후의 공판에서 재판부가 추가 설명을 요구한 대상 파일은 ‘총장 직인 파일’이라는 점을(적어도 ‘직인 파일’을 포함한 복수의 파일들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명확히 했기 때문입니다.

5월 7일 재판부의 추가 설명 요구에 따라 피고인 측이 추가 의견서를 제출한 뒤, 5월 21일 열린 공판에서 이 사건 주심을 맡은 권성수 부장판사는 변호인 측에 아래와 같이 요구합니다.

■ 재판장(임정엽 부장판사): 권성수 판사가 변호인 측에 질문하겠습니다.

■ 권성수 부장판사: 지금 포렌식 결과가 2013년 6월에 수정되어 있는 파일 그렇게 되어 있는데… 그런 “총장직인 이미지 파일”이라는게 변호인 측에서는 ‘그게 다른 업무용 PC에 있던 걸 복사하는 과정에서 잘 모르는 상황에서 옮겨져왔던 것이다.’라고 (의견서를 보면) 이렇게 취지를 주장하시는 것 같은데, 그 저장된 경위에 관해서 정확하게 그러면 그 컴퓨터에 누가 (저장)했는지, 아님 백업을 이 컴퓨터 파일 전체를 백업했다는 것인지, 집에서 쓰려고 선별해서 가져갔다는 것인지 전혀 (경위 설명이) 없어요.

■ 변호인: 그걸 저희가 알지를 못해서 추정된다고 썼고요, 이 소송에서 저희가 조금… 변호인 개인 생각인데 자꾸 검찰 측이 석명요구를 하고 과거 오래된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형사소송이라는 게 검찰이 기소하면 검찰이 입증하면 되는 것이지 민사소송처럼 계속 주고받고 석명하고 이런 절차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권성수 부장판사: 피고인 입장이 뭔지… 기억이 안 나면 안 난다, 모르면 모른다 하면 객관적인 판단은 우리가 합니다. 그러데 가능성들을 (피고인 측이) 이야기하고 있기에 (그런) 가능성을 우리가 다 심리할 수 없어서 피고인 기억을 들으려고 한 겁니다. (직인 파일이 강사 휴게실 컴퓨터에 저장된) 경위나 방식이 전혀 (변호인이 제출한 의견서에) 언급 안 되고 있어서

■ 변호인: 피고인이 알 수가 없어서….

이상의 문답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5월 7일에 재판부가 피고인 측에 ‘왜 강사 휴게실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지 경위를 설명하라’고 요구한 파일은 ‘총장 직인 파일’을 의미한 것이 틀림 없습니다. 좀 더 확장해서 해석해도 ‘총장 직인 파일’과 ‘(직인이 찍혀 있는) 표창장 파일’이 왜 그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지 설명하라는 뜻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빨간 아재’라는 분 주장처럼 5월 7일에 재판부가 저장 경위를 추가로 설명하라고 요구한 대상이 ‘총장 직인 파일’이 아니라면, 5월 21일 공판에서 위와 같은 문답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5월 7일 정경심 교수 공판에서 재판부가 ‘왜 강사 휴게실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지 추가로 설명하라’고 요구하면서 언급한 파일이 ‘총장 직인 파일’인지 ‘표창장 파일’인지에 대해서 ‘빨간 아재’ 측을 비롯해 들은 사람마다 받아적은 내용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나 5월 7일 재판부의 추가 설명 요구에 따라 변호인이 제출한 의견서에 대해 5월 21일에 다시 주심 판사가 문제 삼은 워딩을 보면, 재판부가 ‘동양대 강사 휴게실 컴퓨터에 저장된 경위’를 설명하라고 요구한 파일은 ‘총장 직인 이미지 파일’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앞서도 말했듯이 재판부가 5월 7일에 사용한 표현이 ‘표창장 파일’인지 ‘직인 파일’인지 자체가 애초부터 중요한 쟁점이 될 만한 일이 아닙니다. 검찰은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와 관련해 동양대 강사 휴게실 컴퓨터를 정경심 교수가 쓴 것으로 보이며, 거기서 ‘총장 직인 이미지 파일’과 (해당 직인 파일을 붙여넣기한 것으로 보이는) 딸 조민의 ‘표창장 파일’이 발견됐다고 증거를 제출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증거를 검토한 뒤 도대체 그 파일들, 즉, ‘총장 직인 파일’ 또는 ‘총장 직인 파일과 조민의 표창장 파일’이 왜 정경심 교수가 썼던 것으로 보이는 컴퓨터에서 저장돼 있는 것인지 설명하라고 변호인에게 요청했던 것입니다. 특히 정 교수 측이 총장으로부터 권한을 넘겨받아 직접 표창장을 발급했다는 취지의 애초의 주장을 바꿔서 동양대 직원으로부터 상장을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왜 정 교수가 썼던 컴퓨터에 ‘총장 직인 파일’ 등이 있었던 건지 재판부는 물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따라서, 정경심 교수가 썼던 컴퓨터에서 ‘총장 직인 파일’이 발견됐다는 사실 자체를 어떻게든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5월 7일에 재판부가 쓴 표현이 ‘표창장 파일’이었는지 ‘직인 파일’이었는지는 애초에 중요한 쟁점으로 삼을 만한 일이 아닙니다. 설사 중요하다고 치더라도 5월 21일 공판 워딩을 통해 재판부는 문제의 파일은 ‘직인파일’, 적어도 ‘직인파일과 표창장 파일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5월 21일 공판 워딩을 보면 어쨌든 정경심 교수의 변호인도 동양대 강사 휴게실에서 발견된 컴퓨터에 정경심 교수가 사용했던 파일들이 저장돼 있고, 거기에 검찰이 ‘총장 직인 이미지 파일’이라고 부르는 파일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빨간 아재’라는 분의 터무니 없는 소리를 반박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긴 글을 쓴 것 같습니다. 헛소리 떠들기는 쉽지만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늘 공력이 너무 많이 들어가네요.

사실 그 ‘빨간 아재’라는 분이 YTN의 ‘뉴스가 있는 저녁’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가서 한 이야기 중에는 이 밖에도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또 있습니다. 재판을 직접 지켜보긴 했지만 기초적인 이해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면 고의로 취지를 왜곡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거기까지 이야기하는 건 정말 에너지 낭비인 것 같아서 더는 지적하지 않겠습니다.

‘빨간 아재’라는 분이 그저 능력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의도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둘 다 일수도 있겠죠. 하지만 앞으로 유튜브에 나와서 함부로 떠들기 전에는 조금만 더 알아보고, 조금만 더 생각을 깊이 해보길 바랍니다.

이런 정도의 사람이 “재판을 빠짐 없이 지켜봤다”면서 방송 뉴스 프로그램에까지 출연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추가]

아래는 위에 쓴 내용 중 사실관계 부분만 요약한 것입니다. 이것만 읽어봐도 누구 이야기가 타당한지 쉽게 판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검찰 주장

  • 정경심 교수의 딸 조민이 부산대 의전원 입시 과정에서 제출한 동양대 총장 표창장은 정 교수가 위조한 것이다.
  • 정경심 교수가 사용했던 컴퓨터에서(동양대 강사 휴게실에서 발견된 컴퓨터) 나온 ‘총장 직인 이미지 파일’과 ‘(그 직인 파일이 붙여넣기된) 조민의 총장 표창장 파일’이 발견됐다는 사실을 증거로 제출한다.

■ 재판부 요구 1

  • 정경심 교수는 검찰 주장과 달리 위조한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발급된 총장 표창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그런데 정경심 교수는 동양대 총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딸의 표창장을 총장 대신 발급해줬다는 것인가 아니면 동양대 총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발급받았다는 것인가. 지금까지는 어떤 쪽인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는데, 표창장 발급 경위에 대한 피고인 측 입장을 정리해서 재판부에 제출하라.

■ 피고인 측 설명 1

  • 정경심 교수가 발급한 것이 아니라, 누군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동양대 직원으로부터 총장 표창장을 받은 것이다.

■ 재판부 요구 2

  • 그렇다면 왜 정경심 교수가 썼던 컴퓨터에 ‘총장 표창장 파일’이 저장돼 있는 것인지 설명하라 (‘빨간 아재’ 버전)
  • 그렇다면 왜 정경심 교수가 썼던 컴퓨터에 ‘총장 직인 파일’이 저장돼 있는 것인지 설명하라 (SBS 버전)

■ 피고인 측 설명 2 (재판부가 밝힌 내용)

  • 정확히 경위는 기억나지 않지만 다른 업무용 PC에 있던 걸 복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총장 직인 이미지 파일”이라고 부르는 파일도 복사된 것 같다.

■ 재판부 요구 3

  • “총장 직인 이미지 파일”을 누가 그 컴퓨터에 저장한 것인지, 업무용 PC에 있던 파일 전체를 (강사 휴게실에서 발견된 컴퓨터에) 백업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 파일만 복사했다는 것인지, 파일 저장 경위를 구체적으로 더 설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