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로이 콘은 누구인가

사진 = 기자회견을 하는 도널드 트럼프와 로이 콘

“로이 콘은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대응) 방식을 시작했는데, 논점에서 벗어나고, 법 집행기관을 공격하고, 정부를 공격하고, 언론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가짜 이슈를 만들어내서 논쟁을 완전히 뒤바꿔버리고요.”


데이비드 케이 존스턴 / 로이 콘을 취재했던 탐사 저널리스트

“Roy Cohn began the whole new mode of what you can see today, of get off the issue, attack law enforcement, attack the government, attack the press. Create phony issues so that you can totally change the debate.”


David Cay Johnston


넷플릭스에 있는 [로이 콘, 악마의 변호사 Where’s my Roy Cohn?] 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이런 인물에 대해 지금까지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 신기할 정도로 인상적인 내용이었다.


로이 콘은 부유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연방 법무부 소속 검사가 되었다. 검사 시절에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공안 사건인 로젠버그 부부 간첩 사건에 관여했다. 이후 상원으로 자리를 옮겨서 매카시즘으로 이름을 역사에 남긴 상원의원 존 매카시의 수석 법률 보좌관을 맡아 청문회 정국을 주도했다. 매카시가 몰락하자 뉴욕으로 돌아가 마피아들을 변호했고, 동성애자였으면서도 이를 숨긴 채 유명 방송앵커 바바라 월터스와 약혼했다. 젊은 도널드 트럼프의 멘토였고, 후일 트럼프의 선거 브로커가 되는 로저 스톤의 스승이었으며, 레이건의 당선에도 결정적 공을 세웠보통 사람이라면 4~5번 쯤 인생을 다시 살아도 이루기 힘들만큼 화려한 경력(또는 악업)을 쌓은 셈이다.

다큐는 로이 콘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로이 콘이 여러 차례 검찰 수사 등을 받으면서도 에이즈에 걸려 몸과 정신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패하지 않고 살아남았던 이유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먼저 로이 콘은 미디어를 이용해 자신에 대한 기소가 검찰의 정치적 보복 또는 검사의 개인적 보복이라고 선동했다. 수사 착수 시점과 다른 피의지와의 형량거래 방식 등을 문제 삼으며 자신에 대한 수사에 다른 목적이 있다고 로이 콘은 기자들 앞에서 여러 차례 주장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연방검사인 모겐소 씨는 마지막으로 기소를 하기 60일 전에 이 사건을 터트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저의 명성을 더럽히는 두 개의 지저분한 뉴스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겠죠. 세 번째 기소 이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연방검사 모겐소의 복수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 로이 콘 / 법정 앞에서 기자들을 만나


“10개의 혐의로 구성된 공소제기였습니다. 위증죄, 사법방해죄, 위증음모죄, 사법방해음모죄 등입니다. 공소장이 48쪽이나 됩니다.”

– 로이 콘


로이 콘의 또 다른 특징은 위선이었다. 평범한 사람 같은면 인정하고도 남을 만큼 명백한 상황에 직면해도 로이 콘은 절대로 자신의 범행이나 약점을 시인하지 않았다. 다큐에서는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서도 로이 콘이 위선적으로 대응했다는 주장이 소개된다. 단순히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긴 것이 아니라(이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밝혀야 할 의무도 없고…), 동성애를 혐오하는 척하고, 에이즈에 걸린 후에는 인맥을 이용해 특혜성 치료를 받으면서도 죽기 직전까지 방송에 출연해서 이를 부인했다는 것이다.


“에이즈에 걸렸다는 걸 부인한 건 로이의 실수였어요. [마지막 순간까지] 동성애자라는 걸 부정한 것도 실수였죠. 커밍아웃을 하고 ‘난 동성애자이고 에이즈에 걸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커뮤니티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해요.’ 이렇게 나섰다면 영웅이 됐겠죠. 대신 그는 끝까지 위선자로 남았어요.”

– 로이 콘의 사촌


그밖에도 이 다큐에서는 “오늘 날 흔히 볼 수 있는” 언론에 대한 공격, 법 집행 기관에 대한 공격, 그리고 가짜 이슈를 만들어 여론을 호도하는 전술을 시작한 사람이 로이 콘이었다고 설명한다. 젊은 시절에 로이 콘의 도움을 받았던 도널드 트럼프에게 이런 방법을 가르쳐 준 사람도 로이 콘이었다. 다큐의 영문 제목인 “Where’s my Roy Cohn?” 역시 도널드 트럼프의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로이 콘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법률 고문 계약을 즉시 파기했다고 한다.)


법 집행기관을 공격하고, 언론을 공격하고, 가짜 이슈를 만들어내 여론을 호도하는 수법은 이제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해진 방식이다. 검찰의 수사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고, 언론은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것이고, 정의로운 사람의 비위 의혹을 부풀리는 적폐 세력이 진짜 문제라는 방식 말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전술을 로이 콘이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에서는 누가 이런 방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기억될까?


우리의 로이 콘은 누구인가?


다큐 꼭 보시기 바란다.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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