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비판과 언론혐오의 구분

조금 전 한겨레가 좋은 인터뷰 기사에 엉뚱해 보이는 제목을 붙인 점을 지적하며 언론혐오를 부추기는 것이 왜 위험한지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후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같은 기사를 두고 원래 기사를 작성한 매체인 한겨레21의 홈페이지와 이 기사를 이틀 뒤 다시 전재한 한겨레 홈페이지에 달린 기사 제목이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 사회안전소통센터장 “마스크 대란 원인은 ‘위험소통’ 실패 (한겨레21 / 2020년 3월 6일 / 전정윤 기자)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48349.html?fbclid=IwAR2gQL7EfM3VznDrBBTh2yzgFxDfYN5S7otVbgAay8XZyPclok-jAzA27gQ

▶ “마스크 대란 ‘공포팔이’ 언론 한몫…보도준칙 따랐나 의문” (한겨레 / 2020년 3월 8일 / 전정윤 기자)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31619.html

(※ 기사 업로드 날짜는 다르지만 내용이 같은 기사임. / 추가: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기사 제목은 기사를 쓴 기자가 아니라 편집을 담당하는 기자가 결정함.)

원래 한겨레21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기사 제목에는 마스크 대란 주된 원인을 (정부의) ‘위험소통’ 실패라고 지적한 인터뷰 내용이 충실하게 반영돼 있다. 반면 이틀 뒤 같은 기사를 다시 올린 한겨레 홈페이지의 기사 제목에는 인터뷰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부 비판이 빠져있다. 마치 언론이 사태를 터무니 없이 부풀린 것이 문제의 주된 원인인 것처럼 제목이 변경돼 있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이 인터뷰 내용은 매우 좋다고 생각하고, 인터뷰를 한 안종주 센터장이 언론의 책임을 지적한 대목도 적절하다고 평가한다. 참고로 인터뷰의 첫 문단은 이렇다: “제가 40년 가까이 보건복지 분야에서 공부하고 일했는데, 마스크 두세 개 사려고 3~4시간씩 줄을 서고 그 줄이 몇 킬로미터나 늘어서는 광경은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어요. 우리 감염병 역사는 물론, 적어도 제 기억엔 전세계 감염병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에요. 마스크 대란만큼은 변명의 여지 없이 정부가 위험소통에 완전히 실패한 사례입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앞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나는 정파적 목적으로 언론혐오를 부풀리는 경향에 대해서 비판했다. 물론 일부 매체는 이슈를 가리지 않고 정략적 목적의 보도를 줄기차게 이어가고 있고, 이는 적어도 2000년대 초반 안티조선 운동 또는 조중동 반대 운동 이후 거의 20년 가까이 우리 사회에서 의제화된 문제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일부 매체들의 정략적 보도에 기대서 언론 전체를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방식으로 정략적 또는 사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경향이 너무나 눈에 띄게 극심해지고 있다. 앞서 말했지만 조국 사태 당시 여러차례 사실을 왜곡하며 언론혐오를 증폭시켰던 유시민 씨와 ‘알릴레오’가 대표적 사례이다. KBS 언론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일부 패널들의 문제 발언들 역시 비슷한 사례로 묶을 수 있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한겨레 페이스북은 아래 동영상 기사를 소개했다….동영상 썸네일에는 “공포와 혐오, 갈등의 바이러스 언론이 숙주다.”라고 적혀 있다.

▶ [영상+] “코로나 정부 책임론, 총선 의식한 정략적 보도” (한겨레신문 / 2020년 3월 8일 / 정준희 교수 동영상 인터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31638.html?fbclid=IwAR3ZlzM_IzMxz0mQBn52MQi6sEfE_GybZ1kfu1pvHsvmWA6MnNt2HjZSrIo

언론혐오가 장사가 된다면, 그 1차적 원인은 언론 매체들이 제공한 것이다. 언론 보도의 수준이 높고 사회적 신뢰를 얻고 있다면 언론혐오를 부풀려 이득을 취하려는 ‘언론혐오 마케터’들이 발 붙일 공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잘못이 있다고 해서 정략적 목적이 분명한 언론혐오 조장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것 역시 또 하나의 무책임한 행동이다. 언론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없어서도 안 되고 결국에는 없어지지도 않을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쓴 글에서도 말했지만 언론의 잘못은 언론에게, 정부의 잘못은 정부에게 돌려야 한다. 우리 편에 유리한 기사를 쓰거나 객관적으로 훌륭한 보도를 한 매체나 기자는 ‘개념기자’라고 개별적으로 칭찬하고, 우리 편에 불리하거나 객관적으로 문제가 있는 보도를 한 매체나 기자가 있을 경우 ‘언론’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행태 역시 언론혐오를 부풀리는 방식 가운데 하나다.

정당한 언론 비판은 지금도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편을 보호하기 위해 언론혐오를 부풀리는 일을 멈춰야 한다. 언론비평의 정파화 경향도 돌아보아야 한다.

모든 언론이 쓰레기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는 숨 쉴수 있는 모든 공기가 오염된 세상과 같다. 정당한 언론비판과 정략적 언론혐오를 구분하는 일은 이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가 됐다.

언론비판과 언론혐오의 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