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소 분리와 의약분업: 개혁 원칙에 대한 오해

수사-기소 분리라는 말이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의약분업이란 단어는 매우 익숙하실 겁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로 요약되는 정책이죠. 의약분업이 처음 추진될 때는 사회적 갈등이 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상태인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틀린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약분업이 예외없이 시행되고 있는 정책은 아닙니다. 일부 특별한 경우에 대해서는 의사가 직접 의약품을 조제하는 것을 허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의사 한 명이 진료도 하고 처방전도 쓰고 의약품 조제까지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한 사람이 진료부터 의약품 조제까지 직접 담당하는 것은 약물 오남용 가능성 등 부작용이 크고 의약분업 원칙에 맞지 않는다.’면서, 의사가 직접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도록 허용된 경우에도 의약품을 조제하는 의사는 조제만 하고 진료는 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강제한다면 의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당연히 반발할 것입니다. ‘환자를 진료하는 사람’이 의사인데, 본업을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의사들로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겠죠. 즉,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의약분업 원칙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예외적으로 의약품 조제를 맡은 의사에게 의사의 본업인 진료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의약분업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한 것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 정책에 대해 오해하시는 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수사-기소 분리’ 원칙을 지지하는 것과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 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금태섭 의원 등이 주장했던 수사-기소 분리는 비유하자면 의약분업, 즉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정책에 가까워 보입니다. ‘수사는 (사법)경찰에게 기소는 검사에게’라는 정책이죠. 사실 이런 의미의 ‘수사-기소 분리’ 원칙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전임자인 문무일 검찰총장도 천명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추미애 장관이 운을 띄운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는 문언 그대로만 해석하면 일부 의사에게는 진료를 하지 말고 의약품 제조만 하라는 정책에 가까워 보입니다. 물론 추 장관이나 법무부가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라는 말만 보면 그간 논의돼 왔던 ‘수사-기소 분리 원칙’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보입니다. 문무일 검찰총장 등도 주장했던 ‘수사-기소 분리’에 찬성했던 사람들이 추 장관 정책에 비판적 시각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분들은 논점을 헷갈린 셈입니다.

물론 검찰개혁 원칙으로 제시됐던 ‘수사-기소 분리’ 방침을 검찰 내부적으로 적용하는 것 또한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일부 검사에게는 수사만 맡기고, 기소는 다른 검사가 하는 방법을 검토는 해볼 수 있습니다. 검사의 업무가 천부적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국민이 원하면 바꿀 수 있겠죠. 그러나 이 방안은 ‘수사는 (사법)경찰에게, 기소는 검사에게’라는 원래 의미의 ‘수사-기소 분리’ 개혁 과 달리 검사가 공소제기(기소)의 주체라는 우리 형법과 형사소송법의 체계 자체를 바꿔야야 하는 사안입니다.

물론 공수처의 가장 유력한 모델로 꼽히는 영국의 중대부정수사처(SFO)에서는 수사를 맡은 검사가 기소에는 관여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와 법 체계가 근본적으로 다른 영국 법에 따라 이뤄지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다르냐면, 예를 들어 영국에는 성문헌법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형사사법체계를 바꿔서 영국 같은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법무부 장관이나 법무부 차원의 결단을 넘어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특히 앞으로 청와대 관련 사건 추가 기소가 유력한 시점에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이 혼자 결단할 문제는 전혀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찬성하는 입장에 가깝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검사가 수사를 담당하는 금융범죄나 기업범죄 등 예외적 몇 개 분야에서는 수사와 기소를 결합시킨 형태의 ‘직접수사’ 또는 관련 기관 통합 TF가 운영될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만, 부패범죄 전담 수사기관을 설치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하면서 검찰의 직접수사를 줄여서 ‘수사-기소 분리 원칙’을 실현하는 것이 큰 틀에서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추미애 장관의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는 말 자체로만 보면 ‘수사-기소 분리 원칙’이라는 검찰개혁 방안과는 달라 보입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팀의 독단으로 부작용이 있었던 사례 못지 않게, 정치적인 사건에 있어서 수사팀의 정당한 주장을 수사 과정과 분리된 대검이나 법무부가 찍어 누르려고 압력을 가한 잘못된 경우가 매우 많았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 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 댓글 사건 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검찰 내부에서도 ‘수사-기소 분리 원칙’의 정신을 살려서 ‘레드팀’ 개념의 수사결과 점검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 등은 충분히 논의해 볼만합니다. (일부 시행 중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추 장관이 말하는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가 그런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어떤 검사에게는 수사만 맡기고 전혀 다른 검사가 기소를 하게 하는 형식이라면, 그리고 기소를 맡은 검사가 수사를 맡은 검사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하거나 영장청구 여부 결정을 통해 수사 과정을 통제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이같은 방식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워 보입니다. 게다가 법무부 장관이 이 방안을 추진하는 시점 역시 충분히 의심을 받을 만합니다.

‘조국 사태’ 이후 검찰개혁과 관련된 여러 원칙과 명분이 왜곡된 방식으로 동원되면서 상당히 많이 훼손됐습니다. ‘수사-기소 분리 원칙’까지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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