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분석 문건’에 대한 오해


오늘 오전에 출고한 취재파일을 통해서 나름대로 상세하게 ‘재판부 분석 문건’의 성격에 대해 분석했지만, 오히려 너무 글이 길다보니 논지가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도 같습니다. 제 글솜씨의 문제겠죠.

그래서 재판부 분석 문건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힌 창원지법 이봉수 부장판사님의 글에 나오는 기준을 근거로 문건의 성격에 대해 다시 한번 따져보려고 합니다.

이봉수 부장판사님은 지난 3일 법원 내부 통신망 코트넷에 올린 글에서 “재판장이 증거채부에 관해 엄격한지, 특정 유형의 사건에 유무죄 판결을 어떻게 하는지, 양형은 엄한 편인지 등을 미리 조사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면서 이와 관련된 정보 수집은 정당하다고 썼습니다.

반면 “재판장의 종교, 출신, 가족관계, 특정연구회 등 사적인 정보는 공소유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봉수 부장판사님이 9쪽 문건 전체를 다 보셨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문건 내용의 90% 이상은 이봉수 부장판사가 수집하는 것이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규정한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재판장이 증거채부에 관해 엄격한지, 특정 유형의 사건에 유무죄 판결을 어떻게 하는지, 양형은 엄한 편인지 등”에 대한 정보가 문건 내용의 대부분인 것입니다.

이에 관련해서는 제가 정보의 성격별로 카테고리화해서 분류해놓은 글이 있으니,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분은 아래 링크한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첨부한 사진은 문건의 첫 번째 페이지입니다. 이런 페이지 9개로 구성된 문건이니까 전체 분량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 링크된 취재파일 기사 하단에 이예 문건 전문이 게재돼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봉수 부장판사님은 공소유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힌 정보가 해당 문건에는 얼마나 포함돼 있을까요?
이 부장판사님은 1) 종교 2) 출신 3) 가족관계 4) 특정연구회 등 사적인 정보가 공소유지와 아무 관련이 없는 정보라고 규정했습니다.

일단 1) 종교에 대한 정보는 문건에 아예 언급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더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3) 가족관계와 4) 특정연구회 등 사적인 정보는 (이봉수 부장이 직접 언급하지 않은 ‘취미’까지 포함해) 9쪽 가운데 정확
히 4줄 언급돼 있습니다.

“<세평>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나, 합리적이라는 평가”

“<특이사항> ○○○○ 2차장의 처제”

“행정처 16년도 물의야기법관 리스트 포함(15. 휴일당직 전날 술을 마시고 다음날 늦게 일어나 당직법관으로서 영장심문기일에 불출석, 언론에서 보도)”

“법관임용 전 대학-일반인 취미 농구리그에서 활약, 서울법대 재직 시부터 농구실력으로 유명”

이게 전부입니다.

단, 이봉수 부장판사님이 판사의 출신 고교나 대학에 대한 정보를 검사가 알 필요가 없는 정보라고 규정한 것에는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재판부 기피신청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초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재판부 판사들의 출신 고교/대학교입니다. 법원에서도 판사가 검사나 피고인과 같은 대학 같은 과 동기 관계 등이 있을때 판사가 스스로 회피하는 사례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이를 공소유지와 관련 없는 정보라고 규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공소 유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관련 자료로 판단되는 판사의 출신 학교 정보 (이는 법조인대관 등을 통해 모두 일반에 공개된 자료기도 합니다.)를 제외하면, 9쪽 분량의 문건 내용 중 4문장을 제외한 모든 내용은 이봉수 부장판사님이 “칭찬해 마땅한 일”이라고 규정했던 정보에 해당합니다.

9장 짜리 문건을 작성했는데, 이 내용 중 네 문장을 제외하면 모두 이봉수 부장판사님 말처럼 “칭찬해 마땅한” 정보일 경우 문건 성격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 것이 타당할까요? 부적절한 정보를 수집하려고 만든 문건으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칭찬해 마땅”한 일을 하기 위해 작성한 문건으로 판단해야 할까요?

이봉수 부장님은 공판검사가 아니라 대검에서 이 정보를 취합한 행위의 문제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법원과 달리 수직적인 조직입니다. 재판장은 배석 판사들에 대한 지휘권이 없지만, 검찰총장은 사건과 검사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합니다. 따라서 최종적인 의사결정자인 검찰총장에게 주요한 공판과 관련된 정보들이 반드시 보고되어야 합니다.
이봉수 부장님 말씀대로면 공판검사들이 검찰총장에게 직보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 것이고, 대검의 특정 부서가 공판 검사들을 상대로 정보를 취합해서 보고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물론 저 역시 대검에서 정보를 취합하더라도 이른바 특수-공안 공소유지를 직접 지휘 감독하는 대검 반부패부나 대검 공공수사부(옛 공안부)에서 보고를 종합해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는 편이 더욱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검찰총장에게 보고되어야 하는 정보를 취합하는 업무를 대검의 어느 부서인가가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담당 부서를 적절하지 못하게 지정한 것이 검찰총장 징계사유가 될 정도로 심각한 실수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재판부 분석 문건의 성격, 특히 이 문건에 담겨 있는 정보의 성겨과 취합 및 보고 과정의 부적절성 여부에 대한 제 생각은 이제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런 글을 쓰면 내용이 아니라 ‘너는 누구의 편이냐’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미 인터넷에 공개된 문건 전문을 자세히 읽어만 봐도 피할 수 있는 오해에 빠져 있거나, (이봉수 부장판사님은 이런 경우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의도적으로 오해를 부풀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에 제 판단을 몇 차례 글로 옮겼습니다. 이 정도면 제 생각은 충분히 설명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