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직 처분’의 속내?

  • 한줄 요약
    법무부와 청와대 입장에서는 해임 대신 정직을 선택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면서도 집행정지 리스크는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2020년 12월 1일에 서울행정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정지 처분 집행정지를 결정한 직후, 저는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윤석열 해임보다는 정직 처분을 의결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전망했습니다.

이제 와서 결과론 비슷하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내부적으로 이와 같은 저의 개인적 분석 또는 전망을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 8뉴스에 출연해 두 문장 정도로 말한 적도 있습니다. 아래의 긴 글은 그날 말한 두 문장의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한 버전으로 보실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전망한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직무배제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된 직후 청와대와 신임 이용구 법무부 장관이 일관되게 “절차적 공정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직무배제 처분의 집행정지 인용 결정 이후 여론이 윤석열 총장에게 유리한 쪽으로 선회하자 절차적 공정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징계위 이전 단계의 공식 자문기구인 법무부 감찰위원회에서 윤석열 대상 감찰과 징계청구 절차에 중대한 흠결이 있다고 지적한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징계위원회 단계에서 절차적 공정성을 준수한다고 해도, 법률적으로는 이미 이전 단계인 징계 청구 단계에서의 절차상 흠결이 치유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무적 차원에서는 징계위 단계에서라도 절차적 공정성을 보장하는 모습을 강조하면 징계 결과가 나온 이후 여론을 호의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계산이 엿보였습니다.

그러나 설사 이런 계산이 모두 맞아 들어가더라도 또 다시 서울행정법원의 집행정지 인용 여부가 문제가 됩니다. 만약 징계위가 해임을 의결할 경우 윤석열 총장 측은 거의 100%의 확률로 해임 처분의 집행저지를 서울행정법원에 다시 신청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직무배제 처분의 집행정지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신속하게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해임 처분 집행정지 사건의 결과에 따라 또 다시 해임 처분의 정당성에 대한 여론의 판단이 크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집행정지 사건은 처분의 정당성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법률적으로 명확합니다. 하지만 집행정지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 역시 실무적으로는 징계 처분의 정당성 여부를 완전히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점, 그리고 집행정지 결정으로 인해 윤석열 총장이 두 번째로 총장 직무에 복귀한다면 법률적 의미와는 별개로 여론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압도적일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 비춰볼 때, 징계위가 해임 처분을 의결한 후 이에 대해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는 상황은 추미애 장관이나 청와대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빼든 칼을 다시 넣기에는 추미애 장관이나 청와대나 퇴로가 없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경우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카드가 정직 처분으로 보입니다.

정직 처분을 할 경우 해임 처분을 할 때보다 향후 예상되는 집행정지 사건에서 인용될 가능성이 일단 줄어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됐지만 집행정지 사건의 판단 기준은 징계 처분 자체의 정당성 여부가 아니라 징계로 인해 (설사 나중에 징계 처분이 소송을 통해 취소된다고 하더라도)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당장 발생하는지이기 때문입니다. 총장직에서 영구적으로 쫓아내는 해임 처분에 비해 일시적으로 직무를 정지하는 정직 처분은 “회복할 수 없는 피해”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법무부나 청와대 입장에서는 정직 처분을 할 경우 가장 부담스러운 시나리오인 ‘징계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임과 달리 정직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직 처분이 실질적으로 당사자에 대한 해임이나 면직을 의미하거나, 정직 처분 자체로 인해 당사자나 소속 기관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다고 판단한다면 법원은 정직 처분의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09년에 전주지방법원 행정부는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승인해 정직 처분을 받은 전북 장수중학교 교사에 대한 정직 3개월 징계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집행정지 인용 사유는 매우 원론적인 “정직 처분에 따른 신청인의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조속히 효력을 정지할 필요가 있고 효력 정지 때문에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도 없다”였지만, 원론적 사유가 정직 처분에서 인정된 사례가 있다는 것이 이 경우에는 더욱 중요해 보입니다.

정직 처분을 할 경우에는 법무부나 청와대 입장에서 해임 처분에 비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덜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할 수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면 정직 처분을 할 경우 해임과 달리 윤석열 총장이 1~6개월 뒤에는 다시 총장직에 복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직 처분이 내려졌을 때의 상황을 예상해보면 의외로 법무부나 청와대로서는 실익이 적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일단 정직 6개월 처분은 가능성이 좀 낮아 봅입니다. 검사징계법에 따르면 정직 처분은 6개월까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정직 6개월이면 윤석열 총장 임기 종료일 직전까지 직무가 정지되는 것으로, 이는 해임과 사실상 거의 동일한 효과가 있습니다. 해임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인용 가능성을 의식해 정직 처분을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이 옳다면 굳이 6개월씩 정직 처분을 해서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서의 리스크를 올릴 이유는 없습니다.

3개월 정도의 정직 처분만 해도 법무부와 청와대 입장에서는 실익이 크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3개월 정도의 정직 처분을 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가장 민감한 사건인 대전지검의 원전 폐쇄 관련 의혹 사건을 윤석열 총장이 지휘할 수 없게 됩니다. 앞으로 3달 뒤면 이 사건은 기소까지 모두 마무리될 테니까요.

대신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이 사건을 지휘하게 될 것입니다. 이 경우 윤석열 징계와 관련해 법무부와 청와대 방침에 반대의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던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는 교체될 것으로 보입니다. 원전 수사를 진행하는 대전지검의 기관장인 이두봉 대전지검장 역시 교체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 자리에는 추미애 장관과 청와대가 검찰개혁에 협조적이라고 판단하는 검찰 간부가 새롭게 임명될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도 윤석열 징계 청구에 대해 전국 고검장급, 검사장급 간부들 대부분이 반대 성명을 발표할 때 이름을 올리지 않은 10명 안쪽의 검찰 간부 중 누군가가 대검 차장검사와 대전지검장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해당되는 분 입장에서는 요즘 마음이 설레는 상황일지도 모르겠네요.

만약 윤석열 총장의 직무가 정지된 사이에 총장 직무대행인 대검 차장검사 자리와 수사 실무 총책임자인 대전지검장, 내친 김에 대전지검 담당 부장검사까지 바꿔버린다면 윤석열 징계 심의를 담당한 징계위원인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10여일 전까지도 변호했던 원전 폐쇄 사건의 핵심 피의자들은 상당 부분 안도의 한숨을 쉴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와대와 여당 입장에서도 근심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요. 이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백운규 전 장관이 공교롭게도 윤석열 징계위가 열리기 하루 전에 보도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원전 폐쇄와 관련한 청와대 지시 여부에 대해 “그걸 어떻게 말할 수 있겠냐”라는 말을 한 상황이기도 하니 그럴 가능성이 더욱 있어 보입니다.

[단독]백운규, 靑 원전 지시 묻자 “그걸 어떻게 말할 수 있나” (중앙일보, 2020년 12월 9일)

https://news.joins.com/article/23941063?cloc=joongang-section-moredigitalfirst

얼마 전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가 서울고등검찰청에 재배당한 이른바 ‘재판부 불법 사찰 의혹 문건’ 사건 수사 과정에서의 대검 감찰부의 부당행위 의혹에 대한 조사 내지 수사도 주목해 볼 대목입니다. 윤석열 총장은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건이라고 해서 이 사건에 대한 지휘를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에게 맡기고 회피했지만, 윤석열 총장에 대한 정직이 결정된다면 총장 직무대행을 맡을 사람, 아마도 조남관 대검 차장 검사를 대체할 신임 대검 차장검사는 이 사건을 직접 지휘하게 됩니다. 신임 대검 차장은 서울고검에서 사건을 이성윤 검사장이 현재로서는 책임지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에 재배당할 수도 있고, 법무부 장관이 보기에 검찰개혁에 협조적이라고 판단하는 검찰 간부 중 한 명을 특임검사로 임명해달라고 법무부에 요청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윤석열이 정직될 경우 대검 감찰부의 ‘재판부 불법 사찰 의혹 문건’ 수사 과정의 문제점에 대한 서울고검의 조사 내지 수사에는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외에도 내년부터 본격적인 정식 공판이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울산시장 선거에 대한 청와대 인사들의 불법 개입 의혹 사건 등 다른 민감한 사건 역시 윤석열 정직 처분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은 추가 기소 여부를 놓고 서울중앙지검장과 수사 검사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는 취지의 보도가 최근 나오기도 했습니다.

[단독]秋 해체한 ‘울산시장 선거’ 수사팀 ‘이진석 혐의 확인’ 보고서 남겼다 (문화일보, 2020년 11월 10일)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111001070127330001

이와 같이 윤석열에 대한 정직 처분이 집행될 경우 일단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민감한 사건과 관련해서 법무부나 청와대는 ‘실익’을 취할 수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실익’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정직 처분 역시 중징계인 만큼, 여당이나 여당의 이익을 언제나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여권 스피커들은 사상 최초의 징계를 받은 검찰총장이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개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절차적 문제는 있고, 해임은 과도해보이지만, 정직 정도는 적당해보인다.’라는 의견을 중도적 포지션을 자처하는 여권 성향의 언론인 내지 법조인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 정직 처분이 의결되면 윤석열이 마땅히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마침 한겨레TV 유튜브를 보니 이미 이런 제목의 동영상도 올라왔더군요. 예상이라고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노골적인 상황 같습니다. 만약 정직 처분 집행 후 문재인 대통령 또는 청와대 대변인 명의로 윤석열 자진사퇴를 언급하는 메시지까지 나온다면 자진사퇴 요구의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무죄 제조기’ 윤석열, 그가 사퇴해야 하는 이유 [이철희의 공덕포차 ep09 엑기스1] ( 한겨레TV 유튜브, 2020. 12. 8.)

https://www.youtube.com/watch?v=KOhQhaPM_lA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 등이 윤석열 징계위원회가 처음으로 소집된 지 하루만인 12월 11일에 ‘검사-법관 퇴직 후 1년간 출마 금지법’을 발의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퇴직 후 90일 이후부터는 공직에 출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다른 공무원들과 달리 검사와 법관의 경우 퇴직 후 1년 동안 공직 출마를 금지하도록 법을 개정하겠다는 내용인데, 최 의원 등이 법안을 발의하자마자 여러 언론이 이를 ‘윤석열 출마 금지법’으로 해석했습니다. 윤석열 총장이 임기를 모두 마칠 경우 내년 7월 25일까지 총장직을 수행하게 되는데, 이 경우 현행 법률로서는 이후 내후년 3월에 열린 차기 대선에 출마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지만, 최강욱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이 통과되면 윤석열 총장은 대선에 출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강욱 의원은 언론 보도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윤석열 총장을 노린 법안이 아니라고 해석했지만, 지난 총선에서 야당 뿐만 아니라 여당에서도 퇴직하자마자 출마를 발표한 법관 등 때문에 논란을 빚은 적이 있는 상황에서, 이 시점에 이 같은 법안을 발의하는 것을 윤석열 현상과 분리시켜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런데 이 법안을 윤석열 징계위와 연결시켜 해석하는 사람들은 현 정부 핵심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최강욱 의원이 ‘윤석열 출마 금지법’을 발의했다는 것 자체가 법무부와 청와대가 해임 처분을 선택 옵션에서 사실상 배제했다는 뜻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만약 윤석열 총장이 이번에 해임될 경우 2020년 3월 대선까지는 1년 이상 남았기 때문에 최강욱 의원의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대선에 출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정직 처분 후 다시 총장직에 복귀해 임기를 모두 채울 경우 최강욱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금지하는 대상, 즉 퇴임 후 1년 미만의 검사의 출마를 금지하는 경우에 해당됩니다.

(물론 해임된 공무원이 정무직 공무원인 대통령직에 출마할 수 있냐는 법적 논란도 있지만, 해임된 공무원도 출마할 수 있다는 견해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만약 최강욱 의원의 법안이 여러 언론이 해석하는 것처럼 윤석열 총장을 겨냥한 것이라면, 이는 해임 처분은 상정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정직 이하의 징계 처분 또는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경우에만 윤석열 총장의 출마 여부가 최강욱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관련이 있게 됩니다. 물론 이는 최강욱 의원의 법안이 사실상 윤석열을 겨냥한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이뤄지는 분석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최 의원은 이 같은 의심 내지 분석을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현재로서는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윤석열 총장에 대해 해임보다는 정직 처부분을 의결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은 상당히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런 분석의 맹점은 정작 징계 사유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배제하고 따져봤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지금은 윤석열을 징계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추미애 장관이 발표한 징계 사유 대부분이 근거가 부족하거나 과도하게 부풀려졌거나, 적어도 감찰 및 징계 청구 과정에 중대한 절차적 흠결이 있다고 판단하는 상황인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추미애 장관과 청와대에 ‘윤석열 총장을 쫓아내려 한다.’라는 목적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합의를 본 상황에서 여러 분석과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결론이 정직 처분일 것이란 예상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윤석열과 추미애의 갈등이 지겹다며, 추미애도 무리했지만 윤석열의 잘못도 무시할 수 없다며, 정직 처분을 강력하게 거론하는 분들은 실제로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추정해 볼 여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런 분석은 모두 뇌피셜이고, 근거가 없고, 법무부와 청와대는 어떤한 목적 의식도 없이 윤석열의 징계 사유의 정당성 여부만 놓고, 절차적 정당성을 모두 준수해, 엄밀하게 판단한 후, 무혐의 처분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보는 분들이 있다면… 저로서는 그냥 그분들에게는 ‘네, 당신 말이 옳습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