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소 분리와 의약분업: 개혁 원칙에 대한 오해

수사-기소 분리라는 말이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의약분업이란 단어는 매우 익숙하실 겁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로 요약되는 정책이죠. 의약분업이 처음 추진될 때는 사회적 갈등이 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상태인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틀린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약분업이 예외없이 시행되고 있는 정책은 아닙니다. 일부 특별한 경우에 대해서는 의사가 직접 의약품을 조제하는 것을 허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의사 한 명이 진료도 하고 처방전도 쓰고 의약품 조제까지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한 사람이 진료부터 의약품 조제까지 직접 담당하는 것은 약물 오남용 가능성 등 부작용이 크고 의약분업 원칙에 맞지 않는다.’면서, 의사가 직접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도록 허용된 경우에도 의약품을 조제하는 의사는 조제만 하고 진료는 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강제한다면 의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당연히 반발할 것입니다. ‘환자를 진료하는 사람’이 의사인데, 본업을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의사들로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겠죠. 즉,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의약분업 원칙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예외적으로 의약품 조제를 맡은 의사에게 의사의 본업인 진료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의약분업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한 것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 정책에 대해 오해하시는 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수사-기소 분리’ 원칙을 지지하는 것과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 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금태섭 의원 등이 주장했던 수사-기소 분리는 비유하자면 의약분업, 즉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정책에 가까워 보입니다. ‘수사는 (사법)경찰에게 기소는 검사에게’라는 정책이죠. 사실 이런 의미의 ‘수사-기소 분리’ 원칙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전임자인 문무일 검찰총장도 천명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추미애 장관이 운을 띄운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는 문언 그대로만 해석하면 일부 의사에게는 진료를 하지 말고 의약품 제조만 하라는 정책에 가까워 보입니다. 물론 추 장관이나 법무부가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라는 말만 보면 그간 논의돼 왔던 ‘수사-기소 분리 원칙’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보입니다. 문무일 검찰총장 등도 주장했던 ‘수사-기소 분리’에 찬성했던 사람들이 추 장관 정책에 비판적 시각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분들은 논점을 헷갈린 셈입니다.

물론 검찰개혁 원칙으로 제시됐던 ‘수사-기소 분리’ 방침을 검찰 내부적으로 적용하는 것 또한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일부 검사에게는 수사만 맡기고, 기소는 다른 검사가 하는 방법을 검토는 해볼 수 있습니다. 검사의 업무가 천부적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국민이 원하면 바꿀 수 있겠죠. 그러나 이 방안은 ‘수사는 (사법)경찰에게, 기소는 검사에게’라는 원래 의미의 ‘수사-기소 분리’ 개혁 과 달리 검사가 공소제기(기소)의 주체라는 우리 형법과 형사소송법의 체계 자체를 바꿔야야 하는 사안입니다.

물론 공수처의 가장 유력한 모델로 꼽히는 영국의 중대부정수사처(SFO)에서는 수사를 맡은 검사가 기소에는 관여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와 법 체계가 근본적으로 다른 영국 법에 따라 이뤄지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다르냐면, 예를 들어 영국에는 성문헌법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형사사법체계를 바꿔서 영국 같은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법무부 장관이나 법무부 차원의 결단을 넘어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특히 앞으로 청와대 관련 사건 추가 기소가 유력한 시점에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이 혼자 결단할 문제는 전혀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찬성하는 입장에 가깝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검사가 수사를 담당하는 금융범죄나 기업범죄 등 예외적 몇 개 분야에서는 수사와 기소를 결합시킨 형태의 ‘직접수사’ 또는 관련 기관 통합 TF가 운영될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만, 부패범죄 전담 수사기관을 설치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하면서 검찰의 직접수사를 줄여서 ‘수사-기소 분리 원칙’을 실현하는 것이 큰 틀에서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추미애 장관의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는 말 자체로만 보면 ‘수사-기소 분리 원칙’이라는 검찰개혁 방안과는 달라 보입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팀의 독단으로 부작용이 있었던 사례 못지 않게, 정치적인 사건에 있어서 수사팀의 정당한 주장을 수사 과정과 분리된 대검이나 법무부가 찍어 누르려고 압력을 가한 잘못된 경우가 매우 많았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 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 댓글 사건 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검찰 내부에서도 ‘수사-기소 분리 원칙’의 정신을 살려서 ‘레드팀’ 개념의 수사결과 점검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 등은 충분히 논의해 볼만합니다. (일부 시행 중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추 장관이 말하는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가 그런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어떤 검사에게는 수사만 맡기고 전혀 다른 검사가 기소를 하게 하는 형식이라면, 그리고 기소를 맡은 검사가 수사를 맡은 검사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하거나 영장청구 여부 결정을 통해 수사 과정을 통제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이같은 방식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워 보입니다. 게다가 법무부 장관이 이 방안을 추진하는 시점 역시 충분히 의심을 받을 만합니다.

‘조국 사태’ 이후 검찰개혁과 관련된 여러 원칙과 명분이 왜곡된 방식으로 동원되면서 상당히 많이 훼손됐습니다. ‘수사-기소 분리 원칙’까지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랍니다.

수사-기소 분리와 의약분업: 개혁 원칙에 대한 오해

공소장 공개와 우측통행

공소장 국회 제출 거부 방침을 설명하고 있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 2020. 02. 11. /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

우리나라는 차량의 ‘우측통행’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매우 오랜 기간 ‘우측통행’ 제도를 실시해왔지만 논란이 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국토교통부장관이 앞으로 차량이 ‘좌측통행’하도록 제도를 바꾸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우측통행’ 제도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에 “잘못된 관행”을 바꾸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보다 교통 선진국인 미국도 ‘우측통행’을 하는데, 갑작스럽게 ‘좌측통행’으로 바꾸자는 거에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국토부 장관은 목적은 오로지 국민의 안전이라며 미국도 알고 보면 ‘우측통행’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교통경찰관을 했던 사람 등이 국토부 장관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밝혔습니다.

거짓말이 드러나자 국토부 장관은 “외국에서 우측통행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국토부 장관의 참모는 우리나라 근대적 교통 체계의 모델이 된 일본은 ‘좌측통행’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국민의 안전을 위한 ‘좌측통행’ 정책을 계속해서 밀어붙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공소장 국회 제출 거부’ 방침을 차량의 ‘좌측/우측통행’에 비유해봤습니다. (혹시 몰라 말씀드리는데, 국토부 이야기는 가상의 상황입니다.) 이른바 ‘진보 성향’ 법률가들의 말과 글 때문입니다.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을 계기로 국회 제출 거부를 시작한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공소장 국회 제출 거부 자체는 충분히 논의해볼만한 이슈라고 지적하더군요. 마치 주장의 방향을 옳지만 주장을 제기한 시점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있다는 식으로요.

이런 분들께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공적인 인물의 범죄 혐의에 대한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는 것’이 논란이 됐습니까? 이런 글을 쓰는 ‘진보 성향’ 법률가들이 이번 일이 있기 전에 ‘공인의 범죄 혐의에 대한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는 방침’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나요?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이 국회에 제출될 때였나요? 아니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공소장이 제출될 때였나요? 도대체 언제였죠?

‘좌측통행’과 ‘우측통행’이 그렇듯이 공소장의 공개 시점도 공소장 내용이 공개되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사회적 합의에 따라 조정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나라에 따라서 ‘좌측통행’을 하는 나라도 있고, ‘우측통행’을 하는 나라도 있듯이, 공소가 제기되자 마자 곧바로 대중에 공소장을 공개하는 나라도 있고(미국), 법정에서 공소사실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공소장 원문 공개를 꺼려하는 나라도 있습니다(법무부 주장에 따르면 독일) 어느 쪽이 분명한 선이고 어느 쪽이 분명한 악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추미애 장관처럼 미국 사례 등을 왜곡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한 뒤에, 허위 발언이 들통나니 본질적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죠. 고위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태일 뿐만 아니라,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는 평범한 사람으로서도 용납되기 힘든 태도입니다.)

그런데 핵심은 “왜 이 시점에 제도를 바꾸려 하느냐”입니다. 지금까지는 거의 논란이 된 적이 없는 사안에 대해서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차량의 ‘우측통행’이 잘못됐으니 바꾸자고 주장해온 사람이 몇이나 되나요? 마찬가지로 청와대 관계자들의 선거 개입 혐의에 대한 공소장을 추미애 장관이 국회에 제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 전까지, 공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범죄 혐의에 대한 공소장을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몇이나 됐나요? 아마 차량의 우측통행을 좌측통행으로 바꾸자고 주장해온 사람들의 수와 비슷할 겁니다.

더욱 웃긴 것은 추미애 장관과 민주당 의원, 그리고 지금 ‘그래도 공소장 국회 제출 관행엔 문제가 있으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라며 가까스로 입장을 줄타기하고 있는 ‘진보 법률가’ 중 상당수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박근혜, 최서원, 우병우, 양승태 등의 공소장 공개를 요구했거나, 공개된 공소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우측통행이나 좌측통행이나 모두 장단점이 있듯이, 어떤 시점에 공소장을 공개하는 것이 적합한지 역시 역사와 문화, 제도에 따라 다르게 규정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지금 일부 ‘진보 성향’ 법률가들이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공적 인물의 범죄 혐의에 대한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는 것이 법원에서 공개되기 전까지 국회 제출을 거부하는 것보다 반드시 나쁜 제도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더구나 15년 가까이 이 같은 관행이 이어져오면서도 이와 관련된 진지한 문제제기가 우리 사회에서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공소장 국회 제출 방침을 바꾸자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멀쩡하게 ‘우측통행’ 잘 하고 있는데 갑자기 ‘좌측통행’이 더 안전하다는 말을 하는 셈이죠.

저의 개인적 입장을 밝히자면, 공인의 범죄 혐의에 대한 공소장의 국회 제출은 15년 간의 관행대로 이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국회나 언론이 공적 존재가 아닌 인물에 대한, 공적 사안이 아닌 범죄 혐의에 대한 공소장을 제출해달라고 요구한다면 거부하는 것이 맞겠죠.

하지만, 공인이 아닌 사인에 대해서 국회나 언론이 요구할 이유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그도일에도 수사하거나 기소한 검사가 해당 사건의 공소장 공개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히면 법무부는 대부분 이를 수용해 국회 제출을 거부해왔습니다. (공적 사안이 아닌 공소장이 제출된 적도 일부 있었을 가능성은 있는데, 그렇다해도 이런 문제를 고치는 방법이 공소장 국회 제출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겠죠.)

게다가,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라는 훈령을 일방적으로 제정해서 기소되기 이전인 사안에 대한 알권리를 극단적으로 제한해놓은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기소 이후의 공소장 공개 범위조차 줄이는 것은 국정농단이나 사법농단 사건 때와는 달리 조국 전 장관 관련 사건 때부터 갑작스럽게 축소된 알권리를 더욱 협소하게 만드는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공소장 국회 제출을 거부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진짜 이유’입니다. 이전까지 논란이 된 적도 없고, 그 자체로 특별한 문제가 있다고 보기 힘든 방침을, 갑작스럽게 ‘하필이면 이번부터’ 바꾸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상식적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소장 공개와 우측통행

대응논리 전파? 진짜 중요한 건…

“미국도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린 뒤에 공소장 게시”한다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발언과 이를 어떻게든 정당화해보려는 궤변들이 거짓이라는 걸 입증하는 종합 팩트체크 취재파일을 썼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아래와 같은 글이 반복적으로 포털 댓글에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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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기소장(bill of indictment)을 그대로 공개하지 않고 대배심이 승인해 공소장(indictment)을 발부하는 경우에만 공개한다(경범죄는 예외). 즉, 검사의 일방적 주장을 대배심이라는 필터링을 거쳐 공개하는 것이다. 한국법제하에서는 1회 공판기일에서 공소장진술과 이에 대한 심사(공소장일본주의에 위배되는지 여부 등에 대한 심사)가 이런 필터링에 해당한다. 고로 추미애장관과 법무실장의 얘기가 취지상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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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올리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일종의 대응논리를 담은 똑같은 댓글이 반복되는 현상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대응논리의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는 점이네요.


공소제기 또는 공소는 말 그대로 public prosecution 입니다. 이를 행사하는 권한을 기소권 또는 소추권이라고 합니다. 기소를 담당한 기관은 ‘누군가 범죄 혐의가 있다.’라며 재판에 넘길 권한을 갖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이 권한이 ‘검사’라는 기관에 부여됩니다. 그래서 단독관청이라고도 하죠. 검사의 기소 이후 법원에서 시작되는 절차가 형사재판 절차입니다.

미국 연방법에서는 법정형이 징역 1년을 초과하는 중죄(felony)의 경우 소추권/기소권을 가진 기구는 대배심(grand jury)입니다. 피고인 또는 변호인, 그리고 판사가 없는 상태에서, 대배심원들이 검사의 설명과 증인의 증언 등 증거를 보고 공소제기 public prosecution 여부를 결정하죠.

즉, 공적인 기소, 공소 public prosecution의 권한이 한국에는 검사에게, 미국 연방법에서는 (중죄의 경우) 대배심에 부여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국가적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사람을 형사법정에 넘길 정도로 신빙성이 인정되는 상황을 한국에서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는 경우’로 본 것이고, 미국에서는 중죄의 경우 검사의 설명을 들은 ‘대배심’이 공소장(indictment)을 발행한 경우로 정한 것이죠.

두 가지 법제 모두 장단점이 있고, 단순히 이 절차 하나를 놓고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미국의 대배심 역시 검사의 기소 의견을 인정하는 비율이 대단히 크기도 합니다. (그래서 연방법과 비슷하게 대배심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일부 주에서는 폐지론도 나온다고 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륙법계 국가에서 검사의 공소장은 법제상 미국의 대배심이 발행한 공소장(indictment)과 동일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배심과 유사한 제도를 도입해서 한국에서 검사의 기소권을 좀 더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앞서도 말했듯이 충분히 검토할 만한 ‘검찰개혁’ 방안입니다. (오히려 최근의 검찰개혁 논의 과정에서 부당하게 경시된 측면이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현행 우리 법제에서 그리고 세계 여러나라에서 공적인 기소 public prosecution 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검사의 공소제기가 미국의 대배심기소(grand jury indictment)와 달리 공적으로 공개될 가치가 없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습니다.

또, 저 설명 중 “한국법제하에서는 1회 공판기일에서 공소장진술과 이에 대한 심사(공소장일본주의에 위배되는지 여부 등에 대한 심사)가 이런 (미국 대배심의) 필터링에 해당한다.”라는 주장 역시 사실관계가 완전히 잘못된 주장입니다.

일단 법원의 정식재판과 대배심을 수평 비교하는 것 자체도 터무니 없지만, 저 주장대로 한국의 1회 공판기일이 “이런 (대배심의) 필터링에 해당”한다면 1회 공판기일에서 판사가 검사의 기소가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공소기각이나 무죄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하지만 1회 공판기일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일을 하는 절차가 아닙니다.

더구나 1회 공판기일은 엄격히 비밀이 보장되는 대배심과 달리 공개재판 절차입니다. 공개재판에서 검사가 공소사실을 모두진술해야 한다는 법률상 의무조항(형사소송법)이야 말로, 한국 법제에서의 검사의 공소제기가 미국의 대배심에서 비공개 상태로 개진되는 검사의 설명과 달리 ‘공개적으로 알려저야 하는 공적인 기소’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 간단히 반박하려고 했는데 또 길어졌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이미 명백한 허위사실로 드러난 추미애 장관의 ‘미국도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공소장 게시’라는 잘못된 발언이 아닙니다.

공개재판에서 공개되는 공소장의 내용, 따라서 공적인 알권리가 이미 법률에서 보장되어 있는 고위공직자의 범죄 혐의에 대한 공소장을, 15년 동안의 방침을 깨고, 법률에 근거한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면서까지 ‘하필이면 이번부터’ 비공개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추미애 장관에게 물어야 합니다.

왜 이 사건부터입니까?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했던 여러 차례의 허위주장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국민은 알권리가 있습니다.

대응논리 전파? 진짜 중요한 건…

‘공소장 공개’ 가짜뉴스 확산: 세 번째 팩트체크

미국에서 형사전문 변호사로 일하고 계신 분의 의견을 전한다며 교묘하게 사실을 호도하는 글이 널리 유포되고 있다고 해서, ‘미국의 공소장 공개’에 대해서 한 번만 더 팩트체크 글을 올립니다.

문제의 글에 나오는 화자는 “미국에서도 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공소장을 공개”한다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말이 사실과 다르다는 SBS 기사에 대해 “SBS의 보도는 “기소”와 “공소장”이란 개념을 잘못 이해해서 벌어진 오보입니다. 한국 형사소송법에서 “기소”와 “공소장”이란 개념이 미국 형사절차에서 어떤 절차에 대입되는지를 알지못해 발생한 것입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미국 연방 형사사법체계에서는 검사가 경범죄(misdemeanor, 보통 법정형이 징역 1년 이하인 경범죄)의 경우 기소할 때 complaint를 법원에 접수하고, 중범죄(felony)의 경우 대배심(grand jury)을 열어서 심의 결과 기소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indictment를 법원에 제출해 기소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 UCLA 로스쿨에서 J.D.를 받은 고려대 박경신 교수님도 제 페이스북에 단 댓글에서 “연방기준으로 보자면 complaint는 그거 자체가 공소장이라기 보다는 체포영장을 발부받기 위해 경찰관이 법원에 제출하는 공증된 진술서인데 misdemeanor의 경우 공소장으로 인정해주는 겁니다.”라고 부연 설명해주셨습니다.

문제의 페이스북 글의 화자도 이런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듯 한데도 “한국 형사소송법에서 공소장이란 수사가 종결된 후 검사가 법원에 제출하는 가장 첫 문서로(신동운, “형사소송법” 제4판 350쪽)로 이는 미국의 Complaint에 해당한다 하겠습니다.”라며 complaint가 한국 형사사법 체계에서 공소장이고 indictment는 한국의 공소장에 해당하지 않는 것처럼 오도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제가 설명한 내용을 보면 쉽게 알수 있듯이 complaint는 경범죄의 경우에 공소장의 기능을 대신하는 문서, 넓게 봐서 공소장으로 번역될 수 있는 문서이고, indictment는 중범죄의 공소장입니다. 쉽게 말해 미국 연방법에서 경범죄는 complaint가 공소장(공소장의 기능을 대신하는 문서), 중범죄는 indictment가 공소장인 것입니다.

문제의 페이스북 글의 화자는 “만약 SBS의 해석대로 indictment(직역하면 기소입니다만)를 ‘공소장’으로 해석한다면, 축하드립니다. 이제 무소불위의 대한민국 검찰청의 기소권을 제한하는 검찰 개혁이 아름답게 완성됩니다.”라고 비꼬듯이 말씀하셨는데, 저는 왜 이 말이 비꼬는 말이 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한국과 같은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검사가 기소 기능을 담당한 국가기관(소추기관)입니다. 미국 연방법 체계에서는 중범죄(felony)의 경우 대배심(grand jury)이 소추기관입니다. 소추기관이 법원에 기소하겠다며 보내는 서류가 공소장이니, 한국에서는 검사가 기소하면서 법원에 접수한 서류가 ‘공소장’이고, 미국 연방 형사사법체계에서는 대배심(grand jury)이 검사의 설명 등을 듣고 기소를 결정해서 법원에 접수하는 서류인 indictment가 (중범죄의 경우) ‘공소장’인 것입니다.

[** 다만 ‘편견 없는 시민들 (impartial citizens)’로 사건이 있을 때 소집돼 구성되는 대배심이 우리나라 검사처럼 증거를 수집한다거나 정밀하게 법률적 의견을 검토하는 기관은 당연히 아닙니다. 검사가 수집한 증거와 검토한 법률적 의견을 대배심 앞에 제시하면, 대배심이 증인에게 직접 증언을 보는 절차 등을 거쳐 기소 여부를 결정합니다. 다만, 대배심이 검사 의견대로 기소하는 비율이 너무 높아 미국에서도 일각에서는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문제의 페이스북 글 화자는 “축하드립니다. 무소불위의 대한민국 검찰청의 기소권을 제한하는 검찰개혁이 아름답게 완성됩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누가 어떤 이유로 축하를 받아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대륙법계와 미국법의 차이가 있지만, 대배심(grand jury)은 검찰 기소권 통제를 위해 진지하게 도입을 고민해볼만 한 방안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최근 검찰개혁 법안 논의 과정에서도 그런 의견을 내는 분들이 있었지만 오히려 ‘근본적 개혁’을 막기 위한 친검찰 학자들의 꼼수 정도로 폄하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문제의 페이스북 글 화자는 저를 포함한 법조 기자는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너의 논리대로라면 검찰의 기소권을 제한하는 검찰개혁이 이뤄져야 하는 셈이다. 축하한다.’라고 이죽거린 것 같은데, 검찰개혁에 반대하지도 않고 검찰의 기소권에 대한 통제 역시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영논리에 지나치게 빠진 나머지 ‘상상 속의 적’과 싸우고 계신 건 아닌지 우려됩니다.

또 하나, 문제의 페이스북 글의 화자는 “법무부 법무실장은 “배심 재판에서 공소사실 요지가 진술된 이후에야 공소장이 공개된다”라고 설명하였는데, 대배심원단 절차를 비교적 정확하게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는 “배심 재판”이란 용어 사용은 옳지 않으며 “대배심 절차” grand jury proceedings가 옳은 용어입니다만)”라며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이 2월 6일에 기자들에게 한 말이 사실에 가깝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글의 화자 역시 지적하고 있듯이 “대배심 재판”이 아니라 “대배심 절차”이며 따라서 마치 미국 역시 법원의 공판 절차가 시작된 이후에 공소장을 공개한다는 취지였던 이용구 법무실장의 발연 역시 사실과 다릅니다. 심지어 법무부는 이용구 실장과 추미애 장관의 발언(“미국에서도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공소장 공개”)이 나온 하루 뒤에 배포한 설명 자료에서 “공개된 법정의 재판절차를 통해서만 형사사건의 정보가 공개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중략) 우리나라의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더욱 큰 중요성을 가진다는 측면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라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즉, 이용구 실장 또는 법무부는 “대배심 절차”를 거쳐 공개된 것은 “공개된 법정의 재판절차”를 거쳐 공개된 것처럼 인식되도록 주장한 것입니다.

글 쓴 분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대배심(grand jury)은 공개된 절차가 아니며, 재판 절차로 볼 수도 없습니다. “공개된 법정의 재판절차”에는 어느 측면도 들어맞지 않는 절차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용구 법무실장의 발언의 취지가 비교적 정확했다는 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문장을 쓴 점은 유감입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짧게 요약해보겠습니다

  • 미국 연방 형사사법체계에서는 중범죄(felony)의 경우 검사의 설명을 들은 뒤 대배심이 발행하는 indictment가 ‘공소장’이다.
  • 미국에서 공소장(indictment)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곧바로 공개된다
  • 한국에서는 검사가 소추기관, 미국에서는 중범죄의 경우 대배심이 소추기관이다.
  • 대륙법과 미국법의 체계 자체가 다르지만, 검사의 기소권 통제를 위해 대배심과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다는 주장은 진지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
  • 법조 담당 기자는 검찰 편이라는 전제 하에 ‘네 의견 대로라면 검사의 기소권을 통제하자는 이야기다.’라고 비꼬는 것은 ‘상상 속의 적’과 싸우는 일이다
  • 대배심은 공개된 절차도 아니고 정식 재판으로 볼 수도 없다. 이용구 법무실장 또는 법무부의 설명 취지는 잘못됐다.

이상입니다.

아래는 문제의 페이스북 글 원문이라고 제가 전달받은 것입니다. 저한테 캡처 사진도 있는데, 아래 전재하는 것이 좀 더 수정된 버전인 것 같아서, 아래 글로 전재합니다. 위에 제가 쓴 글과 비교해보시면 읽는 분들이 공정하게 판단하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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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제의 페이스북 글 전문 인용 –

현재 미국에서 형사전문 변호사로 일하고 계신분이(미국 변호사 라이센스만 가진채 한국에서 일하는 분이 아니라 현직 미 형사 변호사), 미국의 공소장 공개제도에 대한 SBS의 보도를 보고 분개하셔서 저에게 미국 형사제도와 공소장 공개에 대해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허락을 받아 여러분에게 공유합니다.

“미국 연방검찰이 지난해 12월 20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사업가에 대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오늘 공소장이 공개” 됐다고 밝혔는데 인터넷에 있는 공소장을 확인해보니 기소된 날짜는 12월 19일이었습니다. 기소된 지 하루 만에 공소장이 공개된 겁니다.” 2020년 2월 6일자 SBS의 보도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5/0000790896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미국은 공판 이후 공소장을 공개한다”라고 하는 발언을 비판하면서 나온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법무부 장관이 미국의 기소 절차를 왜곡해서 설명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SBS의 보도는 “기소”와 “공소장”이란 개념을 잘못 이해해서 벌어진 오보입니다.

한국 형사소송법에서 “기소”와 “공소장”이란 개념이 미국 형사절차에서 어떤 절차에 대입되는지를 알지못해 발생한 것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일단 미국의 ‘기소(prosecution)’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부터 살펴 봅시다. SBS보도에 따라 연방 검찰(미국에는 검찰청이란 외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연방법무부’가 옳은 표현입니다만)의 기소과정을 살펴보면 이는 연방 형사소송 규칙(Federal Rules of Criminal Procedure)에 설명돼 있습니다. .

연방 검사가 범죄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기소를 하면 Complaint를 법원에 접수하거나 (Fed. R. Crim. P. 3), 대배심원단 (Grand Jury)를 소집합니다. (Fed. R. Crim. P. 6).

※ 연방법에서 중범죄 (felony)의 경우에는 (피고가 대배심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무조건 대배심을 거치게 되어있기 때문에, 중범죄의 경우 complaint를 접수한 뒤 grand jury 절차를 거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대배심원단은 판사도, 피고도 부르지 않은 채 오직 검사만 불러 범죄사실에 대해 묻습니다. 검사와 함께 증인(주로 직접 수사를 담당한 경찰입니다)을 심문하고 검사는 대배심원단에게 범죄사실이 성립됨을 소명합니다.

대배심원단이 검사의 소명에 수긍할 경우 대배심원단은 indictment라는 문서를 발행하고, 이 순간부터 형사소송이 공개됩니다. 그리고, 일반 대중에 사건이 공개되는 것은 바로 이 indictment라는 문서부터 입니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complaint도 공소장, indictment도 공소장이라고 나옵니다. 그러나 한국 형사소송법에서 공소장이란 수사가 종결된 후 검사가 법원에 제출하는 가장 첫 문서로(신동운, “형사소송법” 제4판 350쪽)로 이는 미국의 Complaint에 해당한다 하겠습니다. 이 문서는 미국 연방 형사 절차상 당연히 영원히 비공개입니다. 이 문서에 담겨있는 사실관계는 이후에 공개될 indictment에 담겨지게 되긴 합니다만

법무부 법무실장은 “배심 재판에서 공소사실 요지가 진술된 이후에야 공소장이 공개된다”라고 설명하였는데, 대배심원단 절차를 비교적 정확하게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는 “배심 재판”이란 용어 사용은 옳지 않으며 “대배심 절차” grand jury proceedings가 옳은 용어입니다만)

만약 SBS의 해석대로 indictment(직역하면 기소입니다만)를 ‘공소장’으로 해석한다면, 축하드립니다. 이제 무소불위의 대한민국 검찰청의 기소권을 제한하는 검찰 개혁이 아름답게 완성됩니다.

indictment의 발행 주체는 검찰이 아니라 대배심원단이거든요

‘공소장 공개’ 가짜뉴스 확산: 세 번째 팩트체크

추미애 ‘가짜뉴스’ 해명?: 법무부 설명 자료의 오류

법무부가 “미국에서도 1회 공판 기일 열리면 공소장을 공개”했다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어제(6일) 발언이 허위가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설명자료를 2020년 2월 7일에 발표했습니다.

SBS가 보도한 사례, 2019년 12월 19일에 기소된 지 하루 만인 2019년 12월 20일에 공개된 사례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역시 “1회 공판 기일이 열리면” 공소장이 공개된 사례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법무부가 이 사건에 대해 “2019. 12. 19. 대배심재판에 의해 기소되었으나, 법원의 봉인 명령에 따라 공소장이 비공개 상태에 있다가 피고인이 2019. 12. 20. 오전 체포된 후 법원의 최초기일에 출석하여 봉인이 해제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를 “1회 공판기일”이 열린 뒤 공소장이 공개된 사례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공소장 자료 제출에 관한 법무부 입장 추가 설명자료 4쪽 / 2020. 02. 07. 배포


그런데 법무부의 추가 설명 자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도 “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공소장을 공개한다는 추미애 장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란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선 법무부가 설명자료에서 제시한 사례와 관련된 미국의 형사사법절차 중 어느 것을 추미애 장관이 말하는 우리의 “1회 공판 기일”에 해당라는 절차로 규정하고 있는지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이론적으로 두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두 가지 경우 중 어떤 쪽으로 해석해도 추 장관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첫 번째로, “2019년 12월 19일에 열린 대배심재판”을 추 장관이 언급한 “1회 공판 기일”로 해석할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이는 법무부 설명자료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대배심(grand jury)의 심리 이후 기소가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에서 기소 이후의 재판을 의미하는 “1회 공판기일”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로, 아마도 법무부는 이쪽을 의미한 것 같은데, 2019년 12월 20일 체포 이후 열린 “법원의 최초기일에 출석(initial appearance)”를 추 장관이 언급한 “1회 공판기일”이라고 지징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은 일반적으로 공소장 공개 여부의 기준점이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1회 공판기일”이라고 해석하는 것 역시 잘못입니다.

저와 인터뷰한 미국 검사 출신 법조인은 “공소장(indictment)은 봉인(seal)해야지 비공개되는 것인데,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과 관계 없이 공개되는 경우가 오히려 대부분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법조인은 “대배심(grand jury)을 거쳐 접수되는 공소장(indictment)는 아직 피의자가 체포되지 않아서 수사보안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곧바로 공개되고, 피의자가 체포(arrest)될 경우 최초출석 이후 곧바로 공개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핵심은 미국에서는 공소장이 ‘공적인 서류(public document)’로 규정되며, ‘공적인 서류’는 공개가 원칙이라는 점이다. 공소장(indictment)는 대부분 기소 직후 곧바로 공개되며, 봉인되는 경우도 국가안보 상의 이유로 비밀재판을 하는 이례적 경우를 제외하면 피의자 체포 후 곧바로 공개된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치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 절차 이후에야만 미국도 공소장을 공개하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는 우리나라 법무부 설명자료의 내용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이 분은 “한국 법무부에도 미국 제도를 연구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 정도로 미국 형사사법체계에 대해서 이해가 없다는 것은….음 좀 부끄럽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법무부가 공소장 공개의 기준점이 되는 것인양 묘사하고 있는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 그 자체도 추 장관이 말하는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의 “제1회 공판기일”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란 점 역시 명확해 보입니다.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는 미국의 형사사법 절차를 진행순으로 설명한 코너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미국의 형사사법 절차를 공식적으로 11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https://www.justice.gov/usao/justice-101/steps-federal-criminal-process

1. Investigation (수사)
2. Charging (기소)
3. Initial Hearing/Arraignment (최초심리/기소사실인부절차)
4. Discovery (디스커버리)
5. Plea Bargaining (조건부 형량 협상)
6. Preliminary Hearing (예비심리)
7. Pre-Trial Motions (공판 전 신청)
8. Trial (공판)
9. Post-Trial Motions (공판 후 신청)
10. Sentencing (선고)
11. Appeal (항소)

일단 미국 법무부가 공식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미국 연방 형사사법절차 중 8단계에 해당하는 Trial에 대해서는 옥스퍼드, 동아출판, YBM, 교학사, 슈프림 등 5개 영한사전에서 (추 장관이 언급한) “공판”이라고 번역하고 있음을 지적해 둡니다.

반면 “최초심리 (initial hearing)”의 “심리 hearing”에 대해서는 공판과 구분해 다음과 같이 사전에 규정돼 있습니다.

[두산백과사전]
심리 hearing , 審理
법률상 재판 이전에 법원이 민사·형사상의 청구 원인에 따른 증거나 방법 등에 대해 행하는 공식적 심사 행위.

미국 형사사법 절차에서 “공판(trial)”과 공판보다 한참 앞서 행해지는 “최초심리(initial hearing)”는 분명히 다른 개념인데도, 마치 “최초심리” 또는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이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의 “1회 공판기일”에 해당하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사전의 번역만 가지고 논의하는 것이 충분치 않을 수 있으니 , 실제로 미국 법무부가 공식적으로 각 절차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 또는 “최초심리/기소사실인부절차(Initial Hearing/Arraignment)”에 대한 미국 연방정부 법무부의 공식적 설명부터 옮겨보겠습니다.

https://www.justice.gov/usao/justice-101/initial-hearing

“피고인이 체포되고 기소된 같은 날 또는 다음날, 피고인은 해당 사건에 대한 최초심리(initial hearing)를 위해 치안판사(magistrate judge) 앞에 나오게 된다. 이때, 피고인은 피고인으로서의 권리와 자신의 혐의와 변호사 선임을 위한 절차에 대해 더 알게 되고, 판사는 피고인을 계속 감옥에 구금할지, 공판(trial) 때까지 석방할지 결정한다. “

“Either the same day or the day after a defendant is arrested and charged, he is brought before a magistrate judge for an initial hearing on the case. At that time, the defendant learns more about his rights and the charges against him, arrangements are made for him to have an attorney, and the judge decides if the defendant will be held in prison or released until the trial.”

반면 8단계인 “공판(Trial)”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시 미국 연방정부 법무부의 공식적 설명입니다.

https://www.justice.gov/usao/justice-101/trial

“여러 주 또는 여러 달의 준비 이후에, 검사는 자신의 직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한 준비를 마치게 된다: 공판(trial)이다. 공판(trial)은 사건과 관련된 사실들이 배심원들에게 제시되고, 배심원들이 기소된 혐의에 대해 피고인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결정하는 구조화된 절차이다.”

“After many weeks or months of preparation, the prosecutor is ready for the most important part of his job: the trial. The trial is a structured process where the facts of a case are presented to a jury, and they decide if the defendant is guilty or not guilty of the charge offered.”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과 “공판(trail)”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묘사한 미국 연방정부 법무부의 공식적 설명만 놓고 봐도, 최초출석을 우리 형사사법체계에서 말하는 “1회 공판기일”로 볼 수 없으며, “공판(trial)” 단계가 시작되어야 비로소 “1회 공판기일”이라고 부를 수 있음은 매우 명확해 보입니다.

정리하면, 미국에서는 대배심(grand jury)을 거쳐 공소장이 법원에 접수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봉인 없이 곧바로 대중에 공개되고, 기소 이후 피의자 체포가 필요해 봉인(seal)하는 경우는 체포 직후 곧바로 공개돼 결과적으로는 대부분의 경우 기소 이후 매우 짧은 기간이 지나면 공소장이 공개된다는 것입니다. 또, 법무부가 설명자료에서 ‘제1회 공판기일’에 해당하는 것럼 해석될 수 있도록 제시한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 역시 공판과는 구분되는 공판 이전 심리 절차,우리나라로 말하면 구속적부심이나 보석심문에 가까운 절차라는 점입니다.

결국, 미국에서도 공소장이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린” 이후에 공개된다거나, 곧바로 공개되지 않는다는 추미애 장관의 설명은 분명히 사실이 아닌 것입니다.

나아가, 지금 추미애 장관이 취한 조치는 공소장을 제출하라는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한 것입니다. 미국법에 정통한 여러 법조인들은 공소장을 대중에 공개할지를 떠나서, 미국 의회가 법에 근거해 제출을 요구한 공소장 제출을 미국 법무부가 거부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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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미국 검사가 대배심(grand jury)에 제출하는 complaint도 “공소장”이고, 대배심 이후 제출되는 indictment도 “공소장”인데, 우리나라의 공소장은 complaint에 해당하므로, 미국에서도 공소장 즉, complaint는 비공개되는 것이 맞다며 한 페이스북 이용자가 어제(6일) 제 기사 등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compliant는 우리나라 법률용어로는 ‘고소장’ 또는 ‘고소’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7일) 기자들에게 배포된 우리나라 법무부의 설명자료를 봐도 “2020. 12. 19. 대배심재판에 의해 기소됐다.”라는 설명이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대배심재판 이후에야 기소(charging)가 이뤄지고, 그런 의미에서 대배심 이전에 작성되는 complaint는 우리나라의 공소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며, 대배심 이후에 접수되어 기소의 효력을 발휘하는 indictment가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에서의 공소장에 해당한다고 보는 편이 타당합니다. 오늘 배포된 우리나라 법무부 설명자료에도 complaint가 ‘고소장’ 또는 ‘고발장’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첨부 사진 참조 – 파란색 동그라미)

공소장 자료 제출에 관한 법무부 입장 추가 설명자료 2쪽 / 2020. 02. 07. 배포


참고로 대배심(grand jury)은 공소장 접수 이전에 해당 사건이 기소할만한 것인지 아닌지 일반 시민 중에 선발된 배심원들이 검사의 설명을 듣고 판단하는 절차로, 미국 연방법에서는 중죄(felony)의 경우 대배심을 통해 기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처럼 법률상 효력이 있는 의무적 절차는 아니지만, 기소 이전에 기소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 심의하는 우리나라의 ‘검찰시민위원회’가 이와 유사한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검찰개혁 법안 논의 과정에서 검찰의 기소권 통제 방안으로 미국식 대배심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충분히 심도깊게 논의되지는 못했습니다.

한 마디 거짓말을 반박하려면 백 마디의 진실이 필요하다는데, 무척 피곤하네요.

추미애 ‘가짜뉴스’ 해명?: 법무부 설명 자료의 오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