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사법농단 비판’을 오염시킨 사람은 누구인가


민주당에 입당한 이탄희 전 판사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 참여했던 일을 내세우며 민주당에 입당한 전직 판사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여기저기에서 이들을 옹호하는 분들이 보입니다. 이분들의 옹호 논리는 한 마디로 ‘왜 우리 편만 가지고 그래?’라는 것입니다. 좀 더 상세하게 풀어보자면 ‘이전에도 판사를 하다가 출마를 한 사람이 적지 않다. 이번에도 사법농단 비판과 관련 없던 판사 중에 출마를 선언한 사람이 있다. 왜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 참여했던 판사들에게만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는가? 내부고발자에게 도덕적 순결성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 아닌가’정도가 될 것입니다.

우선 사법농단 고발에 참여했던 판사 못지않게, 전두환 씨에 대한 1심 재판을 맡았던 판사가 출마하는 현상을 많은 언론이 강도 높게 비판했다는 사실을 지적해두겠습니다. 예컨대 2020년 1월 15일에 방송된 SBS 8뉴스에서도 [법복 벗고 선거판으로…’전두환 재판’ 판사도 사직 대열]라는 제목으로 총선 출마를 위해 사직하는 판사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하면서,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던 판사들보다 ‘전두환 재판’을 맡았던 장동혁 전 판사의 사례를 우선적으로 다뤘습니다. ‘심판’으로서 재판을 주관하던 판사가 상당한 휴지 기간도 없이 곧바로 ‘선수’인 정치인이 되는 것은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든 참여하지 않았든 부적절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사법농단 비판’ 판사들은 왜 모두 집권여당에 입당하나?

하지만,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 참여했던 판사들에 대한 비판을 내부고발자에게 도덕적으로 더욱 엄격한 순결성을 요구하는 이중잣대 적용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던 판사들의 출마 문제는 단순히 ‘판사가 법원을 떠난 뒤 충분한 휴지 기간 없이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이들의 출마가 ‘사법농단’이라는 비정파적이고 비정치적이어야 하는 현안을 정파화-정치화시켰다는 점입니다.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기 전에, ‘사법농단’ 또는 ‘양승태 사법부’ 비판에 참여했던 판사들이 정치권에 투신하는 일이 왜 ‘사법농단’ 문제를 정파화 또는 정치화하는 것인지 쉽게 보여주는 구체적 사실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왜 ‘사법농단’ 또는 ‘양승태 사법부’ 비판에 적극 참여했던 사실을 내세우며 출마하는 판사들은 모두 집권여당인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인가요? 자유한국당은 물론 새로운보수당이나 바른미래당 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판사는 한 명도 없는 것일까요? 심지어 대안신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판사조차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문제점을 고발한 많은 판사들이 주장했고, ‘사법농단’을 비판했던 많은 언론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사법농단’은 결코 특정 정파나 정당의 ‘이슈’가 아닙니다. 제왕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권한 남용으로 재판과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이 여러 판사의 고발과 언론인들의 지적, 그리고 검찰 수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난 사안입니다. ‘사법농단’이 특정 정치세력이 법원을 장악하기 위해 설계한 ‘이슈’라는 관점이야말로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이 가장 경계해왔던 바입니다.

● ‘사법농단 비판’의 정파화-정치화가 본질적 문제

그런데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현실 정치에 투신한 분들은 모두 예외 없이 특정 정당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야당이 아니라 집권여당인 민주당에 입당하고 있습니다. 법원행정처에 비판적인 성향의 판사들 동향을 보고하라는 업무를 거부해 ‘사법농단’ 사태의 도화선이 된 이탄희 전 판사나,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해 대법원 내부의 이례적 사건을 폭로했던 이수진 전 판사는 모두 공식적 행사까지 거행하며 민주당에 입당했습니다. 입당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자신이 ‘사법농단 비판’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발언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봅시다. 법원에 있을 때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정치에 투신한 전직 판사들이 예외 없이 집권여당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사법농단’이 애초부터 특정 정치세력이 법원을 장악하기 위해 설계한 ‘이슈’라는 관점의 설득력을 강하게 만들겠습니까, 아니면 약하게 만들겠습니까?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씀드리지만, 이 글을 쓰는 저는 지금도 ‘사법농단은 특정 정치세력이 설계한 이슈’라는 관점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직 판사들이 ‘사법농단’을 법원 내부에서 비판했었다는 사실을 거의 유일한 업적으로 내세우며 특정 정당에 잇달아 입당한 것이 ‘사법농단 비판’이 정파적-정치적 이슈였다는 관점을 강화시키고 있는 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더구나, 이탄희-이수진 앞에 또 다른 전직 판사 김형연-김영식이 있었다는 사실 역시 큰 문제입니다. 현직 법제처장인 김형연 씨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꾸준히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문제를 지적했고, 2017년 3월 ‘사법농단’ 의혹이 언론에 처음으로 보도되자 법원 내부 통신망에 진상조사를 요청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력을 가진 김형연 씨가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5월 판사를 그만두고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직행했을 때도 적지 않은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하지만, 김형연 씨는 2019년 5월에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에서 곧바로 행정부의 차관급 관료인 법제처장으로 자리를 옮겨 ‘판사의 코드 출세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라는 평가까지 받았습니다.

● 이탄희-이수진 앞에 김형연-김영식이 있었다.

김형연 법제처장의 후임자인 김영식 청와대 법무비서관 역시 판사를 그만두고 3달 만인 2019년 5월에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김형연 법제처장과 마찬가지로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 출신인 김영식 비서관은 사직서를 제출한 직후인 2019년 2월에 일부 언론이 청와대 법무비서관 내정설을 보도하자 “그야말로 오보” “인권법 모임을 폄훼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3달 만에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임명됐습니다. 당시 보도를 했던 언론은 김영식 비서관이 거짓말했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의 민주당 입당은 김형연-김영식 전 판사의 청와대행과 연결시켜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분들은 모두 사법농단 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비판적 성향의 판사라고 인식되어왔으며, 바로 이와 같은 점 때문에 집권세력의 일원으로 영입됐기 때문입니다. 사법개혁 또는 법원개혁이라는 대의를 위해 ‘비판받을 것을 알면서도’ 민주당 입당이나 청와대 행을 택했다고 말하는 점도 이들의 공통점입니다.

어떤 일이 한 번 일어나면 우연으로 여길 수 있지만, 비슷한 일이 네 번 벌어지면 우연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사법농단이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비판적인 성향으로 알려진 판사들이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연속해서 청와대나 집권여당으로 향했다면, 그리고 이 가운데 일부는 자신이 ‘사법농단 비판’에 앞장섰다는 사실을 업적으로 내세웠다면, 사법농단 비판이 정파적-정치적 이슈라는 비난을 반박하던 사람들의 입장이 곤란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 ‘사법농단 비판’ 판사들의 “법복 정치인” 비판

이렇게 되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실제로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사법농단 비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여전히 법원 내부에서 개혁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판사들입니다. 때문에 그 누구도 ‘적폐’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이런 법관들이 오히려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준비모임에 참여했고, 2017년 6월 전국법관대표회의 인천지방법원 대표로 참석했던 이연진 판사는 지난 22일 법원 내부 통신망 ‘코트넷’에 글을 올려 민주당에 입당한 이탄희 전 판사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법원 내부 게시판 등에 자신을 비판하는 글보다 지지하는 글이 많다.’라고 밝힌 것 등이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판사 시절 무엇을 했음을 정치 입문 후에도 주요 자산으로 삼는” 모습은 “법복을 벗은 후에도 여전히 법복을 들고 다니는 정치인으로 보인다.”라고 이탄희 전 판사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연진 판사는 “이렇게 법복을 들고 다니는 정치인의 모습, 법복을 들고 다니며 정치를 하려는 모습은, 법원과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송두리째 흔듭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전국법관대표회의에 관계하거나 참여한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누군가의 법관 재직 시 주요 이력으로 표방되는 것을 지켜보기가 힘듭니다. 사법개혁 임무를 맡을 만한 적임자라고 정치 입문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양 부풀려진 외관이 참담합니다.”라며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던 사실을 정치 입문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판사들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역시 ‘사법농단’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정욱도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판사도 지난 17일 법원 내부 통신망 코트넷에 [법복 정치인 비판]이라는 글을 올려 “아마 (정치인으로 변신하시는) 그분들은 자신이 법복을 벗고 나서야 비로소 정치인이 되었다고 말씀하시겠지요. 그러나 법복을 벗자 드러난 몸이 정치인인 이상 그 직전까지는 정치인이 아니었다고 아무리 주장하신들 믿어줄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만 혐의를 감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남은 법관들, 특히 같은 대의를 따르던 다른 법관들에게까지 법복 정치인의 혐의를 씌우는 일입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정욱도 판사는 “법복 정치인들이 허문 사법신뢰의 회복에도 도움이 되기 힘든 일입니다. 사법개혁을 바라는 입장이지만 법복 정치인의 손을 빌려 이루어질 개혁은 달갑지 않습니다. 차라리 법복 정치인의 기억이 흐려질 훗날을 기다리고 싶습니다.”라며 사법개혁을 위해 정치에 투신한 것이라는 전직 판사들의 주장과 달리 이들의 행동이 사법개혁이나 사법신뢰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습니다.

● 신뢰할 수 있는 법관 가질 권리가 있는 ‘국민’이 피해자

그러나 이연진-정욱도 판사처럼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법원 내부에서 개혁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법관들보다 더 큰 피해자가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법관에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는 모든 국민입니다. 재판과 법관의 독립을 확립해 공정하고 올바른 재판을 하겠다는 움직임이 특정 정치세력의 이슈나 음모라는 식으로 정파화 되거나 정치화될 경우, 재판과 법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더욱 지체될 것이고, 그 피해는 궁극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의 처신과 관계없이 ‘사법농단’이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흔드는 반헌법적인 행태였다는 진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또, 이탄희 전 판사 등이 법원에 있을 때 ‘사법농단’ 비판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는 사실 역시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이 민주당에 입당했다는 사실이 곧바로 ‘사법농단 비판’이 특정 정치세력의 음모였다는 결론의 충분한 근거가 될 수도 없습니다. 앞서 소개했듯이 법원 내부에는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의 처신을 비판하면서도 사법농단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는 판사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반면, ‘사법농단 비판’이 정치적 음모라고 비난하는 일부 언론의 잘못된 비난에 기대서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의 행동을 옹호하려는 시도 역시 잘못입니다.)

하지만,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 등이 예외 없이 집권여당에 입당하면서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했던 이력을 내세운 것은, 법복을 벗자마자 청와대로 뛰어든 김형연-김영식 전 판사의 사례 함께 ‘사법농단 비판’을 정파적-정치적 이슈로 격하시키거나 오염시키는 효과를 낳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는 사법개혁 추진을 정치에 뛰어드는 명분으로 제시했지만, 정욱도 판사가 지적했듯이 “법복 정치인”들이 추진할 사법개혁조차도 법원에 대한 신뢰 회복에 도움을 주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오히려 “법복 정치인의 기억이 흐릿해질” 상당히 먼 미래까지 법원에 대한 대한 신뢰 회복을 지체시킬 뿐입니다.

● ‘사법농단 비판’은 사유물이 아니다.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가 ‘사법농단 비판’에 기여한 바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사법농단 비판’을 개인의 정치 입문을 위한 발판으로 삼을 정당한 권리는 없습니다. 특히 ‘사법농단 비판’에 참여하거나 참여했다고 스스로 표방하는 판사들이 예외 없이 집권세력에 가담해 왔다는 점, 그리고 자신들의 행동이 ‘사법농단 비판’을 정치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이들이 충분히 인식했을 것이란 점에서, 이들의 행동은 정당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사법농단 비판’은 개인의 업적이나 사유물이 아닙니다. ‘사법농단 비판’의 정당성을 오염시킬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 윗 글은 SBS [취재파일]로도 출고됐습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621083&plink=NEWLIST&cooper=SBSNEWS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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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예감, 불길한 예언

청와대 관계자들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검찰 간부들을 청와대가 교체하고, 청와대 사람들은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청와대 비서관은 기소되자 검찰총장을 고발하면서 ‘공수처가 수사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의 지시를 무시한 뒤 법무부 장관에게 먼저 보고하고, 법무부는 검찰총장의 지시를 받아 청와대 관계자를 기소한 수사팀 검사들이 “날치기 기소”를 했다며 “감찰 필요성을 확인”했다고 발표하고…

이 모든 일이 ‘검찰개혁’이고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조국 전 장관과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수사권과 기소권 남용’이기 때문에,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에게 주어진 인사권과 사무감독권으로 검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정권이 바뀌어서, 지금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정당성을 주장하시는 분들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집권해 검찰 인사권과 사무감독권을 장악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우리 편이 아닌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있을 그때에도, 청와대 관계자들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검찰 간부들을 청와대가 교체하고, 청와대 사람들은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청와대 비서관은 기소되자 검찰총장을 고발하면서 ‘공수처에서 수사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의 지시를 무시한 뒤 법무부 장관에게 먼저 보고하고, 법무부는 검찰총장의 지시를 받아 청와대 관계자를 기소한 수사팀 검사들이 “날치기 기소”를 했다며 “감찰 필요성을 확인”했다고 발표하는 행동이 정당하다고 옹호하실 수 있겠습니까?

정권이 바뀐 뒤에도 이런 일은 ‘법률에 보장된 대통령의 인사권’과 ‘법무부 장관의 사무감독권’을 행사하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은 합법인데, 그때는 불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가 되면 어떤 논리로 이런 행동을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우파’ 만화가이자 유튜버인 윤서인 씨가 쓴 글을 우연히 접했기 때문입니다. 윤서인 씨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보면서 “우리 욕만 할 게 아니라 한 번 잘 생각해보자. 솔직히 얘네들 너무 잘 하잖아? 권력은 이렇게 유지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하는 게 미개한 한반도에서는 그냥 정답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되지’가 어딨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왜 안 되는데? 민주주의를 죽여서? 헌법을 훼손해서? 원칙을 어겨서? 아니 그게 뭔데? 그거 잘 지키면 뭐가 좋은데? 지금 나라가 왜 이 꼴이 났지? 난 이런 거 볼때마다 누구 생각이 나서 정말 속 터진다. 지금 억울하게 고초를 겪고 계셔서 말하기가 참 조심스럽지만 ㅠㅠ 도대체 왜 그 분은 그 자리에서, 그 많은 권력과 의석수를 가진채로 그렇게나 무기력했을까?”라고 말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정농단 사태 때 지금 문재인 정부의 행동처럼 대처했다면 탄핵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윤서인 씨는 “제발 이제는 이쪽에서도 이기는 지도자를 보고싶다. 민주주의 헌법 원칙 같은 거 지킨다고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도자 같은 거 또 보고싶지 않다. 착한 거 질색.”이라고 결론을 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이 다시 집권한다면 지금 문재인 정부가 하고 있는 방식을 채택해서 권력을 유지하고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윤서인 씨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대부분의 이슈에 대해 윤서인 씨와 생각을 달리 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가 권력을 부당하게 농단한 혐의로 탄핵되고 유죄를 선고받은 것이 맞으며, 박 전 대통령이 만약 자신을 수사하는 검사를 인사권을 행사해 교체하고, 특검을 틀어막았다면 더 큰 국민적 저항을 불러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이 집권하면 “헌법 원칙 같은 거 지킨다고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도자 같은 거 또 보고싶지 않다.”라고 윤서인 씨가 말하는 대목에선 섬뜩함을 느낍니다. 자신들이 집권하면 지금 문재인 정부가 하듯이 인사권을 행사해 자신들을 수사하는 검찰을 무장해제시키고 “민주적으로 통제”하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은, 멀지 않은 미래에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일에 대한 불길한 예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조국 전 장관이나 청와대 관계자들의 혐의는 아직 재판에서 유죄인지 무죄인지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유죄인지 무죄인지, 그리고 검찰의 기소권 행사가 과도했는지 과도하지 않았는지 가려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청와대가 자신들을 수사하는 검찰 관계자들을 교체하고, 자신들을 수사하는 검찰총장을 압박하는 것은 “민주적 통제”가 아닙니다. “민주적 통제”라는 개념의 남용입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으로 탄생한 6공화국의 거의 모든 대통령이 재임 중에 아들이나 형제, 측근의 비리와 관련한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했지만, 그럼에도 이런 일을 벌이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권한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형사사법 제도의 공정성을 흔드는 일이고, 무엇보다 상식적인 도덕과 윤리 기준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 말을 받아들이시기 어렵다면, 윤서인 씨의 글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윤서인 씨는 ‘우리 편’이 집권하면 ‘바로 지금처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길 바라십니까? 그때 가서는 어떤 논리로 ‘윤서인 씨가 지지하는 대통령’이 ‘바로 지금처럼 하는 일’을 비판하겠습니까?

민주주의와 선거제도의 미덕 중 하나는 권력을 상대 편에게 평화적으로 이양하는 방식을 제도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선거는 점점 권력의 평화적 이양과 거리가 먼 것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사화(士禍)’가 제도화되는 느낌입니다.

섬뜩한 예감, 불길한 예언이 부디 현실화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래는 윤서인 씨가 1월 23일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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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인
1월 23일 오전 11:02 ·
우리 욕만 할 게 아니라 한 번 잘 생각해보자.

솔직히 얘네들 너무 잘 하잖아? 권력은 이렇게 유지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하는 게 미개한 한반도에서는 그냥 정답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되지”가 어딨음?

왜 안 되는데? 민주주의를 죽여서? 헌법을 훼손해서? 원칙을 어겨서? 아니 그게 뭔데? 그거 잘 지키면 뭐가 좋은데? 지금 나라가 왜 이 꼴이 났지?

난 이런 거 볼때마다 누구 생각이 나서 정말 속 터진다. 지금 억울하게 고초를 겪고 계셔서 말하기가 참 조심스럽지만 ㅠㅠ

도대체 왜 그 분은 그 자리에서, 그 많은 권력과 의석수를 가진채로 그렇게나 무기력했을까?

배신을 당해서? 애초에 배신할 놈들을 뽑은 게 누군데.

저놈들이 나쁜짓을 해서? 아니 그럴 줄 몰랐음? 국가를 전복시키고 싶은 것들이 뭔 짓인들 안 할까? 나도 알고있는 걸 왜 모른 건데?

영악하지 못해서? 리더가 영악해야지. 저 더러운 전쟁터에서 영악하지 못한 건 너무나 큰 잘못 아닌가.

리더는 본인이 억울해질 게 아니라 상대편을 억울하게 만들어야 하는 자리잖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상대편을 억울하게 만들지 못하면 저렇게 본인이 억울해지는 게 바로 리더라는 자리다.

이렇게 해서 이기면 되는데. 이게 권력인데.
리더는 이기라고 뽑는 건데 뻔뻔하게 이겼어야지. 군대를 동원하든 광장에 서든 촛불집회에 나가 돌이라도 맞든 뭐라도 해서 이겼어야지. 대통령 힘이 이렇게 무소불위라는 걸 어떻게 저놈들을 보면서 배우고 있노.

제발 이제는 이쪽에서도 이기는 지도자를 보고싶다. 민주주의 헌법 원칙 같은 거 지킨다고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도자 같은 거 또 보고싶지 않다. 착한 거 질색. 품위는 카메라 앞에서나 지키고 뒤에서는 이렇게 개같이 싸우라고. 제발 좀 ㅅㅣ발 진짜.

근데 지금 자유한국당 하는 짓 보면 희망이 1도 없다. 심지어 이 와중에도 얼어죽을 중도 코스프레 착한척 품위는 개뿔 하아 인간은 왜 이리도 어리석을까. 어디까지 내려가야 정신을 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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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영렬을 생각한다: ‘조국 사태’와 기준의 일관성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우)

<보편적 기준>

윤리적 기준은 문화권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기준은 일관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받아들여 지는 보편적 기준입니다. 보편적 기준에 입각해 ‘이영렬 사건’과 ‘조국 사건’을 비교해봤습니다.

어제(2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조금 다듬고 보완해 출고한 [취재파일]입니다. 페이스북 외부 공유용 링크가 필요한 분은 아래 링크를 활용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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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습니다. 동시에 법률 위반이 있는지도 확인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안태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 등과 한 식당에서 만난 자리에서 법무부에서 근무하는 검사들에게 50만 원에서 100만 원이 든 돈봉투를 건넨 이른바 ‘돈봉투 만찬’ 사건을 [한겨레신문]이 단독보도한 지 이틀 만이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감찰-위법 확인 지시”

윤영찬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법무부 감찰위원회와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엄정히 조사하여 공직기강을 세우고 청탁금지법 등 법률 위반이 있었는지 여부도 확인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 하루 뒤인 2017년 5월 18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규정상 감찰 중에는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돈봉투 만찬’과 관련해 감찰하고 수사했습니다. 1달쯤 뒤인 6월 16일, 대검 감찰본부는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같은 날, 법무부는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면직(공직으로부터 배제) 처분했습니다.

‘돈봉투 만찬’에 대한 여기까지의 스토리는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결론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이보다 훨씬 적습니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 ‘돈봉투 만찬’ 사건의 결론은 무엇이었나?

기소된 지 6달 뒤인 2017년 12월 8일,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2심 역시 무죄였습니다. 2018년 10월 25일, 대법원은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무죄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징계 처분은 어떻게 됐을까요? 2018년 12월 6일,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정부를 상대로 한 면직 처분 취소 소송에서도 승소했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는 “이 사건의 면직 처분은 공익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과중해 재량권 일탈 남용에 해당한다.”라며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법무부는 2018년 12월 31일에 항소를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면직 처분은 취소됐고, 이영렬 전 중앙지검장은 검찰로 복귀한 뒤 곧바로 퇴직했습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로 이뤄진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돈봉투 만찬’ 사건에 대한 검찰의 기소와 법무부의 징계 모두 법원에서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이영렬 전 중앙지검장이 검찰과 법무부를 100 대 0으로 완벽하게 이긴 사건입니다.

● 이영렬을 생각한다: 조국 전 장관 사건과의 비교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경우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사건과 비교해봅시다. 조국 전 장관을 지지하는 분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검찰의 기소권 남용’입니다. 이는 조국 전 장관 관련 사건을 담당했던 검찰 간부들과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 간부들을 교체한 이번 검찰 인사를 정당화하는 주장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청와대 역시 지난 1월 23일 조국 전 장관 일가 관련 검찰 수사에 대한 시민 질문에 대해 “최근 검찰 수사의 불공정 논란,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인권침해 우려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흔들리게 되었다.”라고 답변하기도 했습니다.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용했기 때문에 검찰 간부를 교체한 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법원에서 기소는 물론 징계까지도 부당했다는 점이 “확인”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건과 관련된 검찰 간부와 검사들은 조국 전 장관 관련 사건을 지휘했던 간부들처럼 불이익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나아가, 이례적으로 검찰 수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업무지시”한 대통령은 사과를 하고,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에게 응분의 처분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요?

● ‘조국 사건’과 ‘이영렬 사건’의 평가 기준은 동일한가?

현실에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은 무죄 판결 확정 이후에도 요직에 기용됐습니다. 인사권 행사자는 청와대가 최근 여러 차례 강조한 것과 같이 대통령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 지시” 당시 관련 업무를 총괄했던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오히려 정권 실세의 자리를 확고하게 굳혔고, 김태우 전 수사관의 폭로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법무부 장관으로까지 임명됐습니다. 물론 그 이후의 난장판에 대해선 모두가 아는 바와 같습니다.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해 적용된 혐의는 “그깟 표창장 위조”일 뿐인데 ‘돈봉투 만찬’ 사건과 비교할 수 있냐고요? 일단 조 전 장관 또는 그 가족이 연루된 혐의는 “그깟 표창장 위조” 뿐만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둬야겠습니다. 표창장 위조 외에도 다양한 증명서 위조 혐의가 적용됐고. 여러 대학과 관련된 입시 비리 혐의, 사모펀드 관련 혐의, 뇌물 혐의에, 동생과 관련해선 전형적인 사학비리 혐의도 적용됐습니다. 게다가. 조국 전 장관 본인과 관련해선 서울동부지방법원 영장 판사가 “직권을 남용”했고 “법치주의를 후퇴”시켰다고 밝힌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 혐의도 적용됐습니다.

그럼에도 조국 전 장관과 관련돼 적용된 혐의는 “다들 하는 관행”일 뿐이고 “별 것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께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같은 기준이라면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법무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후배 검사들에게 식사 자리에서 ‘금일봉’을 준 행위 역시 “다들 하는 관행”이고 “별 것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돈봉투 만찬’ 사건에 대한 이런 평가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라, 조국 전 장관 관련 사건이 “별 것 아니”라고 말하는 분들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이렇게 평가할 수 있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 기준은 일관되어야 한다.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해 검찰이 기소한 혐의가 인정이 될지 안 될지는 앞으로 법원의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입니다. 그러나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조국 전 장관과 관련자들이 너무나 억울하게 인권을 침해당했고, 검찰이 이들에 대해 기소권을 남용했다고 생각하신다면, 이미 법원에서 무죄와 징계 취소가 확정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경우를 한 번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조국 사태’와 관련된 검사를 좌천하는 것이 정당한 인사 조치라고 생각한다면,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건에 관여했던 검찰과 청와대 관계자들의 승승장구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기준은 일관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공정함’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의(定義)입니다.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해 어떻게든 옹호할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뿐만 아니라, 일관된 기준을 적용해서 평가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해 애쓰는 분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어디까지 망가져 있는지 거울 앞에서 한번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한 가지 오해가 있을 수 있어서 덧붙입니다. 저는 ‘돈봉투 만찬’ 사건에 대해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국 전 장관이 앞으로 재판에서 무죄를 받더라도, 조 전 장관이 인사청문회 과정 등에서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을 비판하거나, 검찰의 수집한 증거들의 형사 재판에서의 증거능력과 관계없이 표창장 위조 등의 사실관계를 지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저는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건과 관련한 검찰권과 징계권 행사, 그리고 이를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의 조치에 대해서도 조국 전 장관 사건을 평가할 때 적용하는 기준과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뜻으로 글을 썼습니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619086&plink=NEWLIST&cooper=SBSNEWSSPECIAL&fbclid=IwAR2rULCfNP7IGCSLlgmv2QBn-tHKkGAdN65GzQlTPSNdOUSR971bD4oJq5U&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취재파일] 이영렬을 생각한다: ‘조국 사태’와 기준의 일관성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터무니 없는 소리에 대해 몇 차례 해명의 글을 올렸더니 걱정해주시는 분이 많네요. 마음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괜찮습니다.

이런 저런 비난에 시달리는 것, 써야할 기사 꼭 써야한다고 주장하다 부딪치는 것, 좋은 사람인 척 하다 결정적 이익이 걸린 일이 터지면 가면을 벗는 사람과 상대하는 것,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 지난 정부 때도 경험했던 일입니다. 인간 관계? 써야할 기사가 있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반드시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아서 이 모든 일을 기록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누가 맞았는지 알게 되겠죠.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지적 검찰 시점과 불가지론 사이에서

‘조국 사태’를 거치며 고민해온 문제에 대해 [기자협회보]에 짧은 칼럼을 썼습니다.

(기자협회보 지면에는 온라인 칼럼보다 약간 축약된 글이 실렸습니다.)

※ 기자협회보 칼럼 원문 링크: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47185&fbclid=IwAR2W8FcuSSzxo8sdFYBDB7J7W5XO62ssNK0ac8qg34RfZZrTT6V8JZt6axs

‘조국 사태’ 이후 한국 저널리즘과 관련된 여러 질문이 공론장에 제기됐다. 그 중에서도 법조 담당 기자들에게 가장 큰 고민을 안긴 문제는 ‘수사 중인 사건 관련 기사를 어떤 관점에서 보도할 것인지’이다.

지난해 12월 한국기자협회 등이 주최한 ‘조국 보도를 돌아보다’ 세미나에서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전지적 검찰 시점’의 문제를 제기했다. 권석천 논설위원은 피의사실 공표나 보도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검찰 취재가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검찰 관점만으로 보는 것이 문제다. 전지적 검찰 시점은 국민의 알 권리를 제대로 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전지적 검찰 시점’이 드러나는 관행적 기사 문체를 바꾸고, 피의자 입장을 검찰 입장과 최대한 병렬적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등의 해법도 제시했다.

권 위원의 주장은 피의사실 공표냐 아니냐는 단순한 문제제기를 넘어서, 언론이 고민해야 할 윤리적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필자 자신도 근거가 부족한 검찰 중심적 관점의 표현을 관행적으로 사용한 적이 분명히 있다. 근거가 부족한 전지적 검찰 시점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지난 정부와 관련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이어질 때는 보이지 않던 ‘전지적 검찰 시점’에 대한 문제가 조국 전 장관 관련 보도 이후에 집중적으로 제기되는 배경에는 의구심이 생긴다. 또한, ‘조국 사태’ 이후에도 최근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나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판단을 받은 안태근 전 검찰국장 관련 보도에 대해서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두 사람에 대한 비판적 보도가 잘못이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조국 전 장관 관련 사건보다도 훨씬 더 명확한 무죄 판단이 나온 두 사건에 대해서는 조국 전 장관 사건 보도를 비판할 때 적용됐던 것과는 다른 평가 기준이 적용되는 듯한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저널리즘적 불가지론’의 문제에 대해서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검찰 등이 발표하는 내용은 일방적 주장일 뿐이고, 법원에서 사실 관계를 확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론은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어느 쪽의 입장이 더욱 신빙성이 있는지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조국 사태’와 관련해 적지 않은 사람이 밝힌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라면 대부분 사건 보도는 현실적으로 ‘불가지론’이라는 기준에 어긋나는 비윤리적 보도가 된다. 이런 식이라면 언론은 전 남편 등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고유정씨의 주장도 수사기관의 주장과 5:5로 보도해야 할 것이다. ‘어금니 아빠’ 등 잔인한 살인 피의자의 주장 역시 마찬가지로 보도해야 할 것이다. 언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것이 과연 전적으로 부당한 일일까?

언론은 보도 시점에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정보를 취재한 뒤,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주장의 신빙성을 판단할 책임이 있다. 권석천 위원의 주장처럼 근거 없이 검찰의 말에 무게를 두는 ‘전지적 검찰 시점’은 배격해야 한다. 그러나 재판 결과 확정 이전에는 진실을 누구도 알 수 없다며 가급적 병렬적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적절하지도 않다. 단정을 피하는 것은 미덕이지만, 누구의 말에 신빙성을 부여할지에 대한 판단까지 언론이 포기할 수는 없다. 그리고 뉴스 소비자는 (이상적으로는) 언론사의 판단과 관점의 합리성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언론사는 ‘전지적 검찰 시점’과 ‘불가지론’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매일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책임은 누적되어서 언론사의 신뢰도와 영향력으로 귀결될 것이다. 진영논리에 기대서 간편한 선택을 하는 언론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어렵지만 옳은 선택을 한 언론이 결국에는 살아남으리라는 희망을 아직은 잃지 않고 있다.

전지적 검찰 시점과 불가지론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