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윙] 동성애와 성경


한때 좋아했던 미드 ‘웨스트윙’, 뒤로 갈수록 미국 정치를 지나치게 미화해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관심이 시들해졌다. 그러나 소수민족 출신 대통령(시즌6와 7의 주제)이라는 그저 민주당 판타지처럼 보였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버렸다.

‘웨스트윙’ 작가인 아론 소킨에게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은 정치 컨설턴트 데이비드 엑슬로드다. 엑슬로드는 이후 오바마 진영에 합류해 사상 최초의 아프리카계 대통령을 만들었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일을 현실로 만든 사나이….

‘웨스트윙’의 작가 아론 소킨의 장기는 장광설이다. ’뉴스룸’의 앵커 매커보이나 ‘웨스트윙’의 바틀렛 대통령 같은 캐릭터를 통해 소킨은 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전한다. 소킨의 기량이 가장 화려하게 펼쳐지는 대목이다. (‘뉴스룸’은 내가 몸담고 있는 업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손발이 오그라들 때가 많지만…) 지금부터 소개할 부분도 공들여 쓴 티가 역력한 명장면이다

장소는 백악관. 방에 들어서자마자 앉지도 않고 연설을 시작한 바틀렛 대통령은 (아마도 일부러) 앉아서 지켜보고 있는 제이콥스 박사를 발견한다. 영문학 박사인 제이콥스는 동성애에 반대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이자 토크쇼 출연자다. 바틀렛 대통령은 성경을 조목조목 인용하며 제이콥스 박사를 박살낸다. 구약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일인지 밝힌다. 내용은 이렇다.

노벨경제학 수상, 빼어난 연설 실력, 유머 감각…미국 민주당을 지지하는 백인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갖춘 대통령 캐릭터
노벨경제학 수상, 빼어난 연설 실력, 유머 감각…미국 민주당을 지지하는 백인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갖춘 대통령

[바틀렛 대통령]
죄송합니다만, 당신이 제나 제이콥스 박사 맞지요?

[제이콥스 박사]
네. 대통령님.

[바틀렛 대통령]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이콥스 박사]
감사합니다.

[바틀렛 대통령]
(연설을 이어가다 제이콥스 박사를 보고 한숨을 쉬며) 죄송합니다 박사님. 혹시 의학박사(MD)인가요?

[제이콥스 박사]
아니요. PhD 입니다.

[바틀렛 대통령]
심리학 박사인가요?

[제이콥스 박사]
아닙니다 대통령님.

[바틀렛 대통령]
신학인가요?

[제이콥스 박사]
아니요.

[바틀렛 대통령]
사회복지인가요?

[제이콥 박사]
영문학 박사입니다.

[바틀렛 대통령]
제가 물어보는 이유는 이겁니다. 당신 쇼를 보니까 사람들이 조언을 구하려고 전화를 걸고 거기서 당신은 제이콥 박사라고 불리더군요. 어쩌면 시청자들이 그 호칭 때문에 헷갈려서 당신이 심리학, 신학, 그리고 보건학과 관련해 고도의 훈련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제이콥스 박사]
제 생각엔 시청자들이 헷갈리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통령님.

[바틀렛 대통령]
다행이네요. 전 당신의 쇼를 좋아합니다. 나는 당신이 동성애를 역겨운 것(abomination)이라고 부르는 점이 좋아요.

[제이콥스 박사]
동성애를 역겨운 것이라고 부른 것은 제가 아닙니다 대통령님. 성경이 그렇게 부르고 있죠.

[바틀렛 대통령]
네 그렇죠. 레위기에 써있죠.

[제이콥스 박사]
18에 22죠.

[바틀렛 대통령]
장과 절이지요.

당신이 여기 있는 동안 전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싶어요.

저는 출애굽기 21장 7절이 허용하고 있는 것처럼 막내딸을 노예로 팔려고 합니다. 제 딸은 조지타운 대학 2학년이고, 이탈리어를 유창하게 하고,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언제가 식탁을 깨끗하게 정리하죠. 제 딸의 가격은 얼마가 적당할까요?

이 문제를 생각하는 동안, 한 가지 더 물어봐도 될까요? 제 비서실장인 리오 맥게리는 안식일에 일하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출애굽기 35장 2절은 분명히 비서실장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제 손으로 비서실장을 죽여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경찰을 불러서 맡겨도 되는 것인가요?

이 도시에 스포츠팬이 많기 때문에 정말로 중요한 질문이 또 있습니다. 레위기 11장 7절에는 죽은 돼지의 가죽을 만지는 것은 사람을 불결하게 만든다고 써있습니다. 장갑을 끼겠다고 약속하면 워싱턴 레드스킨스가 미식축구를 계속 해도 될지요? 노트르담 대학은 어떤가요?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는요?

제 동생 존이 다른 종류의 곡식을 나란히 심었다는 이유로 정말 이 도시 사람 전체가 존을 돌로 치기 위해 모여야 할까요? 제 어머니가 두 개의 다른 실로 만든 복장을 입었다면 가족 모임에서 어머니를 불태워도 될까요? 이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보시겠습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하죠. 이 모임을 당신이 매월 참석하는 무지하고 융통성 없는 클럽 모임으로 착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건물에선 대통령이 서 있을 때 앉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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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션그래픽] 전승절이 뭔가요?

디자이너 정순천, 안준석 씨와 함께 만든 모션그래픽. 뉴스에 많이 나오지만 정확히 모르는 개념을 뉴미디어를 가장 활발하게 사용하는 세대(10대-20대)가 친숙하게 느끼는 문법으로 풀어보려는 의도였다. 9월 3일 업로드 후 9월 7일 오전 11시 43분 현재 페이스북 동영상 플레이 수(도달수 말고 조회수) 11만 8,186회를 기록했다. 댓글 반응도 지금까지 만든 콘텐츠 가운데 가장 좋았다.

스낵 콘텐츠가 아닌 정통 시사 콘텐츠도 모바일 세대 문법으로 제작하면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셈이다. SBS라는 지상파 브랜드에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이런 콘텐츠라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모션그래픽을 계속 제작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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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는 김용철이 될 수 있을까? – 윌 스미스의 ‘뇌진탕’


 

영화 ‘뇌진탕(Concussion)’ 트레일러가 공개됐다. 12월 개봉 예정이다.(미국 기준) 주연 배우인 윌 스미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벌써 나온다.

영화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윌 스미스가 연기한 법의학자 베넷 오말루 박사는 2002년 전직 미식 축구 선수의 뇌를 부검한 결과 CTE(Chronic traumatic encephalopathy) 증상을 발견했다. CTE는 지속적으로 충격을 받아 뇌가 크게 손상되는 병이다. CTE 환자는 우울증이나 치매에 시달린다. 비슷한 증상인 복싱 선수들의 펀치 드렁크는 오래 전에 발견됐다. 그리나 미식축구가 심각한 뇌손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오말루 박사가 처음 세상에 알렸다.

오말루 박사는 어떻게 됐을까?

미국이라고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NFL(미국 미식축구 리그)는 미식축구와 뇌손상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NFL은 자체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조사위원회의 결론은 오말루 박사를 비롯한 다른 뇌신경학자들의 연구결과와 달랐다. NFL 직원들은 언론에 나가 오말루 박사가 사기를 치고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언론에 나가서 나를 모욕했습니다. 내가 의술을 행하지 않고 부두교 의식을 행한다고 말했죠.

– 베넷 오말루 박사

willsmith-concussion

2009년,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 의회가 NFL 임원들을 청문회에 불러내 뜨겁게 달궈줬다(grill). NFL은 태도를 바꿔 오말루의 연구 결과를 인정했다. 선수 보호를 위해 규칙을 바꾸고 뇌진탕과 CTE 연구를 위해 돈을 내놨다. 윌 스미스가 출연하는 영화도 제작됐다. 해피엔딩이다.

용감한 고발은 어렵다. 힘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불편한 진실을 덮으려고 시도한다. 2002년 미국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이 문제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의회는 사기업인 NFL 임원들을 불러서 뜨거운 맛을 보여줬다. (기업인들을 국감에 불러내는 것이 후진적 정치문화라고 비판하는 어떤 사람들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결국 미국에서 가장 큰 프로스포츠 리그인 NFL이 무릎을 꿇었다. 시스템이 작동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용감한 고발자는 결국 영웅이 됐다.

우리 사회에도 용감한 고발자가 부족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 용감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불행해졌다. 해피엔딩은 없었다. 이들을 소재로 대중 영화를 만들기는 어렵다. 대중은 슬픈 결말을 사랑하지 않는다. 삼성 비자금을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를 김윤석 씨나 송강호 싸가 연기할 수 있을까? 적어도 아직까지는 불가능하다. (이런 영화가 나온다 한들 CGV에서 볼 순 없겠지…)

12월에 나올 ‘뇌진탕(Concussion)’은 꼭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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