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루이스 “행운의 쿠키를 먹지 마세요.”

‘머니볼’ 작가로 유명한 마이클 루이스의 2012년 프린스턴 대학 졸업식 축하 연설이다.

삶에서 운의 역할을 강조하는 메시지도 좋지만 간명한 문장과 냉소적 유머가 일품이다.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역시 유익하게 읽었다. 지적 열정이나 문학적 야심 같은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번역은 내가 했다. 오역과 의역이 산더미다. 정확한 뜻을 알고 싶다면 영어 원문 링크를 참조하길 바란다.

마이클 루이스 “행운의 쿠키를 먹지 마세요”(“Don’t Eat Fortune’s Cookie”) 원문 링크

감사합니다. 틸만 학장님. 이사회 여러분 그리고 친구 여러분. 2012년 졸업생 부모님 여러분. 무엇보다 2012년 프린스턴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위해 박수 한번 칩시다. 교회 안을 둘러봤는데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일이 또 생긴다면 그 때는 환호하는 것이 어색할테니까요. 이 순간을 즐기세요.

30년 전 나는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어떤 나이 많은 사람이 삶의 교훈을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한 마디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누가 그 연설을 했는지조차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졸업 그 자체입니다.여러분은 흥분해있고, 심지어 안도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여러분 모두 그렇겠지요. 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는 완전히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내 인생 최고의 4년을 보냈고 또 바쳤는데 이게 그들이 내게 감사를 표하는 방식이었죠. 나를 쫓아내는 것 말입니다.

당시 한 가지 점에 대해서는 확신했습니다. 내가 대학 밖에서 통하는 경제적 가치를 전혀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는 점 말입니다. 나는 예술사를 전공했습니다. 당시에도 그건 미친 짓으로 생각됐습니다. 여러분 대부분보다 그때의 제가 시장에 나갈 준비가 안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다보니 부유하고 유명해졌습니다. 뭐, 그런 셈입니다. 이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나가 경력을 쌓기 전에 경력이란 것이 얼마나 신비롭게 풀릴 수도 있는지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프린스턴을 졸업할 때까지 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또 어떤 장소에 대해서도 단 한 단어도 출판한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the Prince를 위해 글을 쓰지 않았고,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글을 쓴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프린스턴에서 예술사를 연구하면서 나는 문학적 야심에 대한 첫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 일은 졸업논문을 쓸 때 벌어졌습니다. 내 조언자는 정말로 재능있는 교수이자, 고고학자인 윌리엄 차일즈라는 분이었습니다. 내 논문은 이탈리아 조각가 도나텔로가 그리스와 로마 조각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 요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지만 내가 언제나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었죠. 차일즈 교수님이 실제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신만이 아시겠지만, 교수님은 내가 논문에 몰두하도록 도우셨습니다. 몰두 이상이었죠. 집착했습니다. 논문을 제출할 때 나는 남은 인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디. 졸업 논문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책을 쓰는 것이었죠.

그리고 논문 디펜스에 나섰습니다. 여기서 겨우 몇 야드 떨어진 맥코믹 홀에서였습니다. 나는 귀를 열고 내 논문이 얼마나 잘 쓰여졌는지 차일즈 교수님이 말씀하길 기다렸습니다. 교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죠. 그리고 45분 쯤 지난 후 결국 내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문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렇게 표현하겠네.” 교수님이 말했습니다 “절대로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지 말게나.”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 실제로는 말이죠. 나는 무엇을 할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을 했습니다. 대학원에 갔죠. 밤에 글을 썼습니다.별로 효과는 없었습니다. 무엇에 대해 써야할지 단서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어느날 밤 저녁식사에 초대됐는데, 살로몬 브라더스라는 대형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에서 일하는거물급 인사의 아내 옆에 앉았습니다.

그녀는 내게 일자리를 주라고 남편에게 압력을 넣었죠. 나는 살로몬 브라더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살로몬 브라더스는 우연히도 새롭게 창조되고 있던 월스트리트 한복판에 있었죠 – 우리가 모두 알게 되었고 사랑하게 된 그런 장소로 말입니다. 그곳에 갔을 때 나는 우연히도 커져가는 광기를 관찰하기에 최적의 장소에 배치됐습니다. 그들은 나를 파생상품에 대한 내부 전문가로 만들었습니다. 1년 반 뒤 살로몬 브라더스는 내게 전업 투자가들에게 파생상품에 대해 조언하라며 수십만 달러짜리 수표를 줬습니다.

이제 쓸 주제가 생겼습니다. 살로만 브라더스였죠. 월스트리트는 너무 정신이 나가서 갓 프린스턴을 졸업했고 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돈에 대한 전문가인 척 하라며 적지 않은 돈을 줬습니다. 나는 두 번째 졸업논문에 발을 들여놓은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선인세로 4만 달러를 주는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수백만 달러가 약속된 직장을 그만둘 예정이라고 말씀드렸죠. 전화기 반대편에서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왜요?”

“살로몬 브라더스에 10년만 더 다녀라. 재산을 모으고, 그 다음 에 책을 쓰거라.”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나는 지적 열정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 왜냐하면 나는 이곳, 프린스턴에서 그것을 느꼈으니까요 –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그 열정을 느끼길 원했습니다. 나는 26살이었습니다. 만약 36살까지 기다렸다면 아마 절대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느낌을 잊어버렸겠죠.

내가 쓴 책은 ‘라이어스 포커’입니다. 100만부가 팔렸죠. 나는 28살이었습니다. 나는 경력이 있었고, 작은 명성이 있었고, 작지 않은 재산이 있었고, 내 인생을 설명하는 이야기 방식(narrative)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갑자기 나를 타고난 작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나조차도 진실에 더 가까운 다른 설명 방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운(運)이 었죠. 살로몬 브라더스 사모님 옆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할 확률이 얼마나 될가요? 한ㅅ 시대의 이야기를 쓰기에 가장 적합한 월스트리트 회사 내부에 안착할 확률은요? 업계를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에 배치될 확률은요? 상속권을 박탈하는 대신 한숨 한 번 쉬고 “꼭 해야한다면 하거라.”라고 말하는 부모를 가질 확률은요? 프린스턴 예술사 교수가 꼭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부채질 할 확률은요? 애초에 프린스턴에 들어갈 확률은요?

이건 그냥 가식적 겸손이 아닙니다. 내용이 있는 가식적 겸손입니다. 내 사례는 성공이 어떻게 늘 합리화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성공이 행운 덕분이라고 설명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 특히 성공한 사람들은요. 나이를 먹어가고, 성공하면서, 사람들은 성공에 어딘가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삶에 있어서 우연한 일의 역할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도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거든요.

나는 이것에 대한 책을 썼습니다. ‘머니볼’입니다. 겉보기에는 야구에 대한 것 같지만 사실 다른 것에 대한 책입니다. 프로야구에는 가난한 팀과 부유한 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돈을 선수들에게 씁니다. 내가 책을 쓸 때 프로야구에서 제일 부유한 구단은 뉴욕양키스였습니다. 선수 25명에게 1억 2천만 달러를 썼죠. 제일 가난한 팀은 오클랜드 에이스였습니다. 3천만 달러를 썻습니다. 그러나 오클랜드 팀은 양키스만큼 많은 경기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오클랜드보다 부유한 다른 팀들보다 더 많은 경기에서 이겼습니다.

이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부유한 팀들이 최고의 선수들을 사들여서 항상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클랜드 팀은 뭔가를 깨달았습니다: 부유한 팀들이 누가 최고의 야구 선수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죠. 선수들의 가치가 잘못 평가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장 큰 하나의 이유는 전문가들이 야구에서 성공하는데 있어 운(運)의 역할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수들은 다른 선수의 행동에 의해 좌우되는 것들을 해냈다는 이유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투수들은 승수를 근거로 돈을 받았고, 타자들은 득점권에서 안타를 쳤다는 이유로 돈을 받았습니다. 선수들은 자신들의 통제범위 밖에 있는 일들 때문에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컨대, 때려낸 공이 우연히 필드 안에 떨어지는 일 같은 것으로 말입니다.

야구나, 스포츠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1년에 수백만 달러를 받는 기업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업계에 있던 사람들이 언제나 그랬던 것과 정확히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움직임을 평가하는 몇 백만명의 사람들 앞에서요.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모든 것에 통계를 앞세웁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잘못 평가됐습니다 – 왜냐하면 더 넓은 세상이 그들의 운(運)에 눈을 감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한 세기 동안 계속돼 왔습니다. 우리 모두의 코 앞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 이것이 어떤 가난한 팀에게 너무나 관찰하기 좋게 작용해서 도저히 눈치채지 않을 수 없게 되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묻게됐습니다. 만약 수백만 달러를 받는 프로 운동 선수 한 명이 잘못 평가될 수 있다면 누구인들 안 그럴까? 순수하게 성과로 평가받는 체계여야 하는 프로 스포츠가 운과 실력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머니볼’ 이야기에는 실용적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더 나은 데이터를 이용한다면, 더 나은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 이용 가능한 시장의 비효율성이 언제나 있다는 것. 그리고 기타 등등 입니다. 그러나 ‘머니볼’에는 더 포괄적이지만 덜 실용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인생의 결과를 보고 속지말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결과는 완전히 우연은 아니더라도 그 안에 엄청난 분량의 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만약 누군가 성공했다면, 일단 운이 좋았던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운에는 의무가 따릅니다. 여러분은 빚을 진 것입니다. 단지 신에게만 빚을 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운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이런 얘기를 이런 연설에서 하는 것은 이것을 여러분이 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내 집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주립대학 심리학과 연구자 한 쌍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을 실험용 쥐로 선택했습니다. 그런 뒤 그들은 학생들을 팀으로 나누고, 성별에 따라 분리했습니다. 남자 3명 또는 여자 3명이 한 팀이 됐습니다. 그런 뒤 이 3명으로 구성된 팀들을 한 방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팀원 3명 중 한 명을 임의로 리더로 지정했습니다. 그런 뒤 그들에게 해결하기 복잡한 도덕적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학술연구에서 속임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또는 캠퍼스 음주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였다고 칩시다.

문제를 풀기 시작한지 정확히 30분 후 연구자들은 각 그룹에 끼어 들었습니다. 연구자들은 방에 쿠키 한 접시를 들고 들어갔습니다. 쿠키 4개였습니다. 팀은 3명의 사람으로 구성됐지만 쿠키는 4개였습니다. 모든 팀 구성원들은 분명히 쿠키 하나를 갖게 되지만, 그래도 4번째 쿠키가 그대로 남습니다. 어색해지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믿을 수 없을정도로 일관되게 그룹 리더로 임의로 임명된 사람이 네 번째 쿠키를 집어 들었니다. 그리고 그걸 먹었습니다. 그냥 먹은 정도가 아니라 입맛을 다시며 먹었습니다. 입술을 쩝쩝 거리고, 입을 벌리고, 입 주변에 침을 묻혔습니다. 마지막에는 네 번째 쿠키의 잔여물이 그리더의 셔츠에 부스러기로 남았습니다.

이 리더는 어떤 특별한 과업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특별한 가치도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냥 우연히 선택됐습니다. 30분 전에 말입니다. 그의 지위는 그저 운이 좋아서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위는 이 쿠키가 당연히 자기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이 실험은 월스트리트의 보너스와 CEO 연봉을 설명하는 걸 도와줍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인간 행동을 설명하는 걸 돕는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새로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여러분은 그룹의 리더로 임명된 셈입니다. 여러분의 임명은 아마 완전히 임의적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반드시 이 임명의 임의적 측면을 의식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운이 좋은 소수입니다. 부모 운이 좋았고, 나라 운이 좋았고, 운 좋은 사람들을 입학시켜 운 좋은 사람들끼리 소개시켜주고 그럼으로써 더 운이 좋아질 기회를 늘려주는 프린스턴 같은 곳이 존재해서 운이 좋았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누구도 여러분이 자신의 이익을 뭔가를 위해 희생할 것이라고 실제로는 믿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운이 좋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여분의 쿠키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더 많은 쿠키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여분의 쿠키를 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여러분은 아마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척이라도 한다면 여러분은 더 행복해질 것이고, 세계는 더 나은 곳이 될 것입니다.

절대 잊지 마세요: 조국을 위한 헌신. 모든 나라를 위한 헌신. [프린스턴 대학의 비공식 모토]

감사합니다.

그리고 운이 좋기를 바랍니다.

마이클 루이스 “행운의 쿠키를 먹지 마세요.”

올리버 색스 ‘내 자신의 삶’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 올리버 색스 박사가 8월 30일(미국 동부 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2세. 연합뉴스는 저명한 신경학자이자 뛰어난 작가였던 색스 박사를 이렇게 묘사했다.

뇌의 신비 탐험한 ‘의학계의 시인’ 올리버 색스 별세(종합2보)

나는 의학과 관련된 색스 박사의 글을 읽은 적이 없다. 그러나 색스 박사가 암 전이를 진단받은 직후 2015년 2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에세이는 감명 깊게 읽었다. 나 역시 (먼 훗날) 죽음 앞에서 이렇게 간명하고 담담한 글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사는 게 힘들 때 읽으면 좋은 글이다.  필요할 때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번역해 블로그에 남긴다. 늘 그렇듯 오역과 의역이 태반이니 정확한 의미가 궁금하면 원문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내 자신의 삶(My Own Life)” 올리버 색스 [영어 원문 링크]

1달 전까지 나는 건강상태가 훌륭하다고, 심지어 탄탄하다고 생각했다. 81살이었지만 나는 하루에 1마일씩 수영했다. 그러나 내 운은 거기까지였다. – 몇 주 전 간에 다발성 전이가 있음을 알게됐다. 9년 전 눈에서 안구흑생종이라는 희귀한 종양이 발견됐다.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방사선 치료와 레이저 시술을 받고나니 그쪽 눈은 결국 안 보이게 됐다. 안구흑생종의 전이 확률이 50% 정도지만, 내 경우는 특성상 (전이될) 가능성이 더욱 낮았다. 나는 운이 없었다.

첫 진단 이후 9년 동안 좋은 건강과  높은 생산성을 누린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죽어가는 것과 대면하고 있다. 암덩어리는 간의 1/3을 차지하고 있고 진행이 느리긴 하지만 이런 암의 진행 과정은 막을 수 없다.

남은 몇 달을 어떻게 살지 선택하는 것은  내 몫이다. 나는 가능한 가장 풍성하고, 깊이 있고, 생산적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이점에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의 말이 도움이 된다. 65살에 죽을 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된 데이비드 흄은 1776년 8월, 단 하루만에 짧은 자서전을 썼다. 그는 이것에 “내 자신의 삶 (My Own Life)”라는 제목을 붙였다.

“나는 이제 신속한 사라짐에 대해 고찰한다.” 그는 썼다. “질병 때문에 느끼는 고통은 거의 없다. 더 이상한 점은 육신의 커다란 쇠퇴에도 불구하고, 내 영혼은 찰나의 감퇴도 겪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연구에 대한 열정과 동료들 사이에서의 유쾌함을 전과 같은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

나는 80살 넘게 살 정도로 충분히 운이 좋았고, 그리고 흄이 숨진 나이인 65살 이후의 15년도 (그전과) 똑같이 일과 사랑을 모두 풍부하게 즐겼다. 이 기간 책을 5권 출판했고 올봄에 출판 예정인 자서전을 한 권 완성했다.(흄의 자서전보다 몇 페이지 더 길다.) 거의 끝마쳐가는 다른 책도 몇 권 더 있다.

흄은 덧붙였다. “나는 온화한 기질이고, 화를 잘 참고, 개방적이고, 사교적이고, 흥겨운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이 애착을 가질지만 적대감을 갖기는 어렵고, 내 안의 모든 열정을 잘 조화시키는 사람이다.”

이점에서 나는 흄과 다르다. 사랑하는 부부관계와 친구관계를 향유했고, 누구와도 심각한 원한을 지지 않았지만 온화한 기질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나를 아는 사람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폭력적인 열광을 동반한 격정적 기질의 인간이고, 내 안의 열정을 극단적으로 조율하지 못했다.

그리고 흄의 에세이 중 이 문장은 진실이기 때문에 특히 더 큰 충격을 줬다. 그는 썼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에서 더 이상 분리되기는 어렵다.”

지난 며칠동안, 나는 아주 높은 고도에서 내 인생을 일종의 풍경처럼 살펴볼 수 있었고, 인생 모든 부분의 연결을 깊숙이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인생과 끝을 봤다는 뜻이 아니다.

반대로 나는 아주 강렬하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남아있는 시간 우정이 깊어지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기를, 글을 더 쓸 수 있기를, 그리고 체력이 허락할 경우 여행을 할 수 있기를, 새로운 경지의 인식과 통찰력을 갖게 되길 희구하고 희망한다.

이 세상에 남길 기록을 바로잡는데는 대담함과 명증함 그리고 평이한 말하기가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즐거움을 위한 시간도 약간 있을 것이다.(심지어 어리석음을 위한 시간 역시 약간 있을 것이다.)

나에게 갑자기 명확한 초점과 관점이 생겼다. 본질적이지 않은 어떤 것에 소비할 시간이 내겐 없다. 나 자신과 나의 일 그리고 내 친구들에게 집중해야만 한다. “뉴스아워”를 매일 밤 시청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정치나 지구온난화 논쟁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분리다. – 나는 여전히 중동과 지구온난화, 그리고 늘어나는 불평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다. 미래에 속한 것이다. 나는 재능있는 젊은 사람을 만나면 기쁘다 – 내 암 전이를 검사하고 진단한 사람을 만날 때조차 말이다. 나는 미래가 좋은 이들에게 맡겨져 있다고 느낀다.

지난 10년 가량 나는 동시대인들의 죽음을 점점 의식해왔다. 우리 세대는 떠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 각각의 죽음을 나의 일부가 찢겨 나가는 것 같은 갑작스런 중단으로 느껴왔다.

우리가 떠나고나면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와 똑같은 사람이 존재했던 적은 원래 없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들은 채울 수 없는 구멍을 남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 존재는 남과 다른 개인이 되고, 스스로의 길을 찾고, 스스로의 인생을 살고, 스스로의 죽음을 찾는 운명이기 – 유전적이자 신경계통적인 운명 – 때문이다.

전혀 겁을 먹지 않은 체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배적 감정은 감사함이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나는 많은 것을 받았고 일부를 돌려줬다. 나는 읽었고, 여행했고, 생각했고, 썼다. 나는 세상과 교류했고, 작가 그리고 독자들과 특별한 교류를 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있는 존재,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리고 그 자체가 어마어마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올리버 색스 ‘내 자신의 삶’

스티븐 킹 ‘미스터 메르세데스’

스티븐 킹은 대중소설가다.’메르세데스 킬러’는 그가 처음으로 쓴 탐정소설이다.익숙하지 않은 장르이기 때문인지 흥행을위한 장치가 평소보다 노골적으로 배치됐다.금융위기이후 대량 실업, 익명 데이트 사이트를 통한범죄 같은 낯익은 시대 배경이 펼쳐진다. 주독자층인 40대 이상 남성을 위한 성적 판타지도 조금은 작위적으로 묘사된다.은퇴한 백인 형사를 돕는 영리하고, 잘생기고,백인 같이 행동하는 흑인 소년은 오바마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도 이야기 풀어가는 솜씨가 워낙 뛰어나 전형적 설정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클리쉐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잘 만든 007영화가 될 수도 있고, 손발이 오글거리는 키치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니까.

읽다보면 페이지가 쏜살같이 넘어간다. 스티븐 킹은 자신이 쓴 글쓰기 책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제대로 된 캐릭터만 만들내면 스토리는 자동으로 굴러간다고 설명했다. 이 책도 그렇다. ‘미제 살인사건 범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은퇴 형사’라는 반드시 독창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주인공이지만, 일단 캐릭터가 잡히자 스토리가 물 흐르듯 흘러간다.

살인범의 정체를 소설 초반에 드러낸 것 역시 이제는 신선하지 않은 수법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변태적 살인마의 내면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스티븐 킹의 재능은 여전하다. 소설의 3/4 지점까지는 지루할 틈이 별로 없다.

형사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미쳐가는 살인마 이야기는 예전에 쓴 단편 ‘모범생(Apt pupil)’과 비슷하다. 나찌 출신 노인과 장시간 대화를 나누다 싸이코 살인범이 되는 모범생 이야기다. 형사와 심리게임을 벌이면서 점점 더 미쳐가는 메르세데스 킬러와 많이 닮았다.

이 소설을 별 다섯개 스케일로 평가하자면 3개 정도(3개 반 줬다가 반 개 줄임)다. 휴가지에서 가볍게 읽기에 딱 좋다. 일흔 넘은 나이에도 쇠하지 않는 필력을 과시하는 스티븐 킹 옹의 퍼포먼스는 부러울 따름이다. 부럽다….

스티븐 킹 ‘미스터 메르세데스’

스낵저널리즘이 콘텐츠 혁신?

“스낵 콘텐츠의 죽음(Death of Snackable Content)”이라는 글의 일부를 번역했다.카드로 정리하고, 드립치고, 간편하게 소비하고 버릴 수 있게 만드 것이 뉴미디어 저널리즘이라고 주장하는 세태를 바라보며 근심하던 참에 이런 글을 발견해 반가웠다. 나 역시 늘 주장했던 이야기지만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이었던 이준석 씨도 페이스북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미쿡 사람이 영어로 쓴 글이니 내 이야기보다는 더 진지하게 읽어줄 것 같아 부족한 솜씨지만 핵심 대목을 한국어로 옮겼다. 의역과 오역의 난무는 혜량해주시길. 영어 원문은 아래 링크 참조.

“Death of Snackable Content”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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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클릭미끼(clickbait)’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에 대한 정보든 누구나 찾을 수 있고, 관심 분야가 아무리 협소(niche)하더라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할 수 있는 장소를 인터넷이 만들어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수에 빠져 있는가? 스스로를 문자성애자(logophiliac)라고 생각하나? 필록싱(piloxing: 유산소 운동의 일종)에 열광하고 있나? [인터넷에는] 각각의 관심사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누군가의 특별한 관심사를 충족시키는 일이 이보다 더 쉬웠던 적은 없었다.

수제맥주(craft-beer) 운동만 살펴봐도 그렇다. 맥주제조 협회에 따르면 맥주를 직접 만드는 술집이나, 지역(local) 양조장 또는 소규모 양조장의 수는 2008년 1,521곳에서 2014년 3,200곳 이상으로 늘어났다.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서 벌어진 일은 또 어떤가? 블루 보틀 커피(Blue Bottle Coffee)는 최근 다른 시장으로 확장하기 위해 막대한 액수인 7천만 달러를 모았다. ‘주문받아 내리는 커피(brewed-to-order coffee)에 대한 거의 컬트적 열광 덕분이다. (그리고 블루 보틀이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소규모 자영업자가 생산한 제품에 대해 전국적 관심을 만들어냄으로써 인터넷은 혜성같은 인기를 일으킨다. 인터넷은 또 수제맥주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소비하는 상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해주고, 그래서 아마추어 양조업자나 커피 로스터/메이커가 기술을 더 열심히 집에서 연마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음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Etsy는 인터넷이 협소한 관심사 그룹(niche interest groups)을 부상시키고 있는 방식을 설명하는 또 다른 증거다. [Etsy에서는] 웨어러블 식물(Wearable Plants)부터 치료용 크리스탈까지 모든 것을 만들 수 있고, 살 수 있고, 팔 수 있고 또 그런 물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 Etsy의 최근 IPO를 보면 이런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핀터레스트 역시 DIY 애호가나, 글루텐-프리 또는 채식 팔레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자원을 제공한다. 블로그(blog sphere)는 폰트나 미니멀리즘 가구 또는 재테크에 대한 전문가들로 가득 차 있다. 유튜브는 ASMR팬이나 패션 아이템을 소개하는 사람들(fashion hauler)이 제작한 비디오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들의 견고한 근거지다. 이제 어떤 ‘협소한 관심사(niche)’도 탐구하기에 너무 협소하지 않다.

‘협소한 관심사가 주류로 부상하는 패턴(The pattern of niche-to-mainstream)’은 우리가 구입하는 물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TED는 원래 학술 연구자들이 신경과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교육 전문가들이 학교가 창의성을 제약하는 방식에 대한 견해를 공유하고, 사회학자들이 인구 성장의 이면에 있는 핵심적인 숫자들에 대해 탐구하는, 정책충(wonk)과 과학오타쿠들(nerd)을 위한 특별한 컨퍼런스로 시작했다. 이 모든 주제들은 오늘날의 산만한 소비자에게는 너무 지루하거나 너무 깊이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ED 비디오는 수천만 그리고 또 수천만의 조회수를 끌어모았다.

활력넘치는 하위문화(subcultures)는 온라인 또 오프라인에서 분명히 중요한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커뮤티니의 구성원들은 의미 있고, 사려 깊고 그리고 뭔가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는 콘텐츠를 갈망하고 있다. 그들은 깊숙하게 들어가고, 이미 세련된 그들의 지식에 뭔가를 더해주는 콘텐츠에 굶주려 있다. 열정적 사람들에게 “스낵 콘텐츠(snackable content)”는 충분한 것이 아니다.

취미를 가져라(Get a hobby!)
독자로서 우리는 피상적 기사들이 매력을 잃기 전까지는 그런 것들을 클릭할 수밖에 없다. 좋은 콘텐츠인척 하는 쓰레기들이 엄청나게 많고, 독자들은 껍질과 알맹이를 구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더 나아가, 엄청나게 여러 분야에 걸친 주제들을 계속 클릭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다. 주의력 결핍 장애(ADD) 같은 정신상태는 지속가능하지 않고 만족스럽지도 않다.

밀레니엄 세대(Millennials)가 이런 변화를 이끌고 있다, 왜냐하면 이 세대는 개성(individuality), 열정(passion) 그리고 창조성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배우는 것과 취미는 이들에게 중요하다. 그리고 이들은 의미있다고 느끼는 활동을 찾고 있다. 관심사(그리고 그런 관심사에 대한 지식)는, 이들이 소비하는 물건들이 그렇듯, [이 세대 구성윈들]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다. 그것이 저작권 침해 행위(piracy)에 대한 뉴스 기사이든 아니면 단일 품종에서 추출한 핸드 드립 커피(single-origin pour-over coffee) 한잔에 대한 것이든 말이다.

길고 특별한 콘텐츠에 대한 늘어나는 수요는 출판 사업의 미래를 형성할 것이다.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에 대한 한 기사는 방문자수(unique visitors) 3천1백만, 페이지뷰 8천7백만을 기록한 긴 형태의 블로그인 Wait But Why에 주목한다. 이 블로그는 평균 2천자가 넘는 기사 80개를 통해 이 숫자를 달성했다.

“누군가를 매혹시킬 수 있다면 – 다시 말하지만 정말 잘 쓴 글로 정말로 진정으로 매혹시킬 수 있다면 – 그건 그들이 공유하길 원하는 뭔가가 됩니다.” Wait But Why의 창업자인 앤드류 핀이 말했다.

출판업계는 특정한 주제에 대한 강력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런 독자를 관련산업과 연결시키는 것이 대중을 겨냥한 대량 생산 콘텐츠보다 훨씬 더 가치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독자들은 더 좋은 콘텐츠를 통해 이득을 얻는다 그리고 출판업자들은 훨씬 효과적인 수익화 기회를 통해 이득을 얻게 된다. 눈알굴리기(eyeball)가 아니라 참여(engagement)가 근본적인 추동력이 될 것이다.

물론 “당신보다 인간적인 고양이 27마리” 같은 기사들은 언제나 그자리에 존재할 것이다. 왜냐하면 불량식품이 필요할 때가 누구에게나 이따금씩 있는 법이니까.

스낵저널리즘이 콘텐츠 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