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탄핵과 주주총회

법관 탄핵과 관련한 오해가 너무나 많다. 헌법과 삼권분립 같은 거대한 개념이 논의되고 견책, 소추, 각하 같은 법률 용어가 난무하니 왠지 복잡하고 어려운 일처럼 보이기 때문일까?

그러다보니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상황을 편의적으로 왜곡한 뒤 정파적 공세의 재료로 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정치인들 뿐 아니라 특정 정치세력의 응원단장을 자처하는 이른바 ‘언론인’들도 혹세무민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요하지만 복잡한 일을 편의적으로 단순화시킨 다음 선과 악의 구도로 나눠서 정치적 게임의 재료로 활용하는 것이 이들의 특기니까 말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혼란과 선동을 보는 것이 지겨워서 이번 사태의 맥락과 본질을 비유를 통해서 설명해보려고 한다. 요즘 적지 않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가 주식투자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법관 탄핵 사태를 주식회사와 주주총회에 비유해서 설명해보려고 한다. 물론 완벽한 비유는 아니다. 그래도 법관 탄핵이 진행된 맥락을 전부 생략하고 특정 부분만 강조해서 정치 게임의 재료로 활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설명을 마친 뒤에는 몇 가지 질문도 던져보겠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시작해보겠다.


어떤 주식회사에 A라는 임원이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임원 A가 회사와 주주의 이익에 중대한 손해를 끼치는 일을 저지른 사실이 발각됐다.

그런데 (당연히 지배주주 세력이 임명한) 대표이사 B는 임원 A의 배임 행위에 대해 사규에 따라 감사위원회를 열어 논의한 끝에 “중징계를 하지 않고 ‘구두경고’ 정도로 마무리했다.”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일부 소수 주주가 임원 A의 행동은 중대한 배임 행위이며, 대표이사 B가 임원 A에 대해 구두경고로 마무리한 것 역시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주주총회를 소집해 임원 A를 해임 또는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배주주(세력)는 이 같은 주장을 2년 이상 무시해왔다. 임원 A는 ‘구두경고’를 받은 이후에도 2년 넘게 임원으로서의 직무를 계속 수행했다.

시간이 흘러서 임원 A가 임기만료로 퇴직할 때가 됐다. 그런데 그때쯤 해당 회사는 전체 주주나 법인의 이익에 손해를 끼친다고 보기 어렵지만 지배주주(세력)이 못마땅하게 느낄만한 몇 가지 일을 벌였다. 그러자 2년 동안 임원 A가 이사회에서 활동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던 지배주주(세력)가 갑자기 임원 A의 해임을 안건으로 하는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결의했다.

문제는 임시주총 예정일에는 이미 임원 A가 임기만료로 퇴직할 상태가 된다는 점이었다. 2년 동안 지켜보다가 임원 A가 퇴직한 다음에야 열릴 주주총회를 소집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혹시 최근 회사가 벌인 몇 가지 사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를 근거로 주총을 열거나 누군가를 해임할 수 없으니, 대신 경고 사인을 주기 위해 실익도 없는 임시 주주총회를 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에 대해 지배주주(세력)는 ‘임원 A의 배임 행위가 너무나 중대하여 주주총회를 열어 해임하려는 것 뿐이고, 다른 의도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상의 이야기에서 누가 비난받아야 할까?

중대한 배임 행위를 저지른 임원 A가 비난받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대한 배임 행위를 ‘구두경고’로 마무리한 대표이사의 행동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리고 해당 임원이 회사일을 하도록 2년 넘게 방치해놓았다가 갑작스럽게 그것도 실질적으로는 효과가 전혀 없어 보이는 시점에 임시 주총을 열어서 해당 임원의 해임 안건을 다루겠다는 지배주주(세력)의 의도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한가지 첨언하자면 그렇다고 임원 A의 행동이 배임이 아니며 이에 대해 책임을 묻자는 주장 자체가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평가해야할지도 생각해볼 문제일 것이다.)

이 회사에서 벌어진 일이 최근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의 탄핵을 놓고 불거진 논란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임성근 부장판사의 부당한 재판개입 행위는 한참 전에 드러났다. 이것이 부당한 행위라는 점에 대해서도 이론이 없었다. 그런데 2018년 10월에 김명수 대법원장 측은 임 부장판사에게 ‘견책'(구두경고)만 하고 징계 절차를 마무리지었다.

시민단체와 일부 국회의원들이 대법원의 솜방방이 징계를 비판하면서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재의 탄핵심판을 통해 임성근 부장판사를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2018년 시점에도 여당이자 국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가진 정당이었고, 특히 2020년 4월 이후부터는 300석 중 180석 가량을 석권한 압도적인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탄핵소추 논의를 사실상 방치했다. 이 2년이라는 시간동안 임성근 부장판사는 법관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했다.

그러다가 2020년 말과 2021년 초에 걸쳐서 여당의 핵심 지지층이 몇 몇 사건과 관련한 법원의 판결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각종 당내 경선에서 압도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여당 핵심 지지층 사이에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 통제’, ‘사법개혁’이 핵심 이슈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2년 넘은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법관 탄핵 소추 이슈를 여당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고 결국 당론으로 채택했다.

문제는 여당이 이를 적극 추진하기 시작한 시점에 임성근 부장판사는 임기만료로 인한 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탄핵소추 안이 가결되어, 헌재의 탄핵심판 절차가 시작되더라도 탄핵심판 결과가 임성근 부장판사의 퇴직일인 2021년 2월 28일 이전에 선고될 수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여당은 탄핵소추를 2021년 2월 4일에 국회에서 의결했지만 임 부장판사가 임기만료로 퇴직하는 2월 28일 이전에 탄핵심판 결과가 선고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이론의 여지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퇴직한 공무원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탄핵소추)는 각하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다수설이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이 이와 같은 법관탄핵 논의 진행 과정은 예로 들었던 주식회사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주식회사와 관련해 던졌던 질문들을 다시 한번 제기해보자.

재판개입 행위를 저지른 임성근 부장판사가 비난받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재판개입과 같은 반헌법적 행위에 대해 ‘구두경고(견책)’로 마무리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행동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리고 임성근 부장판사가 법관으로서 근무하도록 2년 넘게 방치해놓았다가 갑작스럽게 그것도 실질적으로는 효과가 없어 보이는 시점에 탄핵심판 절차를 개시해 임성근 부장판사의 파면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여당인 민주당의 의도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정치적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해서 부당한 행위를 지적하는 행위 자체를 ‘삼권분립 위배’라고 무리하게 공격하는 야당의 행위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도 생각해볼 문제일 것이다.)

이 글에서 질문에 대한 답안을 제시할 생각은 없다. 복잡한 논의를 선과 악의 문제로 단순화시킨 뒤 각자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재료로 활용하는 모습이 너무나 짜증이 나서, 사안의 맥락과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글을 써봤을 뿐이다. 이 글에서는 판단을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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