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은 왜 사과했을까 – 명예훼손 혐의 관련성 분석

[요약]

  • 유시민이 사과문을 발표한 진짜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법률적 검토의 정황도 보임.
  • 2019년 12월 첫 발언보다 2020년 7월에 “한동훈”을 특정해 발언한 것이 문제가 될 가능이 큼. 명예훼손의 대상을 개인으로 사실상 특정했고, 한동훈에 대한 수사심의위가 열리는 날에 발언했다는 점에서 ‘고의’가 인정될 가능성도 큼
  • 사과문에서 여러 사과 대상을 직접 언급하면서도 “한동훈”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한동훈 특정 여부’가 명예훼손 혐의 성립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수 있음.
  • 유시민으로서는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이 역시 2021년 1월 1일 이후에는 불가능. 사과문을 2021년 1월에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일 가능성이 있음.
  • 유시민 이사장 발언 관련해서는 서울서부지검이 수사 중. 한동훈의 처벌 불원 의사 여부, 사과문 발표의 영향 등이 주목됨.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사과했다. 노무현재단이 운영하는 유튜브방송 ‘알릴레오’와 MBC 라디오 프로그램 등을 통해 ‘검찰이 뒷조사를 위해서 노무현재단 계좌의 금융거래 정보를 열람했다.’라는 취지로 주장한 것에 대해 지난 22일 사과문을 발표했다. 유시민 이사장은 사과문을 통해 지난해 4월 정치비평을 그만두었고, 앞으로도 일절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유시민 이사장이 사과를 한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일각에서 평가하는 것처럼 자신의 오류를 인정할 줄 아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대선 후보로 나서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유시민 이사장이 고발되어 있는 명예훼손 사건에 대한 대응의 관점에서도 분석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되어 있는 피의자의 입장에서 볼 때, 유 이사장의 사과문은 일정 수준의 법률적 검토를 거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과문의 표현, 사과의 대상, 사과문 발표의 시점 등을 따져보면 유 이사장의 사과문은 법률적 관점에서 일정한 대응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사과문에 담긴 표현과 사과의 대상에 대해서 살펴보자. 유시민 이사장의 사과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2019년 12월 24일, 저는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에서 검찰이 2019년 11월 말 또는 12월 초 사이 어느 시점에 재단 계좌의 금융거래 정보를 열람하였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2021년 1월 22일 발표한 사과문

유 이사장은 자신이 2019년 12월 24일에 한 행위를 “의혹을 제기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어떤 분들은 이날 방송에서 유 이사장은 단정적으로 사실에 대해 단정적으로 발언했지, 의혹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 이사장이 사과문에서도 교묘하게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분석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유시민 이사장이 2019년 12월 24일 방송에서 발언한 것 중에는 ‘단정적으로 사실에 대해 발언한 대목’과 ‘의혹을 제기한 대목’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당시 유 이사장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느 경로로 확인했는지 지금으로서는 일부러 밝히지 않겠지만 노무현재단의 주거래은행 계좌를 검찰이 들여다본 사실을 확인했다” (사실에 대한 단정적 발언)

“(검찰이) 제 개인 계좌, 제 처 계좌도 들여다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실과 관련된 의혹 제기)

“검찰이 재단을 어떻게 하려고 계좌를 들여다본 게 아니라 알릴레오 때문에 내 뒷조사를 한 게 아닌가 싶다” (사실과 관련된 의혹 제기)

물론 이런 발언을 접한 시청자는 유시민이 의혹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대해서 단정적으로 말했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재단의 주거래은행 계좌를 검찰이 들여다 본 사실”을 “확인”했다고 먼저 말한 뒤, 이 목적이 “알렐레오 때문에 내 뒷조사를 한 게 아닌가 싶다.”라고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률을 보수적으로 적용한다면 앞의 발언은 사실에 대한 단정적 발언인 반면, 뒤의 발언들은 ‘검찰이 뒷조사를 했다’라는 사실에 대한 의혹 제기로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의혹 제기라고 해서 명예훼손의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검찰이 유시민과 전혀 무관하게, 전혀 다른 사건과 관련해 ‘노무현재단의 주거래은행 계좌를 들여다 본 사실’이 있다면 앞에 인용한 유시민의 첫 번째 발언은 허위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설사 검찰이 노무현재단의 주거래은행 계좌를 추적한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유시민에 대한 뒷조사와 무관한 행위였다는 점이 명백하다면, ‘제 개인 계좌도 들여다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라거나 ‘알렐레오 때문에 내 뒷조사를 한 게 아닌가 싶다’는 “의혹 제기”는 유시민의 말대로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할 수 있다.

문제는 사실에 대한 단정적 표현 뿐만 아니라 객관적 사실과 관련된 무책임한 의혹 제기 역시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된다는 점이다. 즉, 유시민이 ‘사실에 대한 단정적 표현’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의혹제기’에 대해서 사과했다고 해서 법률적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유시민 이사장의 2019년 12월 24일 발언은 그럼에도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보인다. 당시 유시민 이사장이 ‘뒷조사’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주체를 특정 개인이 아니라 검찰이라는 공적 기관으로 적시했기 때문이다.

광우병과 관련해 상당 부분 허위로 드러난 방송을 한 PD수첩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 판례에서도 보듯이 공적인 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집합명칭에 의한 명예훼손이 인정되기도 하지만, “검찰”이라는 주어는 집합명칭에 의한 명예훼손이 인정되기에도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따라서 2019년 12월 24일의 유시민의 발언은 허위 사실과 관련된 ‘단정적 표현’이든 ‘의혹 제기’이든 명예훼손의 법리로 처벌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유시민은 ‘노무현재단 주거래은행 계좌 관련 뒷조사설’을 한 차례만 주장한 것이 아니다. 명예훼손 혐의의 관점에서 오히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2020년 7월 24일에 MBC 라디오에 출연해 한 발언이다. 이날 발언은 명예훼손의 대상을 ‘한동훈’ 개인으로 사실상 특정했을 뿐 아니라, 고의(성)가 있다는 정황 역시 뚜렷하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말 12월 초순쯤. 그 당시 한동훈 검사가 있던 (대검) 반부패강력부 쪽에서 (노무현재단 계좌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2020년 7월 24일 MBC 라디오에서 유시민 이사장 발언)

앞서 말했듯이 2019년 12월 24일 첫 발언의 표현이 단정적이었는지, 아니면 의혹 제기의 형식이었는지는 명예훼손의 관점에서 봤을 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당시에는 대상자를 형법상 명예훼손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검찰’이라는 공공기관으로 특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0년 7월 24일의 발언은 다르다. ‘뒷조사용 계좌 추적’의 당사자를 “한동훈 검사”라는 개인으로 사실상 특정했던 것이다. 이 경우 명예훼손이 성립될 가능성이 있다.

“한동훈 검사” 역시 고위공무원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위공무원이 부당한 목적으로 권한을 남용했다는 취지의 허위사실을 공공연하게 발언했다면 명예훼손이 성립될 가능성이 크다. 조국 민정수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과 관련해 담당 재판장을 만났다는 허위 사실을 유튜브에서 이야기한 우종창 전 월간조선 편집위원 역시 2심까지 유죄를 선고받았다. 마찬가지 이유로 한동훈이 고위직 검사라는 사실만으로는 허위 발언에 대해 형사적 책임이 면제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유시민 이사장이 왜 “사과문”에서 사과 대상으로 “검찰의 모든 관계자”, “노무현재단의 후원회원 여러분”, “‘알릴레오’ 방송과 언론 보도를 통해 제가 제기한 의혹을 접하셨던 시민 여러분”을 하나 하나 언급하면서도 정작 “한동훈”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자신이 발언을 통해 “한동훈”을 특정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경우 명예훼손 혐의 수사와 관련해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동훈 검사장

(‘한동훈 검사가 있던 반부패강력부’를 대상으로 특정했기 때문에, 한동훈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아니라 공공기관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상식선에서도 받아들여지기 힘든 주장이기 때문이다. 굳이 하나만 말하면 계좌추적이 있었다고 유시민 이사장이 주장한 2019년에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을 맡았던 인물이 2명인데, 그 중 ‘한동훈’을 언급했다는 것은 ‘한동훈’을 사실상 특정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게다가 발언의 시점을 살펴보면 형사적 범죄의 구성요건 중 하나인 ‘고의’가 성립될 가능성도 크다. 유시민 이사장이 MBC 라디오에서 “한동훈 검사”를 사실상 특정해 발언했던 2020년 7월 24일은 한동훈 검사장이 채널A 기자 강요 미수 사건과 관련해 수사심의위원회에 출석하는 날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수사팀은 한동훈 검사장에 대해 이미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강요 미수 혐의에 대한 공범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영장 청구 여부와 기소 여부에 대해 심의하기 위해 위원회가 열렸다.

일반인과 법조인들로 구성된 수사심위원들이 한동훈에게 불리한 결론을 내리면 한동훈 검사장에 대해서 검찰은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상황이었다. 이런 날 아침, 수사심의원회가 열리기 직전에 유시민 이사장은 지상파 방송이자 한동훈과 이동재의 공모 의혹을 제기했던 언론사인 MBC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난해 주장했던 ‘노무현재단 주거래은행 계좌 정보 열람’의 주체가 “한동훈 검사가 있던 (대검) 반부패강력부 쪽에서 봤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발언한 것이다. 한동훈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고의’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정황으로 해석된다.

이와 같이 2020년 7월 발언의 경우 유시민 이사장이 “한동훈”이라는 당사자를 사실상 특정한 것이고, 명예훼손의 ‘고의’도 뚜렷해 보인다고 분석된다면, 유시민 이사장의 발언이 사실이 아니었을 경우 명예훼손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한 가지밖에 남지 않는다. 바로 ‘한동훈 측이 노무현재단 주거래은행 계좌 정보를 열람한 것으로 판단된다.’라는 허위사실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처벌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유시민은 왜 이 시점에 사과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과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형법 310조는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동훈은 공인으로 볼 수 있으니 유시민의 ‘의혹 제기’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 문제는 유시민의 발언은 “진실한 사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진실한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허위사실을 진실로 착각(오인)하고 공익을 위하여 적시한 경우 명예훼손으로 처벌되지 않는다. 유시민의 경우에는 “한동훈”이 계좌추적을 지시한 주체라고 말한 것이 진실이라고 착각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면 처벌되지 않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에는 “행위자가 진실한 것으로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라고 규정돼 있다.

유시민 이사장이 사과문을 발표한 시점이 2021년 1월이라는 것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만약 유시민 이사장의 말대로 2019년에 유시민과 관련된 계좌추적이 있었다면 늦어도 2020년 12월 말까지는 계좌추적 대상자에게 계좌추적 사실이 통지되어야 한다. 검찰이 유시민과 관련해 노무현재단 주거래은행의 금융거래 정보를 열람한 사실이 없다면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유시민으로서는 아무리 늦어도 2020년 12월 말까지는 자신의 “의혹 제기”가 허위사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2020년 12월 31일 이후, 그러니까 2021년 1월 1일부터는 ‘한동훈 측이 유시민 뒷조사를 위해 노무현재단 주거래은행 계좌 정보를 열람한 것으로 판단된다.’라는 취지의 자신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다는 것을 유시민 이사장이 너무나 명백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때문에 만약 2021년 1월 초 이후에도 ‘뒷조사용 계좌추적 의혹 제기’를 밀고 나갔다면 유시민은 명예훼손 혐의 성립과 관련해 더욱 불리한 처지에 처하게 된다. 적어도 2021년 1월 초 이후에는 이 같은 의혹 제기가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글 도입부에서도 말했듯이 유시민 이사장이 2021년 1월이라는 시점에 사과문을 발표한 것이 이 때문이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법률적 검토를 거쳐, 명예훼손 사건과 관련한 대응이라는 차원에서 작성한 사과문이라면, 2021년 1월에 사과문을 발표한 이유는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라는 명예훼손의 위법성 조각(제거) 요건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진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보다는 사과문을 발표한 유시민이 낫다는 평가도 가능할 수 있다. 유시민 이사장이 스스로 말했듯이 순수하게 “많이 부끄러”웠기 때문에 사과문을 발표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명예훼손 사건으로 고발돼 서울서부지검에서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유시민 이사장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 사과문에는 상당한 법률적 고려가 담겨 있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법률적인 포인트를 한 가지 더 검토할 수 있다. 유시민 이사장의 혐의인 명예훼손은 친고죄가 아니고 반의사불벌죄다. 당사자 본인이 고소하지 않아도, 제3자의 고발로 수사가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서울서부지검이 그래서 유시민 이사장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히면 검찰이 기소할 수 없다. (반의사불벌죄) 한동훈 검사장은 유시민 이사장의 사과문과 관련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과연 유시민 이사장의 행위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검찰이 판단할지, 명예훼손이 성립된다고 검찰이 판단한다면 한동훈 검사장이 처벌 불원 의사를 밝힐지, 유시민 이사장의 사과문 발표가 결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앞으로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