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은 사면을 받을 수 있을까?

– 올림픽, 백신 그리고 박근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8일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자마자, 이재용 부회장이 선고 공판 이후 나라를 위해서 코로나19 백신을 구하는 일에 적극 나설 예정이었다는 이야기가 몇 몇 언론사를 통해 적극 보도되고 있다.

사실관계만 맞다면 언론사가 이런 보도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보도에서 드러나는 이재용 또는 삼성의 본심이다. 단기적으로는 보석 신청, 장기적으로는 사면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 추정에 속할 것이다.

‘국익을 위해 뛰는 삼성’이라는 역할 또는 이미지는 삼성 그룹 총수의 형사 재판 결과와 관련해 이미 활용된 전례가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아버지인 故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2009년 8월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지 4달 만인 12월에 이명박 정부에서 ‘원포인트 사면’을 받았다. ‘이건희 전 회장 개인으로서는 두 번째 사면이었다.

이는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노력하라.’는 대통령의 특별 지시 때문이었다.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 결정을 발표하면서 “이건희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현재 정지중인 위원 자격을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범국민적 염원인 2018년 겨울올림픽의 평창 유치를 위한 보다 나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도 앞으로 비슷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있다. ‘백신 구하기 미션’을 받았다는 일련의 소식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전국민적 관심사인 코로나19 백신 구하기에 성공한다면, 단기적으로는 대법원 재상고심을 통해 징역형이 공식적으로 확정되기 이전까지 법원이 보석을 허가해줄 가능성이 크고, 장기적으로는 대법원 재상고심을 거쳐 형이 확정된 이후 현 정부 임기 막바지에 사면을 받을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다는 계산이 있을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는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국익을 위하는 마음으로 백신을 구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이재용 부회장이 백신 공급과 같은 중요한 국가적 대사에 이바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보석 심사 등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설사 이재용 부회장은 그런 계산을 하지 않을지라도, 이 부회장을 보좌하는 참모진, 특히 집행유예 가능성이 크다고 잘못 보고했던 참모진은 반드시 그런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사면이다. 보석 허가 여부에 대한 판단은 법원의 권한이고, 다른 피고인의 경우에도 경우에 따라 허가하는 경우도 있으니 특혜 시비가 상대적으로 덜 할 수는 있다.하지만 사면은 차원이 다르다. 헌법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보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면권 행사 자체가 사법부의 재판권 그리고 삼권분립의 원리를 상당 부분 침해할 수 있는 비상한 행위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부패사범에 대한 사면권 행사는 없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공언하기도 했다.

앞으로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의 보석 허가 그리고 사면 명분을 쌓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관심 가지고 지켜볼 만한 포인트다. 만약 일각에서 전망하는 것처럼 도쿄 올림픽이 코로나19 때문에 결국 취소된다면, 일본 대신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유치하는 것에 기여하겠다고 삼성이 적극 나서는 방안 등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남북 공동 올림픽 유치 같은 그림을 그린다면 현 정부 일각에서는 더욱 좋아할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에 따라 어떤 아이디어가 채택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뜻과 관계 없이, 삼성의 참모진등은 보석과 사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결정이 될 것이다. 특히 최근 한 차례 논란이 되었다가 가라앉은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이 다시 불거진다면, 돈을 요구해서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하는데, 돈을 요구받아 낸 이재용 부회장을 사면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과 이재용 부회장 사면을 앞으로 세트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으로는 개헌이 된다면 대통령의 사면권 자체를 없애거나, 적어도 국회나 대법원-헌재 등의 제청을 받아서 사면하는 형식으로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헌법 체제 하에서도 사면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공언했듯이 매우 제한적으로 행사되어야 마땅하다.

이미 사면권 행사와 관련해 공언했던 약속을 파기했다는 비판을 받은 문재인 정부지만, 임기 말에 아마도 어떤 방식으로든 제기될 가능성이 큰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면 논란은 새로운 차원의 문제가 될 것이다. 훗날의 역사가들이 문재인 정부의 성격을 평가할 때 눈여겨 볼 만한 포인트가 될 정도로 중대한 문제가 될 것이다. 역사에 기록될 일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직업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앞으로도 눈을 크게 뜨고 관찰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