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와 한동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의 원리를 언급할 때가 많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고 있는 검찰과 영장심사권과 재판권을 가지고 있는 법원이라는 권력 기관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검찰의 간섭을 받지 않는 공수처라는 독립적 기관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입법부-행정부-사법부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공수처라는 기관은 누가 통제하는지, 다시 말해 공수처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어도 다시 ‘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꺼내든다. 공수처 구성원이 검찰이나 경찰에 의해 수사받을 수 있으므로 공수처와 검찰-경찰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서 통제가 이뤄진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수처 구성원이 검찰이나 경찰에 의해 형사적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민주적 통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민주적 통제는 선출된 인물 또는 선출된 인물이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권한을 위임한 인물이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을 통제하는 것을 뜻한다. 만약 검찰이나 경찰에 의해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고 주장한다면, 기획재정부나 국토교통부도 검찰이나 경찰과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민주적 통제를 받는 셈이 된다. 기재부나 국토부 공무원도 수사를 받을 수 있고 실제로 권한 행사와 관련해 수사를 받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것만 놓고 봐도 공수처 구성원에 대해 검찰이나 경찰이 ‘견제와 균형’ 기능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민주적 통제가 이뤄진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공수처는 현재의 검찰의 직접 수사 조직의 핵심 기능을 대부분 수행하게 되는 또 다른 검찰청이라는 것이 보다 정확한 규정이다. 공수처는 검사와 판사에 대해서는 현재의 검찰과 마찬가지로 수사권, 영장청구권, 기소권을 모두 가진다. 심지어 검찰이나 경찰이 고위 공무원 관련 수사에 착수할 경우 공수처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공수처에서 요구할 경우 사건을 의무적으로 이첩하도록 하는 조항을 통해 사실상 독점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 검사와 판사가 아닌 다른 고위공무원을 수사할 때도 기소권은 없지만 영장청구권이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독점적 수사권을 가진다.

한마디로 현재의 검찰 반부패부를 떼어내어서 별도의 조직으로 만든 다음, 대통령과 여당이 원하는 대로 수장을 임명하고, 처음 공수처를 구성한 대통령이 임명한 수장이 원하는대로 20여명의 검사를 뽑을 수 있으며, 행정 부처에 의한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고 고위공직자에 대한 독점적인 수사권을 행사하는 기관이 공수처다. 공수처에 대해 ‘무소불위’라든가 ‘대통령의 친위대’라고 부르는 것을 과도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검찰 반부패부 등과 비교해봐도 권한 분산과 민주적 통제라는 점에서 후퇴한 조직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론적 설명만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 금태섭 전 의원이 만든 질문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변형시켜서 제시해보겠다.

“만약 내년에 정권이 바뀌고 한동훈 검사장이 공수처장이 되면 감당할 수 있겠나?”

아시다시피 한동훈은 주어진 권한을 최대치로 행사하는 방식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속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기소한 검사다. 야당의 비토권을 없애버린 현행 공수처법 덕분에 다음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한동훈을 공수처장으로 임명할 수 있다. 지금 공수처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역시 새로운 대통령이 임명할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이 ‘한동훈 공수처장’을 견제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건가?

이렇게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해보겠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1~2위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어서 한동훈을 공수처장으로 임명하면, 역시 윤석열이 임명할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이 한동훈 공수처장을 견제할 수 있을 것 같나?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 윤석열과 한동훈을 어떻게든 현 정부가 구성한 공수처를 동원해 처벌해야 한다는 속내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공수처 1호 사건은 윤석열’이라는 구호가 혹시 이런 내심의 반영은 아닌지 궁금하다. 공수처가 오랫동안 기능해야 할 중요한 기관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정파적 조직이란 오해를 피하고 출범 초기에 최소한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도 현 정권과 갈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야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로도 꼽히는 인물을 ‘1호 목표’로 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도 ‘공수처 1호 사건은 윤석열’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아야 할까?

물론 지금의 집권세력이 20년 이상 집권을 이어갈 것이고, 문재인 정부에서 구성한 공수처는 ‘적폐의 세월’에 형성된 검찰 조직과 달리 ‘선량한 이들로 구성된 검찰청’이 되어서 ‘민주개혁 정부 20년’을 함께 해 나갈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윤석열 토벌’ 역시 우리 사회의 주류가 정의로운 세력으로 완전히 교체되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상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사와 기소, 특히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담당하는 기능은 선량하지 않은 권력을 전제로 두고 설계되어야 한다. 지금의 집권세력이 선량한지에 대한 논의를 차치하더라도, 선량하지 않은 세력 또는 우리 편이 아닌 세력이 집권했을 때도 형사사법체계는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공수처는 처음부터 잘못 설계된 조직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실현 가능성을 이제는 배제할 수 없게 된 ‘한동훈 공수처장’의 등장을 생각해보라.

그러니까 공수처는 ‘신주류’의 친위대나 호위무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낫겠다. 물론 요즘은 정말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은 것 같다.

  •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형사사법체계 개혁’ 뱡항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번에 쓰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