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에게 ‘검찰개혁’이란 무엇인가

2020년 12년 27일 추미애 장관 페이스북 글

요즘은 과연 제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기준이 정상적이었던 것인지 되묻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동부구치소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에 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행태를 보면서 다시 한번 제 상식을 점검하게 됐습니다.

법무부 장관이 관리 책임을 지는 공간인 동부구치소에서 대규모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수용자들은 격렬하게 저항 중이고, 교도관들도 불만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방역 전문가들도 구치소 측의 안이했던 태도를 질타하고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의 ‘윗사람’인 국무총리 역시 동부구치소의 집단 감염 사태에 대해 국민들께 송구하다는 말씀드린다고 공식 사과했습니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왔고, 특히 지난 15년 간은 공적인 이슈에 대한 전문적 관찰자로 일해온 저의 상식에 비춰볼 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면 법무부 장관이 사과를 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입니다. 청와대나 총리실은 법무부를 질타하고 관련 업무를 점검하며, 진보든 보수든 대부분의 언론은 법무부의 잘못된 대처와 법무부 장관의 행태에 대해 매서운 비판을 가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일부 비뚤어진 사람들은 범죄 혐의로 수감된 수용자들의 인권을 기자들이 지나치게 신경쓴다는 식으로 비아냥 거리기도 하는데, 동부구치소 수용자 대부분은 현재 남부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정경심 교수와 마찬가지로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입니다. 설사 기결수라고 해도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 역시 당연한 것이지만요.)

하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아직까지 사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페이스북에 연일 검찰개혁의 “그날”과 윤석열 징계 처분과 관련된 글을 올리면서, 법원의 “주장”을 비판하는 것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대규모 감염사태가 터진 지 며칠이 지난 어제(12월 29일) 비로소 동부구치소에 “긴급” 현장방문했다는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지만, 미흡한 대처로 대규모 집단 감염 사태를 일으킨 것에 대한 공식적 사과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청와대든 여당이든, 그리고 ‘진보’ 언론이든 추미애 장관을 비판하는 것에는 주춤하는 모습입니다. 그간의 상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저는 추미애 장관이 자신을 현 정부의 ‘검찰개혁’의 상징인 것처럼 포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부구치소 대규모 감염이 일어난 지금 계속해서 검찰개혁의 “그날”과 윤석열 관련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 정부에서 최고선(最高善)으로 자리잡은 ‘검찰개혁’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현 정부와 노선을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은 추미애 장관에게 손쉽게 비판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추 장관도 이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요.

문제는 ‘검찰개혁’이라는 그 자체로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이 특정인의 실책과 잘못을 가리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명분을 나쁜 의도로 활용하는 것이죠. 사실상 윤석열 총장을 겨냥한 법안을 내면서 판검사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라는 목적밖에 없는 것처럼 이야기했던 어떤 범여권 의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더 나쁜 것은 이런 과정에서 ‘추미애표 검찰개혁’이 성역화되어 버렸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의도가 나쁘고, 문제가 많은 내용이 있어도 현 정부와 방향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라면 쉽게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의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좋은 명분을 특정인이 나쁜 의도로 써먹는 가운데 좋은 명분과 관련된 정책의 구체적 내용까지도 망가져버린 이중의 악화가 일어난 셈입니다.

일전에 페이스북에 글을 써서 밝힌 적도 있지만 저는 ‘검찰개혁’은 반드시 진지하게 논의되고 합리적으로 설계되어야 하는 국가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 정부 초기 조국 전 민정수석이 설계하면서 방향이 잘못 설정된 이후,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기의 파탄까지 거치면서 ‘검찰개혁’은 적어도 현 정부 내에서는 합리적 방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아닌가 싶습니다. 수사 기소 분리와 사법경찰관으로 구성된 국가수사청 설립이라는 방향에 공감하지만, 엄청난 변화를 몰고올 수사구조 개혁(경찰 수사종결권 부여 등)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시행되기도 전에 다시 검찰 폐지 등 형사사법체계의 혁명적 변화를 시도하자는 최근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유로 의심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2020년 12월 29일 추미애 장관 페이스북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