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탄핵소추하라고 했잖아…근데 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제청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집행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처분에 대해 법원이 집행정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법무부가 주장하는 징계사유 중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재판부 성향 분석 문건 작성 행위는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보이지만 작성 경위 및 활용에 대한 추가 소명이 필요하고, 감찰 및 수사 방해 의혹은 다툼의 여지가 있어 역시 본안 소송에서 추가 설명을 들어봐야 하며, 나머지 징계 사유는 사실상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징계 절차의 하자가 매우 뚜렷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결정이 나오자 여당 의원들과 이른바 ‘핵심 지지층’ 사이에서는 법원이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며 비분강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행정부의 정당한 권한 행사를 “시험 점수 잘 받은 덕에” 임명된 몇 몇 판사들이 막아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행정법원은 원래 그런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국가 권력 행사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고, 부당하다고 판단될 경우에 이를 막으라고 만든 곳이 행정법원, 넓게 보면 사법부입니다. 정부의 권력행사가 정당한지 부당한지 판단하는 권한이 법원에 부여되어 있는 국가가 바로 ‘법치주의’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법원을 없애면 됩니다. (여권 핵심 지지층을 자처하는 분들이 요즘 하는 말들을 보니 행정소송법이나 행정법원 쯤은 없애거나 뜯어고치겠다고 나올 수도 있겠다 싶긴 합니다.)

그렇다면 검찰총장직은 절대 불가침의 영역일까요? 아닙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일은 국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당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벌어졌습니다. 검찰총장을 파면하기 위한 가장 정석적인 방법, 즉 탄핵소추를 회피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추미애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기 이전인 지난 11월 15일에 “[취재파일] 윤석열 파면, 국회는 왜 책임을 회피하는가?”라는 글을 썼습니다. 이 글에는 오늘의 사태를 예상한 대목도 있습니다. 이제 와서는 오히려 이른바 ‘여당 핵심 지지층’이 앞장서서 추진하자고 제안할 만한 내용도 있습니다. 몇 곳을 인용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총장은 무슨 짓을 저지르든 임기 2년을 채울 수 있는 불가침의 존재인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헌법과 검찰청법 조항에도 명시돼 있지만, 검찰총장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가 검찰총장을 탄핵소추할 수 있다. (형사재판에 비유하자면 검사가 죄명을 적용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는 절차와 같다.) 그리고 탄핵소추 사유가 정당하다고 판단한다면 헌법재판소가 검찰총장을 파면 결정할 수 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결정 때처럼 말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헌법과 법률을 지킬 책임이 있다. 검찰총장 임명권자라고 해도 법률이 명시적으로 탄핵이나 징계처분에 의하지 않고서는 파면이나 해임할 수 없도록 규정해놓은 검찰총장을 마음대로 물러나게 할 수는 없다. 법무부가 최근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감찰위원회 자문을 받지 않고도 검찰총장을 포함한 검사의 징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꾼 것, 특히 검사의 징계나 인사와 관련해 외부 인사의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기존의 방침에 역행하면서까지 갑자기 규정을 바꾼 것을 보니,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이후 원하는 대로 징계처분을 결정한 후 해임하겠다는 로드맵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외부 자문 절차까지 갑작스럽게 폐지해가면서 법무부가 징계권을 행사해 검찰총장을 해임하는 것은 검찰청법의 총장 임기 보장 조항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이란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검찰이 원전 폐쇄 절차와 관련해 현 정부 관계자들이 조직적으로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국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법무부 내부의 논란과 무관하게 검찰총장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다고 판단한다면 파면 절차인 탄핵소추에 착수할 의무가 있다. 이는 행정부와 무관한 국회의 권한이고 의무이다. 최종적인 파면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결정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절차이기도 하다. 그리고 탄핵이 결정되든 기각되든, 윤석열 총장의 정치적 존재감이 소멸하든 증폭되든, 그 결과에 대해서 탄핵소추를 추진한 사람들이 책임을 지면 되는 일이다. 이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중대한 위법을 저질렀다고 연일 주장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하게 합법적이고, 정상적이며, 책임 있는 방법이다.”

윤석열에 대한 징계청구 이전에 저는 법무부가 현재 상황에서 징계 절차를 통한 윤석열 해임 등을 추진한다면 정당성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으며, 윤석열이 검찰총장으로서의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여당으로서는 책임 윤리에 입각해 탄핵 절차를 통해 윤석열 파면을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여당 의원들이 입으로 이야기하는 윤석열의 잘못을 마음으로도 믿는다면…’이라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막상 탄핵소추를 하지 않은 것을 보니 그분들도 자신들이 하는 말을 마음으로는 믿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믿음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재판관 거의 전원을 임명한 헌법재판소에서도 받아들여지기 힘들 정도로 합리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으로는요.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여권은 책임윤리에 입각한 방법인 윤석열 탄핵소추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추미애 장관이 정당성이 의심스러운 여러 사유를 내세워 무리하게 ‘징계를 통한 윤석열 무력화‘를 추진하다가 법원에 의해 두 차례나 저지를 당했습니다. 이제는 정경심 교수에 대한 유죄 판결까지 묶어서 사법부와 판사를 공격하는 것 외에는 할 말이 별로 없어진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됐으니 여당 의원들이나 이른바 ‘여권 핵심 지지층’ 사이에서는 윤석열 탄핵소추를 추진하자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180석 가까운 의석을 가지고 있는 여당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헌법재판소는 법원보다 믿을 만하니 공을 헌재에 던져보자는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징계 청구 이전에 추진했으면 모를까 이제 와서 다시 몇 달에 걸친 탄핵소추와 탄핵재판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과의 전쟁을 이어가겠다면 대다수의 상식적 사람들 입에서 나올 말은 한 마디뿐일 것 같습니다. 제가 11월 15일에 썼던 취재파일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합니다.

“국민들이 이 난장판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