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이 법조브로커 기자를 공개하지 않으면…

** 이 글은 PD수첩 한학수 PD 페이스북에도 남겼습니다.

PD수첩은 지난해 12월 3일 [검찰기자단] 편을 방송하면서 검찰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구성한 출입기자단 제도가 검찰과 언론 사이의 부당한 거래의 온상이 되며, 검찰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검찰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해 검찰 시각에 입각한 보도를 하거나 검찰에 불리한 사실을 은폐하게 되는 구조적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검찰 담당 기자들이 조국 전 장관에 대한 다양한 의혹을 보도한 직후였습니다.

저는 검찰 중심적 보도의 문제점이 없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또한 출입기자단 체제의 문제점 역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PD수첩이 주장하는 것처럼 출입기자단 체제가 현상으로 일부 드러나고 있는 검찰 중심적 보도의 원인이라거나, 검찰 비리를 은폐하는 구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리하자면, 검찰 중심적 보도라는 문제점이 있고, 출입기자단 제도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가능하지만, 검찰 중심적 보도의 원인이 출입기자단 제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PD수첩은 문제와 원인의 관계를 잘못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문제는 엉뚱한 문제를 제기한 PD수첩이 잘못된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여러 건의 허위사실 또는 허위사실임이 명백해 보이는 주장을 방송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앞선 페이스북 글에서 간략히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자신이 시도하면 “3분의 2는” 기소를 불기소로 바꾸는 정도의 일도 가능하다고 말한 익명의 ‘검찰 출입기자’의 인터뷰를 방송한 것입니다. 

PD수첩 방송화면에 모습이 등장하지만 ‘블러’ 처리로 인해 정확한 얼굴이 나타나지 않는 이 성명불상의 법조기자는 심지어 “해보니까 간단한 건데 이게 버릇이 돼요. 나를 영입하는 사람들이 저한테 똑같은 역할을 요구하는 거예요.”라며 자신이 상습적으로 이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검찰 관련 정보를 폐쇄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출입기자단 소속 기자가 정보의 독점력 등 우월적 지위를 부당하게 활용해 ‘기소를 불기소로 바꾸는’ 불법 행위를 상습적으로 저질렀다는 내용으로서 출입기자단 제도가 기자들이 검찰과 부당한 거래를 하는 구조적 원인이라는 PD수첩 방송 내용의 핵심을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실제로 방송을 본 사람 중에는 이 인터뷰가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해당 기자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중대 범죄 행위에 대해 지상파 방송에서 자백했다는 점입니다. 

사건을 담당한 검사와 검찰청법상 구체적 사건에 대한 지휘권을 가진 검사들을 제외한 자가 사건 처리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변호사법 등을 위반한 불법 행위입니다. 기자는 “나를 영입하는 사람들이 요구”했다며 자신의 급여 등을 불법 행위에 대한 금전적 대가로 해석할 수 있음도 스스로 밝혔습니다. 상습범이라는 취지의 말도 했습니다. 이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징역형 선고를 피할 수 없습니다. 매우 전형적이고 악질적인 법조브로커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PD수첩이 해당 기자의 신원을 공개하거나 수사기관에 협조해야하는 의무가 발생합니다. 왜 그런지 정리해보겠습니다.

(1) 해당 기자의 발언은 허위일 가능성이 매우 크며, PD수첩은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검증 없이 방송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PD수첩 방송 내용에 대해 한 대형 로펌 변호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송에 나오는 그 기자분이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당장 100억 원쯤 주고 우리 회사로 영입해야 한다.”

왜 그럴까요? 언론 등이 비판하는 전관예우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특히 검찰 관련 전관예우의 핵심이 무엇일까요? 작게는 검찰 인맥을 활용해 수사 과정이나 구치소 수감 과정에서 검사의 재량권 범위에서 약간의 편의를 봐주는 것부터, 크게는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뒤바꾸는 것 정도에 해당할 것입니다. 여기에 ‘기소를 불기소로 바꾸는 것’은 그야말로 끝판왕에 해당합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전관 변호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수는 극히 제한적이며, 더구나 시도 중 “3분의 2″를 성공하는 전관 변호사는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형사 변호사 업계의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법조계 사정 등에 대해 약간의 취재만 해봐도 해당 기자의 인터뷰 내용은 사실일 가능성이 거의 없고, 일부 사실일 여지가 있더라도 터무니 없을 정도로 부풀려진 것이라는 사실을 매우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뻥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PD수첩이 해당 기자가 언급한 사건에 대한 검증 내용을 방송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드러납니다. 만약 “3분의 2″는 통한다고 해당 기자가 말한 것이 신빙성이 있다고 정말로 믿었다면, 검찰과 검찰을 취재하는 언론을 비판하는 일에 충실해 온 PD수첩이 이 사건들에 대해 추가로 방송에서 언급하지 않거나, 후속 방송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방송에서 언급되는 한 사건이 정말로 해당 기자가 언급대로 처리된 것인지 검증해본 내용도 방송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는 PD수첩 역시 최소한 해당 기자의 발언의 신빙성이 크지 않다고 보았거나, 사실이 아닐 거라고 인식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정황입니다.

따라서, PD수첩은 해당 기자의 발언이 허위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해당 기자의 신원을 공개해 발언의 진위를 적어도 다른 언론사들이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PD수첩이 허위일 가능성이 매우 큰 발언에 대해 얼마만큼 성실하게 검증의 의무를 다하고 내보냈는지에 대해서도 공개해야 할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허위일 가능성이 매우 큰 발언을 검찰 취재하는 기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핵심 사례로 제시한 제작진이 감당해야 할 그야말로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만약 PD수첩이 허위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방송했거나, 허위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검증 의무를 하지 않고 허위 주장을 그대로 방송한 것이라면 PD수첩 제작진은 이에 상응한 법적, 윤리적 책임을 져야할 것입니다. 이럴 경우 검찰 출입 기자들을 비난하기 위해 허위 주장을 검증 없이 방송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내부고발자라 하더라도 중대 범죄 행위를 은폐해서는 안 됩니다.

앞서 말했듯이 해당 기자가 PD수첩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중대한 범죄 사실에 대한 자백입니다. 인터뷰 내용이 사실이라면 해당 기자가 처벌을 면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혹자는 그럼에도 해당 기자가 검찰 출입 기자들의 비위를 폭로한 ‘내부고발자’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론사가 신원을 공개할 수는 없다라고 주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터뷰 과정에서 인터뷰 대상자가 중대 범죄 사실을 털어놓았을 경우 저널리스트가 이 사람이 처벌을 피할 수 있도록 사실을 은폐하거나, 이 사람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명백하게 저널리즘 윤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부고발자로서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신원을 대중에 비공개하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수사기관에 범죄 행위를 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n번방 사건 취재 과정에서 일부 n번방 가담자가 언론에 관련 사실을 털어놓으며 협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종의 내부고발자로 볼 수 있겠죠. 그렇다고해서 언론사가 이 사람의 범죄 사실을 수사기관이 알 수 없도록 신분을 끝까지 감추거나, 수사기관에 범죄를 알리지 않았다면, 이 언론사의 행위를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혹자는 과거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대니얼 엘스버그나 NSA의 무차별 도청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을 언론사들이 보호한 사례를 예로 들며 이 경우에도 해당 기자를 언론사가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는 경우가 완전히 다릅니다. 

엘스버그나 스노든의 행위는 공무상비밀누설죄 등에 해당하는 행위여지만, 폭로자와 언론사가 비밀누설 행위 자체가 정당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주장해 처벌에 반대한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PD수첩에 나온 기자의 ‘기소를 불기소로 바꾼’ 법조브로커 노릇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언론사는 이 사람을 보호해서는 안 됩니다.

정리하면 해당 기자가 진실된 사실을 말해 내부고발자로 해석될 수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언론사는 수사기관에 중대 범죄 행위를 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수사기관이 협조를 요청해올 경우 신원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은 밝혀야 합니다. 

물론 저는 해당 기자의 발언이 사실일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극히 일부가 사실일지라도 엄청나게 부풀려진 ‘뻥’이라고 보기 때문에, 해당 기자를 진실된 사실을 폭로한 내부고발자로 해석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위의 논의는 설사 내부고발자로서의 성격을 부여할 수 있는 상황이더라도 그렇다는 뜻일 뿐입니다.

(3) PD수첩이 스스로 책임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 시청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겠습니다.

결국 1) 해당 기자의 발언이 허위일 경우 PD수첩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인식했거나, 마땅한 검증 취재 없이 허위 주장을 방송했다는 책임을 져야 하며 2) 해당 기자의 발언이 허위가 아닐 경우 중대 범죄 행위를 자백받은 당사자로서 윤리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저는 PD수첩이 두 가지 경우 중 어느 하나라도 책임을 다하기를 여러 달 동안 기다려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조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조금 더 기다린 뒤 진실을 가리기 위해 법적 절차에 착수하는 일을 진지하게 검토할 생각입니다. 

PD수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다는 전제하에 방송한 해당 기자의 인터뷰 내용은 그 자체로 변호사법 등을 위반한 것입니다. 변호사법 위반은 친고죄가 아닙니다. 누구든 범죄 혐의가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면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PD수첩이 스스로 자신들의 방송은 사실은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전혀 없다고 자백하지 않는 이상, 시청자는 중대 범죄 행위를 자백한 ‘성명불상의’ 해당 기자에 대해 처벌을 요구할 당연한 권리가 있습니다.

한학수 PD님이 해당 기자의 신원 공개를 요구하는 저의 글에 댓글을 달면서 언급했듯이 저 역시 PD수첩의 시청자입니다. 납득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면 저는 시청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습니다.

** 혹시 해당 검찰출입기자의 인터뷰는 지나치게 과거의 일을 회상한 것으로서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이라는 식으로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소시효를 파악했다는 것은 해당 기자가 언급한 ‘기소를 불기소로 바꾼 사건’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 취재했다는 뜻이겠죠. PD수첩은 해당 사건들이 어떤 사건들이며, 어떻게 처리됐고, 이에 대해 PD수첩이 어떻게 취재했는지 밝혀야 합니다. 공소시효 도과 논리로 법적 책임을 피하려고 할지는 모르겠는데, 윤리적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