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이영렬을 생각한다: ‘조국 사태’와 기준의 일관성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우)

<보편적 기준>

윤리적 기준은 문화권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기준은 일관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받아들여 지는 보편적 기준입니다. 보편적 기준에 입각해 ‘이영렬 사건’과 ‘조국 사건’을 비교해봤습니다.

어제(2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조금 다듬고 보완해 출고한 [취재파일]입니다. 페이스북 외부 공유용 링크가 필요한 분은 아래 링크를 활용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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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습니다. 동시에 법률 위반이 있는지도 확인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안태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 등과 한 식당에서 만난 자리에서 법무부에서 근무하는 검사들에게 50만 원에서 100만 원이 든 돈봉투를 건넨 이른바 ‘돈봉투 만찬’ 사건을 [한겨레신문]이 단독보도한 지 이틀 만이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감찰-위법 확인 지시”

윤영찬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법무부 감찰위원회와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엄정히 조사하여 공직기강을 세우고 청탁금지법 등 법률 위반이 있었는지 여부도 확인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 하루 뒤인 2017년 5월 18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규정상 감찰 중에는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돈봉투 만찬’과 관련해 감찰하고 수사했습니다. 1달쯤 뒤인 6월 16일, 대검 감찰본부는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같은 날, 법무부는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면직(공직으로부터 배제) 처분했습니다.

‘돈봉투 만찬’에 대한 여기까지의 스토리는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결론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이보다 훨씬 적습니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 ‘돈봉투 만찬’ 사건의 결론은 무엇이었나?

기소된 지 6달 뒤인 2017년 12월 8일,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2심 역시 무죄였습니다. 2018년 10월 25일, 대법원은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무죄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징계 처분은 어떻게 됐을까요? 2018년 12월 6일,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정부를 상대로 한 면직 처분 취소 소송에서도 승소했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는 “이 사건의 면직 처분은 공익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과중해 재량권 일탈 남용에 해당한다.”라며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법무부는 2018년 12월 31일에 항소를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면직 처분은 취소됐고, 이영렬 전 중앙지검장은 검찰로 복귀한 뒤 곧바로 퇴직했습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로 이뤄진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돈봉투 만찬’ 사건에 대한 검찰의 기소와 법무부의 징계 모두 법원에서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이영렬 전 중앙지검장이 검찰과 법무부를 100 대 0으로 완벽하게 이긴 사건입니다.

● 이영렬을 생각한다: 조국 전 장관 사건과의 비교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경우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사건과 비교해봅시다. 조국 전 장관을 지지하는 분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검찰의 기소권 남용’입니다. 이는 조국 전 장관 관련 사건을 담당했던 검찰 간부들과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 간부들을 교체한 이번 검찰 인사를 정당화하는 주장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청와대 역시 지난 1월 23일 조국 전 장관 일가 관련 검찰 수사에 대한 시민 질문에 대해 “최근 검찰 수사의 불공정 논란,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인권침해 우려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흔들리게 되었다.”라고 답변하기도 했습니다.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용했기 때문에 검찰 간부를 교체한 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법원에서 기소는 물론 징계까지도 부당했다는 점이 “확인”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건과 관련된 검찰 간부와 검사들은 조국 전 장관 관련 사건을 지휘했던 간부들처럼 불이익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나아가, 이례적으로 검찰 수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업무지시”한 대통령은 사과를 하고,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에게 응분의 처분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요?

● ‘조국 사건’과 ‘이영렬 사건’의 평가 기준은 동일한가?

현실에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은 무죄 판결 확정 이후에도 요직에 기용됐습니다. 인사권 행사자는 청와대가 최근 여러 차례 강조한 것과 같이 대통령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 지시” 당시 관련 업무를 총괄했던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오히려 정권 실세의 자리를 확고하게 굳혔고, 김태우 전 수사관의 폭로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법무부 장관으로까지 임명됐습니다. 물론 그 이후의 난장판에 대해선 모두가 아는 바와 같습니다.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해 적용된 혐의는 “그깟 표창장 위조”일 뿐인데 ‘돈봉투 만찬’ 사건과 비교할 수 있냐고요? 일단 조 전 장관 또는 그 가족이 연루된 혐의는 “그깟 표창장 위조” 뿐만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둬야겠습니다. 표창장 위조 외에도 다양한 증명서 위조 혐의가 적용됐고. 여러 대학과 관련된 입시 비리 혐의, 사모펀드 관련 혐의, 뇌물 혐의에, 동생과 관련해선 전형적인 사학비리 혐의도 적용됐습니다. 게다가. 조국 전 장관 본인과 관련해선 서울동부지방법원 영장 판사가 “직권을 남용”했고 “법치주의를 후퇴”시켰다고 밝힌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 혐의도 적용됐습니다.

그럼에도 조국 전 장관과 관련돼 적용된 혐의는 “다들 하는 관행”일 뿐이고 “별 것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께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같은 기준이라면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법무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후배 검사들에게 식사 자리에서 ‘금일봉’을 준 행위 역시 “다들 하는 관행”이고 “별 것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돈봉투 만찬’ 사건에 대한 이런 평가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라, 조국 전 장관 관련 사건이 “별 것 아니”라고 말하는 분들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이렇게 평가할 수 있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 기준은 일관되어야 한다.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해 검찰이 기소한 혐의가 인정이 될지 안 될지는 앞으로 법원의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입니다. 그러나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조국 전 장관과 관련자들이 너무나 억울하게 인권을 침해당했고, 검찰이 이들에 대해 기소권을 남용했다고 생각하신다면, 이미 법원에서 무죄와 징계 취소가 확정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경우를 한 번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조국 사태’와 관련된 검사를 좌천하는 것이 정당한 인사 조치라고 생각한다면,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건에 관여했던 검찰과 청와대 관계자들의 승승장구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기준은 일관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공정함’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의(定義)입니다.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해 어떻게든 옹호할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뿐만 아니라, 일관된 기준을 적용해서 평가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해 애쓰는 분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어디까지 망가져 있는지 거울 앞에서 한번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한 가지 오해가 있을 수 있어서 덧붙입니다. 저는 ‘돈봉투 만찬’ 사건에 대해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국 전 장관이 앞으로 재판에서 무죄를 받더라도, 조 전 장관이 인사청문회 과정 등에서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을 비판하거나, 검찰의 수집한 증거들의 형사 재판에서의 증거능력과 관계없이 표창장 위조 등의 사실관계를 지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저는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건과 관련한 검찰권과 징계권 행사, 그리고 이를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의 조치에 대해서도 조국 전 장관 사건을 평가할 때 적용하는 기준과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뜻으로 글을 썼습니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619086&plink=NEWLIST&cooper=SBSNEWSSPECIAL&fbclid=IwAR2rULCfNP7IGCSLlgmv2QBn-tHKkGAdN65GzQlTPSNdOUSR971bD4oJq5U&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