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 공표와 보도의 필요성과 정당성 조건

** [관훈저널] 2019년 겨울호(통권 153호)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출간된 원고에는 제목과 내용 일부가 수정됐습니다. 원문을 이 곳에 올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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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종 기자(SBS 법조팀)

피의사실 공표와 피의사실 보도란 말은 주로 검찰 수사 관행이나 수사를 보도하는 저널리즘을 비난할 때 쓰인다. 피의사실 공표 또는 피의사실 보도 자체가 잘못된 행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아래 기사 중 수사기관 관계자의 피의사실 공표에 의한 피의사실 보도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골라보자.

사례 1. [단독] 김학의 한밤중 타이로 출국하려다가 ‘긴급출국금지’ (한겨레신문 / 2019. 03. 22.)

사례 2. ‘계엄문건’ 실무진 진술조서…”조현천, 계엄령 세니까 위수령 먼저” (JTBC / 2019. 11. 12.)

사례 3. [단독] CJ 장남, 마약 밀수 공항적발…변종대마 양성 반응 (뉴시스 / 2019. 09. 02.)

정답은 위 세 건의 기사 모두 수사기관 관계자의 피의사실 공표에 근거한 피의사실 보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기사는 검찰 수사를 받을 예정이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해 법무부가 긴급출국금지를 했다는 내용이다. 두 번째 기사는, 이른바 ‘계엄령 문건’을 작성한 실무자들이 검찰에서 진술한 조서의 내용이다. 세 번째 기사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아들 이선호 씨가 마약을 밀반입하려다 공항에서 적발돼 검찰이 입건했다는 것이다. 세 기사 모두 누군가에 대한 수사와 관련된 내용, 즉, 피의사실을 보도한 것이며, 취재원 역시 수사기관 관계자로 추정된다. 모두 전형적 의미의 피의사실 공표와 피의사실 보도인 것이다.

하지만, 위 세 건의 기사를 보면서 최근 피의사실 공표나 피의사실 보도라는 말이 사용될 때의 부정적 의미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위 세 건의 기사가 전달하고 있는 팩트가 보도 가치가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피의사실 공표나 피의사실 보도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거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국민의 알 가치가 있는 공익적 정보를 취재하거나 보도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수단이고, 또 사용되어야만 하는 수단이다. 그렇다면 피의사실 공표와 피의사실 보도는 각각 무엇을 의미하고, 그 정당성과 가치는 어떤 기준에 입각해 인정될 수 있는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 피의사실 공표의 정당성 기준

먼저 명확히 해야 할 것은 피의사실 공표와 피의사실 보도는 구분되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피의사실 공표의 주체는 수사기관 또는 수사기관 관계자이다.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공소제기 이전에 외부에 알리는 행위가 피의사실 공표이다. 반면 피의사실 보도의 주체는 주로 언론인이다. 보도 대상이 받고 있는 범죄 혐의와 관련된 사실을 보도하는 행위가 피의사실 보도이다. 피의사실 공표와 피의사실 보도는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함께 일어나는 행위는 아니다. 수사기관 관계자가 피의사실을 공표한 것을 기자가 보도하면 피의사실 보도가 된다. 하지만, 수사기관 관계자가 공표하지 않아도 기자는 피의자나 변호인 등 사건관계인에 대한 취재 또는 수사와 관련된 물적 증거를 직접 확보하는 방법을 통해서도 피의사실을 보도할 수 있다. 또한,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피의사실 공표’는 공판청구 이전의 피의사실 외부 공개를 뜻하는 반면, 언론의 피의사실 보도는 엄밀히 말해 공판청구 이전과 이후의 보도를 모두 포괄한다. 다만, 공판청구 이전의 피의사실 보도를 피의사실 공표와 연관지어 문제삼는 경우가 많다.

피의사실 공표는 우리나라에서 형사처벌되는 행위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입법례를 찾기 힘든 조항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형법 126조는 피의사실공표죄와 처벌 조항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형사처벌되는 행위인 피의사실 공표에 정당서이나 공익성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명제인가? 그렇지 않다. 형법 조문 상으로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정당화할 수 있는 사유가 있을 경우 법률적으로는 위법성이 조각되어 처벌되지 않을 뿐 아니라,공익성이 크다고 인정될 경우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비슷한 경우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다. 피의사실공표죄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인권 선진국에서는 찾기 힘든 조항이지만 우리 형법은 진실된 사실을 널리 알린 행위일지라도, 그 행위가 누군가의 평판을 떨어뜨리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는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조항을 문언 그대로만 해석할 경우 고위공직자를 포함한 공인(公人)에 대한 언론의 고발성 보도는 예외 없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공인의 비위에 대한 고발성 보도는 합리적 근거를 갖추고 있거나, 내용이 사실에 부합할지라도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공인에 해당하는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형법 307조 1항이 규정하고 있는 처벌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인에 대한 진실된 고발 보도는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뿐 처벌되지는 않는다. 공인과 관련된 ‘사실(팩트)’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알 권리’가 있는 정보로 평가되며, 따라서 이를 보도한 행위의 정당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피의사실 공표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첫 번째 요건은 정보의 ‘공익성’이다. 수사기관 관계자가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 중 공적으로 알 만한 가치가 없는 사적인 정보를 외부에 알리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라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가 공중이 알 권리를 가지고 있는 공익적 정보일 경우에는, 피의사실 공표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되는 셈이다. 앞서 예로 들었던 2019년 11월 12일 JTBC가 보도한 피의사실,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작성한 실무자들이 검찰 조사에서 조현천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아서 계획을 수립했다고 진술했다는 사실 등은 국민에게 알 권리가 있는 ‘공익성 있는 피의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피의사실이 공익성 있는 정보라고 해서 공판청구 전에 수사기관이 이를 외부에 알리는 것이 무조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수사기관이 개인의 기본권을 상당 부분 제약할 수 있는 권리인 강제수사권을 부여받은 것은 범죄 혐의 규명을 위한 것이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것이기 아닌 만큼, 수사 과정에서 입수한 정보가 비록 진실되고 국민들이 알 가치가 있는 공익성 있는 정보일지라도, 수사기관 관계자가 법정에서 혐의를 입증하는 이외의 목적으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이전에 외부에 알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 더욱 엄격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에게 알 권리가 있는 공익성 있는 진실한 정보라고 할지라도,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이전에 외부에 알리는 행위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각각의 구체적 상황에서 정당성을 인정할 만한 조건이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이었다는 피의사실 공표 ‘목적의 정당성’, 공판청구 이전에 피의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을 경우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경우에 해당하는 ‘긴급성’, 피의사실이 공표됨으로써 수사 대상자의 명예가 훼손되는 정도보다 공표 행위로 인해 실현되는 공익의 크기가 더욱 커야 한다는 공적 이익의 ‘균형성’ 등을 고려해야 할 조건으로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 피의사실 보도의 정당성 기준

그렇다면 피의사실 공표와 구분되는 개념인 피의사실 보도의 정당성에는 어떤 기준이 적용되어야 할지 살펴보도록 하자. 앞서도 설명했듯이 피의사실 보도 행위는 피의사실 공표와 달리 주로 언론인에게 적용되는 개념이다. 피의사실 보도는 형법이 금지하고 있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위법성이 조각되는 사유 등을 논의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피의사실 보도 행위는 피의사실 공표와 마찬가지로 보도의 대상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이므로 어떤 조건에서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피의사실 보도에 있어서도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정당성 조건은 보도되는 피의사실의 ‘공익성’이다. 즉, 보도의 내용인 피의사실이 공적인 사안 또는 공적인 인물에 대한 공적인 정보, 국민에게 알 권리가 있는 정보여야 한다. 그러나 피의사실 보도의 경우에는 형법상 피의사실 공표 죄의 구성요건에 포함되어 있는 ‘공판 청구 이전’이라는 조건이 적용되지 않는다. ‘공판 청구 이전 공표 금지’라는 조건은 공판청구를 통해 수사의 결론을 발표하는 형사사법기관 관계자들에게 부여되는 조건이지만, 보도의 정당성과 형사적 혐의 인정 여부는 별개이기 때문에 피의사실 보도의 주체인 언론인에게 공판 청구 이전에 보도를 관련 사실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은 적용될 수 없다.

예컨대, 고위공직자의 과거에 저지른 행위에 대해 공소시효가 완성되어서 경찰이나 검찰이 명확한 결론 없이 종결한 사건이 있다고 해도, 언론은 공소 제기 여부와 관계없이 수사 과정에서 수사 기관이 확보한 고위공직자의 과거 행위에 대한 자료나 팩트를 보도할 수 있다. 공판청구 전후 또는 공판청구 여부와 언론 보도의 정당성은 필연적 관련성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언론에게는 피의사실이 진실되었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을 경우 적극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피의사실 보도의 정당성을 논할 때 ‘공판 청구 이전에 이뤄져야 할 긴급성이 있는지’는 조건은 인정되기 어렵다. 다만, 보도하는 피의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 보도하는 피의사실의 공익성, 피의사실이 보도됨으로 인해 달성되는 공익과 훼손되는 보도 대상의 명예 사이의 비교 등은 정당성을 인정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볼 수 있다.

● 진영논리와 피의사실 공표/보도에 대한 잘못된 비난

그런데 최근 피의사실 공표나 보도에 대한 비판이 우려스러운 것은 이 같은 비판이 진영논리에 입각해 일관성 없이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피의사실 공표’나 ‘피의사실 보도’라는 용어는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언론 보도는 피의사실 공표다.”같은 식이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이 ‘피의사실 공표’라는 규정 자체가 기사에 대한 가치평가가 될 수는 없다. 피의사실 보도는 알 권리를 위해 필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고, 다만 피의사실 공표 또는 보도의 정당성이 있는지를 따져볼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피의사실 공표 또는 보도 자체가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식의 잘못된 주장은 계속 증폭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피의사실 공표 또는 보도 자체가 잘못이라는 주장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피의사실 공표 또는 피의사실 보도에 대한 평가가 비일관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즉, 진영논리에 따라 어떤 피의사실 공표/보도는 가치 있는 보도로 평가하고, 이와 다른 피의사실 공표/보도에 대해서는 부당한 보도로 평가하는 이른바 ‘내로남불’식 평가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보도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거나, 피의사실 공표/보도가 자신이 소속된 진영의 이익에 봉사할 때는 이를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보도를 놓고 피의사실 공표/보도라고 비난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우병우 전 민정수석,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학의 전 차관 등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와 보도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지 않거나, 오히려 적극 환영했던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라 여야 정당과 주요 정치인들도 피의사실 공표/보도에 대해 사건마다 입장을 바꿔가며 ‘내로남불’식 평가를 서슴지 않고 있다.

대상이 조국 전 장관이든 박근혜 전 대통령이든 피의사실 공표/보도에 대한 정당성 판단 기준은 일관적이어야 한다. 목적의 정당성, 긴급성, 공적익과 사적 명예권의 균형이나 (피의사실 공표 판단 기준), 보도의 공익성(피의사실 보도 판단 기준)에 따라서 각각의 기사를 평가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이뤄지고 있는 피의사실 공표와 보도에 대한 비난은 진영논리에 따른 비일관적 평가인 경우가 훨씬 많다. 오히려 이 때문에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보장되어야 할 피의사실 공표와 보도는 위축될 뿐만 아니라,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피의사실 공표/보도와 그렇지 않은 보도가 구분되지도 않은 채 사회적 혼란만 커지고 있다. 진영논리에 입각한 ‘내로남불’이 피의사실 공표/보도의 정당성 기준 자체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피의자의 권리와 알 권리의 조화를 위하여

피의사실 공표와 피의사실 보도는 국민의 알 권리라는 공익을 위해 분명히 필요한 수단이다. 다만, 그 정당성은 무제한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정당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그렇지만, 최근 피의사실 공표와 보도에 대해 진영논리에 입각해 사안마다 비일관적으로 평가하는 현상은,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 피의사실 공표와 보도를 통한 공익의 실현을 방해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특히 이 같은 비난 여론 속에서 성급하게 마련된 법무부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은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는 피의사실 공표와 피의사실 보도 행위까지도 억누르고, 민주주의 사회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민의 알 권리를 차단하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형사사법 기관의 수사, 기소, 재판, 그리고 언론의 공적인 고발 기능은 원칙적으로 대상자의 인권을 일정 정도 침해하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 같은 활동을 법률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정당한 방법으로 진행될 경우) 이로 인해 달성되는 공익이 침해되는 당사자의 명예나 인권보다 더욱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피의사실 공표와 보도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공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하거나, 행위를 원천봉쇄하거나, 우리 편에 불리한 결과로 이어졌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비난하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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