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미스터 메르세데스’

스티븐 킹은 대중소설가다.’메르세데스 킬러’는 그가 처음으로 쓴 탐정소설이다.익숙하지 않은 장르이기 때문인지 흥행을위한 장치가 평소보다 노골적으로 배치됐다.금융위기이후 대량 실업, 익명 데이트 사이트를 통한범죄 같은 낯익은 시대 배경이 펼쳐진다. 주독자층인 40대 이상 남성을 위한 성적 판타지도 조금은 작위적으로 묘사된다.은퇴한 백인 형사를 돕는 영리하고, 잘생기고,백인 같이 행동하는 흑인 소년은 오바마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도 이야기 풀어가는 솜씨가 워낙 뛰어나 전형적 설정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클리쉐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잘 만든 007영화가 될 수도 있고, 손발이 오글거리는 키치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니까.

읽다보면 페이지가 쏜살같이 넘어간다. 스티븐 킹은 자신이 쓴 글쓰기 책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제대로 된 캐릭터만 만들내면 스토리는 자동으로 굴러간다고 설명했다. 이 책도 그렇다. ‘미제 살인사건 범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은퇴 형사’라는 반드시 독창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주인공이지만, 일단 캐릭터가 잡히자 스토리가 물 흐르듯 흘러간다.

살인범의 정체를 소설 초반에 드러낸 것 역시 이제는 신선하지 않은 수법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변태적 살인마의 내면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스티븐 킹의 재능은 여전하다. 소설의 3/4 지점까지는 지루할 틈이 별로 없다.

형사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미쳐가는 살인마 이야기는 예전에 쓴 단편 ‘모범생(Apt pupil)’과 비슷하다. 나찌 출신 노인과 장시간 대화를 나누다 싸이코 살인범이 되는 모범생 이야기다. 형사와 심리게임을 벌이면서 점점 더 미쳐가는 메르세데스 킬러와 많이 닮았다.

이 소설을 별 다섯개 스케일로 평가하자면 3개 정도(3개 반 줬다가 반 개 줄임)다. 휴가지에서 가볍게 읽기에 딱 좋다. 일흔 넘은 나이에도 쇠하지 않는 필력을 과시하는 스티븐 킹 옹의 퍼포먼스는 부러울 따름이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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