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와 비판의 일관성

IRE(전미탐사보도기자협회 연례총회)에 참석하기 전에 국내 교육을 받을 때 새로운 걸 많이 배웠다. 그 중 하나가 ‘탐사보도는 기계적인 중립 보도와 대척점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안에 대한 가치 평가 없이 ‘A는 이렇게 말했고, B는 이렇게 말했다’는 방식으로 기계적 중립을 취하는 대신, 충분한 취재를 통해 문제를 정확히 포착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시청자에게 제시하는 것이 탐사보도의 본령이라고 배웠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기억하는 지난 정권 때 여러 매체의 탐사보도들도 그랬다.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박근혜 5촌 조카 살인 사건 의혹’, ‘나경원 피부과 의혹’, ‘나경원 자녀 특혜 입학 의혹’ 등은 기계적 중립에 머물지 않고, 취재기자가 장기간 취재를 통해 확인한 팩트와 함께 사안에 대한 판단을 나름대로 드러낸 보도들이다.

과문하지만 저런 보도들을 나왔을 때, ‘보도의 가치 유무와 별개로 보도량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을 들은 적은 없었다. 왜 권력을 가진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나경원 의원의 의혹만 보도하고, 야당 의원들에 대해선 똑같은 잣대를 가지고 전수보도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다.

위에서 예를 든 보도는 주간지나 탐사보도 전문매체의 기사고 지상파 방송 보도는 그래선 안 된다라는 주장이라면, 아래 김종원 기자가 설명했듯이, 손혜원 의혹을 발굴보도한 SBS 탐사보도팀 ‘끝까지 판다’가 삼성 관련 의혹을 지금 못지 않게 집중보도했을 때 역시 그런 비판을 받은 적이 없다는 걸 환기하고 싶다. 왜 삼성 의혹만 보도하냐, 다른 대기업도 전수 조사하란 지적도 없었다.

지금 권력을 가지고 있는 쪽은 민주당이다. 손혜원 의원은 보도 당시까지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문광위 간사였고, 지금도 청와대와 가까운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권력자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기 위해 탐사보도팀이 집중보도를 했는데 이를 두고 지나치게 많이 보도했다고 지적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권력은 상대 편이 잡았을 때는 악한 것이고, 우리 편이 가지고 있을 때는 선해지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권력에 대한 감시보도는 상대 편이 권력을 잡았을 때는 많을 수록 좋고, 우리 편이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는 너무 많으면 부적절한 것이 아니다. SBS 탐사보도팀의 손혜원 보도가 지나치게 많았다고 주장하시거나, 다른 의원들에 대해선 똑같이 보도하지 않았으니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이점을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

(※ 이런 걸 밝혀야 하나 싶지만… 나는 탐사보도팀 소속도 아니고, 이 글은 당연히 SBS 공식입장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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