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어머니

기자로 일한 지 올해로 13년째다. 그중 사회부 기자로 9년쯤 일했다. 일하면서 만난 사람은 수천 명이 넘는다. 좋은 일로 만난 사람은 별로 없다. 누군가에게는 아픈 일을 취재하기 위해, 아픈 일을 겪었거나, 아픈 일을 다루는 사람들을 만났다. 험한 직업이다.

아픈 일도 겪다 보면 익숙해진다. 아픈 일을 겪은 사람을 만나는 것에도 무던해진다. 일이니까. 매번 슬퍼하고, 매번 격렬해져선 일을 할 수 없다. 일을 하다보면, 일을 하기위해선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런데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있다.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님들을 만나는 일이다. 내가 부모가 된 뒤엔 더 어려워졌다. 내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 어디가 왜 아픈지 묻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전에 어떤 선배가 말한 것처럼 명치나 목젖을 아무리 단련해도 강해지지 않듯이 그냥 계속 힘들고 아픈 일이다.

설날에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어머니 때문이다. 당직 근무를 하느라 부모님 댁에 가지 못해 안부 인사를 드리려고 핸드폰에서 ‘어머니’를 검색하자 9개의 번호가 나왔다. 취재했던 사람들 번호를 정기적으로 지우는 편인데도 이 번호들은 남겨뒀던 모양이다.

‘ㅇㅇㅇ일병 어머니’, ‘xxx 어린이 어머니’, ‘ㅁㅁㅁ 어머니 의문사’…번호들을 살펴보니 이분들을 만났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내 기사가 이분들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적도 많았는데… 가끔은 이분들 바라는대로 이뤄진 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분들의 아픔이 줄어들었을 것 같지 않다.

핸드폰에 남아있는 어머니들께 새해 인사를 드리지는 못했다. 카톡이라도 드릴까 잠깐 생각했지만 내가 보내는 메시지가 오히려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 아닌가 싶어 보내지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들이 더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아픔이 많이 사라졌길 바란다. 행복하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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