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와 정초적 폭력

한국에서 검찰 조직의 힘이 강한 것은 팩트에 대한 ‘정초적 폭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초적 폭력은 법이 도입되기 이전 상태에서 법과 제도의 구성을 가능하도록 하는 최초의 힘을 말한다. 헌법학에서는 헌법제정권력이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팩트의 확정과 관련해 검찰에 ‘정초적 폭력’ 또는 ‘헌법제정권력’에 가까운 힘을 부여한다. 그 방식은 특히 최근 몇 년간 놀랍도록 비슷하게 반복되어왔다.

누군가 대중의 관심을 촉발할 만한 의혹을 제기하고, 이 의혹이 소셜미디어와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광범위하게 공유되고(그러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올라가고), 이윽고 언론사들이 참전해 문제를 추가로 제기하며 이슈를 키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여당, 야당 또는 시민단체가 의혹들을 모아 검찰청이라는 신전에(?) ‘고발장’을 제출하는 엄숙한 의식을 거행한다. ‘000 사건 고발장’이라고 적힌 종이를 가슴 앞에 들고 여러 대의 카메라 앞에서 근엄한 표정으로 행진하는 방식이 가장 표준적인 의례준칙이다.

이 시점부터 과정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은 검찰에 진실에 대한 ‘정초적 폭력’ 을 자발적으로 부여하는 셈이다. “검찰 수사를 통해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규명되길 기대한다.(+ 규명이 되지 않으면 특검 도입까지 검토하겠다.)”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검찰은 팩트를 확정하고 문제를 설정할 수 있는 권력을 다시 한번 확인받는다.

형법상 구성요건의 존부를 판단하는 검찰의 기능은 어쩌면 부차적이다. 모두가 검찰에 자발적으로 부여한 정초적 폭력, 무엇이 팩트이고 무엇이 허위인지 정의할 수 있는 힘이 매우 특별하다고 평가받는 ‘한국형 검찰권력’의 진정한 비밀이다.

공수처가 됐든 독립된 경찰 수사가 됐든 권력기관에 팩트에 대한 정초적 폭력을 자발적으로 위임하는 습속과, 정의로운 누군가가 수사권이라는 합법적 폭력을 선용해 진실을 낱낱이 밝혀주리라는 기대가 유지되는 한, 때로 흥미진진하고 많이 소란스럽지만 결국은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는 난장판은 참여자들의 위치가 뒤바뀌는 것 외에는 아무런 변화 없이 내내 이어질 것이다.

Posted in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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